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돈가뭄 연말 '비상'
은행·2금융권 "내코가 석자" 사실상 마비
정부의 잇단 자금난 대책에도 불구하고 기업의 돈가뭄은 연말이 다가올수록 더욱 심화되고 있다.
신용금고ㆍ종금사 등 2금융권의 자금공급 기능이 완전히 마비된데다 구조조정이 지연되고 있는 은행권 내부의 혼란이 사실상의 경영공백 상태로 이어져 정부대책의 창구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구조조정의 지연으로 인한 금융시스템의 '오작동'이 멈추지 않는 한 아무리 파격적인 대책이 나와도 기업자금난은 해소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17일 한국은행 및 금융계에 따르면 이달들어 지난 15일까지 은행권의 기업대출 증가액은 1조3,000억원 안팎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달중 회사채 만기도래 물량이 7조원을 넘고 연말 자금수요가 가세해 돈줄이 바짝 말라있지만 은행의 대출 공급은 평월 수준에도 못미치고 있다.
감독당국의 강력한 종용에도 불구하고 은행들은 대출을 극도로 꺼려 이달들어 늘어난 2조원 이상의 정기예금 가운데 여전히 60~70% 가량을 국공채 매입에 쓴 것으로 추산된다.
한국은행이 지난 14일 총액대출한도 2조원, 유동성조절대출 한도를 1조원 늘리고, 이에 앞서 정부가 'CLO(대출채권 담보부 유동화증권)를 통한 대출 풀 부분보증제'를 도입하는 등 잇단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자금난 해갈에는 도움이 안되고 있다.
금융지주사 통합ㆍ합병 등 구조조정의 소용돌이에 빠진 은행들은 사실상의 경영공백 상태 속에서 기업을 돌아볼 생각도 않고 있다.
지주사 통합이 추진중인 한 시중은행의 임원은 "지난 8일 정부의 자금난 대책이 나온 후 열흘이 지났지만 관련 부서의 후속 보고를 들은 바 없다"며 "일을 시키는 분위기도, 찾아서 하는 분위기도 아니다"고 말했다. 정부의 기업 지원대책이 은행을 통해 실현될 수 없는 구조적인 한계에 직면해 있다는 지적이다.
잇단 사고로 신용위기에 몰린 신용금고는 지난 11월 서울지역 금고에서만 1,100억원 이상 대출을 줄인 데 이어 이달 들어 전국적으로 2,000억원 이상 여신을 축소한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중소기업에 10조원 가까운 여신을 공급하고 있는 신용금고 업계의 위기는 고스란히 중소기업 자금난으로 이어지고 있다.
5개에 불과한 정상영업 종금사는 여신회수에 혈안이고 이달 하순 영업을 재개하는 하나로종금 역시 당분간 여신을 중단한다는 방침이다.
2금융권에서 밀려난 중소기업들의 자금수요까지 은행에 몰리고 있지만 신용보증서를 끊어가도 연말까지는 대출을 않기로 한 은행이 더 많다.
구조조정에 휘말린 모든 금융기관들이 챙기는 일이라고는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 등 생존을 위해 필요한 재무지표 뿐이다. 정부가 아무리 파격적인 대책을 내놓아도 금융기관이 움직이지 않는 한 자금경색은 해소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성화용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