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글로벌 포커스] GDP 18조弗 인구 5억명 '유럽합중국' 탄생 눈앞

리스본조약 체코 비준만 남아… 내년 발효 가능성 높아져<br>경제·외교·안보등 통합 세계 무대 새 강자 발돋움 계기로<br>EU 초대 대통령 블레어 유력속 자격논란등 반대 목소리도

주제 마누엘 바호주(오른쪽)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이 지난 13일(이하 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의 집행위 본부에서 얀 피셔 체코 총리와 회동한 후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바호주 위원장은 이날“리스본조약의 발효를 지연시키는 행위는 체코는 물론 누구의 이익에도 부합하지 않는다”며 비준안 서명을 거부하고 있는 바츨라프 클라우스 체코 대통령을 강력히 압박했으며, 이후 17일 클라우스 대통령은“(리스본조약이라는) 열차가 이미 너무 빨리, 너무 멀리 달려와 그것을 정지시키거나 되돌려놓기는 불가능하다”고 말하며, 비준안 서명을 시사했다. 브뤼셀=블룸버그


'역내 총생산(GDP) 18조 달러, 인구 5억 명.' 세계 최강국 미국을 능가하는 '유럽합중국'(United States of Europe) 탄생이 눈앞에 다가왔다. 유럽연합(EU)의 '미니 헌법'으로 불리는 리스본 조약이 체코만을 남기고 나머지 26개 회원국이 모두 서명하면서 2010년 발효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2차 세계 대전의 폐허 속에 프랑스와 독일 국경 지대의 석탄을 공동 개발하기 위해 주변 6개 나라가 모인지 60년 만에 27개 나라가 참가하는 거대 국가공동체가 탄생할 날이 임박한 것이다. 1848년 파리평화화의 연설에서 "언젠가 프랑스, 러시아, 이탈리아, 영국, 독일, 그리고 유럽 대륙의 모든 국가가 각국의 고유하고도 영광스런 특성을 간직한 채 초국가적 통일체를 견고하게 세울 날이 올 것입니다"라고 한 프랑스 대문호이며 공화주의자인 빅토르 위고의 예언이 마침내 실현되게 된 것이다. ◇리스본 조약 발효 임박= 리스본 조약이 발효되면 유럽은 공동 시장, 공동 화폐 등 경제 통합을 넘어 외교, 안보 통합 등 국가 공동체 단계로 발전하게 된다. 또 과거 두 차례나 세계대전을 일으켰던 국가, 민족간 반목을 씻는 동시에 낡은 이미지를 벗고 세계 무대의 새로운 강자로 발돋움하는 '제2의 르네상스'의 계기가 될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초(超)국가공동체 '유럽합중국'의 위상은 벌써부터 확인된다. 유럽연합의 수도 브뤼셀에 상주하는 외교단(288개 공관)과 미디어(1300여 명)는 이미 미국 수도 워싱턴이나 유엔 본부가 있는 뉴욕을 능가하고 있다. 각계의 이익을 대변하는 이익 단체, 홍보 단체 및 로비 단체 등도 1,200여 개에 이른다. 유럽 통합을 위한 리스본 조약이 발효되기 위해서는 전 회원국이 비준해야 한다. 최근 최대 난제였던 아일랜드가 리스본 조약을 비준하면서 내년 초 발효에 청신호가 커졌다. 지난해 아일랜드는 국민투표에서 반대 53%로 부결되면서 리스본 조약은 좌초될 위기에 처했다. 하지만 경제 위기를 겪으면서 경제 통합의 필요성을 절감했고 15개월 뒤인 지난 10월 2일 2차 국민투표에서 리스본 조약을 찬성 67%로 통과시켰다. 현재까지 리스본 조약을 비준한 나라는 모두 26개국. 아일랜드에 이어 반대 입장에 서온 폴란드가 조약을 비준하면서 이제 체코만이 남게 됐다. 체코는 상하 양원에서 일찌감치 비준안을 통과시켰지만 바츨라프 클라우스 대통령이 서명을 완강히 거부하고 있는 상태다. 하지만 비등하는 반대 여론과 유럽 각국의 압력 속에 클라우스 대통령의 점차 힘이 부치는 모양새다. 클라우스 대통령은 최근 체코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리스본조약을 '정지시킬 수 없는 고속열차'에 비유하면서 비준안 서명이 불가피할 것임을 시사했다. 그는 "리스본조약이 유럽에, 유럽의 자유에, 그리고 체코에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열차가 이미 너무 빨리, 너무 멀리 달려와 그것을 정지시키거나 되돌려놓기는 불가능하다" 고 말했다. 리스본 조약은 유럽 연방을 구성하기 위한 조약으로 '미니 헌법'으로도 불린다. 리스본조약이 발효되면 EU대통령직(EU정상회의 상임의장)과 외교장관직이 신설되며, 의사결정방식도 기존 만장일치제도에서 EU전체 인구의 65% 이상이 찬성이나 15개국 찬성으로 가결되는 이중다수결제도로 변경되게 된다. 의사결정의 효율화를 위해 회원국마다 1명씩 배정되던 집행위원 수는 18명으로 줄어들게 된다. 특히 EU에 법적 인격체의 지위를 부여해 국제기구에 가입할 수 있는 길을 열린다. 유럽 전체가 하나의 정치적 목소리를 내게 되면서 국제사회에서의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토니 블레어=EU 초대대통령' 논란= 리스본 조약 발효를 앞두고 초대 EU정상회의 상임의장에 누가 오를 지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그 동안 유럽연합 의장은 회원국의 정상들이 6개월씩 돌아가면서 겸직하는 형식적 자리에 그쳤다. 하지만 EU상의의장은 임기 2년 6개월에 한차례 연임이 가능해져 'EU 대통령'으로 불리고 있다. EU 대통령은 각양 각색인 유럽 정상들의 목소리를 조율해 하나로 모으는 임무를 맡게 된다. 대외적으로 유럽 차원의 외교적 단일창구가 마련되는 셈이다. EU가 단일 정치 공동체로 거듭나는 것이다. 스웨덴 외무장관 칼 빌트는 "새 EU의장은 유럽 외교정책의 수장으로서의 권한을 갖게 된다. 유럽은 세계 속에서 더욱 강한 목소리를 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과 유럽의 언론들은 영국 총리를 10년간 역임한 토니 블레어가 EU초대 대통령으로 가장 유력하다고 보도하고 있다. 블레어를 강력한 후보로 꼽는 이유는 영국을 오랫동안 이끈데다 '제3의 길'이라는 새로운 정치 프로그램을 개발, 좌우를 아우를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대론이 만만치 않다. 그 동안 영국과 블레어 자신이 과거 보였던 방관자, 또는 반대 입장에 섰던 이력이 문제가 되고 있다. 이는 통합의 상징으로서의 중대한 결격사유라는 것이다. 영국은 독일, 프랑스 등 16개국이 채택한 유로화를 사용하지 않고 독자적인 통화(파운드화)와 중앙은행(영란은행)를 유지하고 있다. EU의 모태인 ECSC에 참여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솅겐협정에도 참여하지 않았다. 이보다 더 치명적인 사실은 프랑스와 독일이 강력 반대한 이라크 전쟁에 영국군을 파병함으로써 '부시의 푸들'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다른 유럽 국가들의 비난을 받았다는 점이다. EU 탄생의 주역인 베네룩스 3국은 자국의 후보들을 염두에 두고, 노골적으로 블레어의 대통령 선임을 반대하고 있다. 특히 네덜란드 얀 피터 발켄엔데 총리나 벨기에 헤르만 반 롬퓌 총리가 EU 대통령직에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초대 EU 대통령은 유로화를 사용하는 나라에서 배출돼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 블레어에게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다. 급기야 블레어 전 총리의 후원자를 자처해 온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마저 입장을 번복했다. 최근 일간 르 피가로와의 인터뷰에서 "블레어가 EU 대통령의 후보로 적임인지 말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말한 것이다. 내환도 겹쳤다. 블레어 전 총리의 핵심 보좌진이던 스테펜 월 박사는 "초대 EU 대통령으로 블레어처럼 고자세를 취하는 인물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면서 "더 작은 국가의 인물이 선출되는 것이 유럽 통합을 위해 낫다"고 말했다.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의 조사 결과 47%의 영국인이 블레어가 초대 대통령이 되는 것에 반대했다. 반대서명에도 수만명이 참여하고 있다. EU대통령과 외무장관이 누가 될 것인가 와는 별개로 대통령의 권한도 논란거리다. 조제 마누엘 바호주 EU집행위원장과 역할을 어떻게 나눌지, 유럽의회와 권력을 어떻게 나눠 가질지가 여전히 숙제로 남아있다. 가디언은 한 고위 외교관의 말을 빌려 "새 유럽이사회 의장의 임무는 누가 그 일을 맡느냐에 달려 있다. 자리에 대한 구체적인 역할과 권한이 상세하게 명시돼 있지 않다"고 전했다. 만약에 체코 대통령이 곧바로 리스본 조약에 서명할 경우 이르면 오는 29~30일 열리는 EU정상회담에서 EU대통령이 선임될 수도 있다. 슈퍼파워 미국에 필적할 거대 국가로 새롭게 태어나는 유럽합중국이 언제 어떤 모습으로 출범할까. 또한 새 합중국의 초대 대통령은 누가 되고, 국제사회에서 얼마나 힘을 발휘하게 될까. 지금 세계의 눈은 유럽의 거대한 변화에 집중돼 있다.
160년전부터 시작된 유럽 통합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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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르 위고 '합중국' 예고… 1951년 ECSC가 모태

