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빚독촉 시달린 가족 자살 도운 아들 선처

자살시도 중 발견… 法 "범행 후 죄책감·정신적 고통 등 감안"

세상을 떠난 부친의 채무를 갚지 못해 늘 빚독촉에 시달리던 어머니와 형의 자살을 도운 20대 남성을 법원이 선처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4부(김득환 부장판사)는 19일 생활고를 비관한 어머니가 장남을 죽인 뒤 자살하는 것을 도운 혐의(살인방조·자살방조)로 구속기소된 차남 백모(27)씨에게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과 사회봉사명령 160시간을 선고했다고 밝혔다. 백씨가 어머니의 뜻에 따라 목숨을 끊기로 결심한 것은 백화점 매장 한 구석에서 과자류 판매업을 하던 아버지가 채무를 못 이겨 스스로 목숨을 끊은 지 3개월이 지난 올 1월. 백씨는 부친이 세상을 떠난 직후부터 어머니로부터 "아버지를 함께 따라가자"는 말을 들어 왔지만 `엄마와 형을 부탁한다'는 부친의 유서를 떠올리면서 살아보려고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했다. 더구나 정신지체 3급 장애인인 친형(28)과 80세 가까운 고령인 할머니를 둔 사실상의 `가장'으로서 부친의 과자사업을 이어받아 가족 생계를 책임지겠다는 각오도 다졌다. 그러나 사업이 잘 안 풀리는 데다 빚독촉이 심해지면서 어머니가 우울증까지 얻자 "친형의 목숨을 먼저 끊고 함께 자살하자"는 모친의 체념 섞인 제의를 받아들이게 됐다. 백씨는 모친이 친형에게 수면제를 먹인 뒤 전깃줄로 목을 감자 베개로 형의 얼굴을 덮어 질식사하도록 도운 뒤 같은 전깃줄을 목에 묶은 어머니가 자살할 수 있도록 줄을 잡아 당겨줬다. 그런 다음 백씨도 부엌 가스배관에 목을 매 자살을 시도했으나 전깃줄이 끊어져 바닥에 떨어졌고 `쿵'하는 소리를 듣고 옆방에서 나온 할머니에게 발견돼 병원으로옮겨졌다. 현장에 출동한 경찰에 의해 병원치료를 받은 후 구속기소된 백씨는 법정에서 "아버지가 함께 자살하자고 했을 때는 거절했지만 정작 부친이 떠난 뒤엔 내 힘으로 채무를 감당할 길이 없었다"면서 재판 내내 눈물을 흘렸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동반자살하려는 가족을 막지 못한 채 어머니의 동생에 대한 살해와 자살행위를 방조한 점은 죄가 무겁지만 채무의 중압감을 못 이겨 자살을 공모한 경위에 동정의 여지가 있는 점, 범행 후 죄책감 뿐만 아니라 가족을 잃은 정신적 고통에도 시달리고 있는 점 등을 감안해 형의 집행을 유예한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사회봉사 명령을 선고한 이유에 대해 "피고인과 유사한 아픔을 겪고도 삶을 포기하지 않은 이들을 도우면서 교훈을 얻으라는 의미이다"고 설명했다. 재판장인 김득환 부장판사는 백씨가 선고를 받은 뒤 "가족들 장례를 못 본 채구속됐지만 석방됐으니 묘소를 찾아 제사를 지내고 싶다. 할머니를 잘 모시면서 정상적인 삶을 살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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