'아트 플라워' 디자인을 적용한 LG전자의 냉장고ㆍ에어컨 등 가전제품 판매가 100만대를 넘어섰다. 지루한 단색 톤의 전형적인 가전제품 외관을 혁신적으로 바꾼 아트 플라워 디자인은 한국 가전제품 디자인의 역사를 새로 쓴 작품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이 같은 평가는 유럽에 가면 180도 달라진다. 아트 플라워 가전이나 아이스크림폰 같이 화려한 색상과 디자인의 제품은 유럽에서 쉽게 출시할 수 없다. 유럽 소비자들은 제품이 그들의 생활환경과 자연에 얼마나 어울리느냐를 따지기 때문에 화려한 디자인은 실패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단순미와 세련미를 강조한 프라다폰 같은 디자인이 유럽 스타일이다. 중동과 아프리카 시장은 또 다르다. 금색이 들어간 제품 디자인이 선호되고 장식성을 중요시한다. 수출 현장 관계자들은 "디자인ㆍ기능ㆍ마케팅 등 모든 면에서 현지인들의 선호가 다 다르다"고 입을 모은다. 제품의 세계에서는 아름다움도, 기능도, 마케팅도 특정 지역에서 통하는 게 따로 있다는 것이다. ◇디자인 현지화에 답이 있다=이달 초 찾은 영국 런던 중심가 코번트가든에 자리잡은 LG전자 유럽디자인센터. 이곳에서 일하는 디자이너 8명은 모두 영국ㆍ아일랜드ㆍ독일ㆍ이탈리아 등 유럽인이다. 한국인은 센터 총책임자인 최재승 수석연구원 단 한명뿐이다. LG전자는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운영하던 유럽 디자인센터를 지난해 6월 이곳 런던으로 옮겼다. 런던의 디자인 인프라 때문이다. 현재 유럽 전체 제품 디자인 인력 3분의1이 런던의 유명 디자인 스쿨에서 배출된다. 또한 영국은 다문화지역이고 비즈니스 기반이 튼튼해 '영국에서 통하는 디자인은 전 유럽에 통한다'는 말이 업계의 정설이다. 최 수석연구원은 현지화의 필요성에 대해 "지역성ㆍ국민성에 호소할 수 있는 디자인을 해야 한다"면서 "한국인 디자이너도 할 수 있지만 현지인 디자이너가 하는 편이 성공률을 더 높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곳 유럽디자인센터 디자이너들의 주요 업무는 크게 두 가지. 2~3년 뒤를 내다본 제품 디자인의 콘셉트를 제공하는 것과 기존 제품을 유럽인의 취향에 맞게 손보는 일이다. 이를 위해 고객과 거래선을 디자인센터로 자주 초청해 품평을 받는다. 출시 전에 검증 받기 위해서다. LG전자는 이러한 디자인 현지화 작업을 통해 유럽 소비자들에게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특히 프라다폰과 초콜릿폰ㆍ샤인폰 등은 "심플하지만 눈에 띄는 독특함이 있다. LG는 새로운 걸 찾아낸다"는 유럽 현지 언론의 평가를 받았다. 최 수석연구원은 "유럽에서 LG 브랜드에 대한 인식은 업계가 시도하지 않았던 새로운 '디자인 언어'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쪽으로 형성돼가고 있다"면서 "1~2년 뒤면 유럽디자인센터에서 디자인한 LG전자의 대표 상품이 잇달아 탄생할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중동의 여심을 흔드는 가전제품=LG전자가 중동에서 지난해 30%의 성장을 기록한 것도 철저한 현지화 전략이 주효했기 때문이다. LG전자는 특히 이 지역에서 소비의사결정 과정에서 여성의 발언권이 점차 강해지고 있는 데 주목했다. 백형식 LG전자 걸프프리존 법인장은 "조사 결과 중동 지역 홈시어터 판매 중 60%가 여성이 의사결정을 했다는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면서 "여성 소비자에 대한 마케팅을 강화하고 여성이 원하는 디자인과 컬러를 제품에 적용해 큰 수확을 얻고 있다"고 설명했다. LG전자가 벌인 여성 마케팅 중 가장 히트한 이벤트는 두바이ㆍ사우디아라비아ㆍ이란ㆍ남아프리카공화국 등지에서 지난 2007년부터 개최한 요리대회. 지난해에는 지역 우승자를 두바이로 초청해 '홈 셰프 어워드'라는 이름으로 결승전까지 열었다. 사우디와 이란에서는 요리대회뿐만 아니라 쿠킹스쿨을 열어 여성의 마음을 빼앗고 있다. 이뿐 아니라 지역의 젊은이들을 겨냥해 현지 스타를 광고모델로 기용한 마케팅을 펼치는 한편 두바이의 명문대학 아메리칸유니버시티와 시리아의 다마스커스공대에 마케팅스쿨과 에어컨연구소를 여는 등 지역 밀착형 사회공헌 활동도 벌이고 있다. LG전자는 이 같은 현지화 전략의 결과로 아랍에미리트(UAE)에서 세탁기(25.3%), 냉장고(17.7%), 공기청정기(46%), PDP TV, 모니터(34%) 등이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또 이라크ㆍ레바논ㆍ시리아ㆍ요르단 등 4개국에서는 LCD TV, 에어컨, 세탁기, PDP TV, 모니터 등이 시장점유율 1위를 지키며 지난 3년간 매년 평균 45%씩 성장했다. 서아프리카에서는 홈시어터가 60%, LCD 및 PDP TV 45%, 에어컨과 냉장고 40%의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으며 모로코에서는 제품뿐만 아니라 브랜드 인지도도 87%로 독보적 1위다. LG전자는 향후 공략 포인트도 현지 사정에 맞게 조정할 방침이다. 모래바람 탓에 현지인들이 꼭 갖고 싶어하는 공기청정기, 운동부족으로 건강을 염려하는 현지 소비자를 겨냥한 각종 헬스케어 관련 제품에 역량을 집중하고 건설경기 추이를 보면서 에어컨 법인영업에도 역량을 집중할 계획이다. 백 법인장은 "일본 기업들은 큰 비용을 들여 제품 위주의 마케팅을 하고 있지만 LG 등 한국 기업은 발로 뛰는 마케팅을 한다"면서 "때문에 현지인들의 인식은 한국 기업 쪽에 훨씬 친화적이며 일본 기업들도 이런 강점을 인정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