유럽 통합 구상은 16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빅토르 위고는 신대륙에서 만들어진 미합중국에 대응되는 유럽합중국'(United States of Europe)을 예고했다. 그는 "신대륙에 미합중국을 만든 것처럼 이 역사가 오래된 유럽대륙에도 유럽합중국을 건설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1946년 윈스턴 처칠은 당시 영국총리는 유럽합중국을 주창하며 미 연방제 모델로 한 유럽통합을 역설했다. 그의 주장은 전후 피폐해진 유럽의 정치와 경제의 통합을 열망하던 유럽의 지식인ㆍ정치인들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통합 움직임은 경제분야에서부터 본격화했다. 전후 재건을 위해 1951년 프랑스, 독일(서독), 이탈리아, 베네룩스 3개국 등 6개국이 모여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를 출범시킨 것이다. ECSC는 오늘날 유럽연합(EU)의 모태가 됐다. ECSC 창설에는 '통합 유럽의 아버지'로 불리는 장 모네(Jean Monnet)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당시 프랑스 경제계획청장이던 그는 외무장관인 슈망과 손을 잡고 ECSC를 만들어 스스로 의장을 맡았다. 이들 6개국은 이후 1957년 로마조약을 체결하고 유럽경제공동체(EEC)를 창설했다. 국가 단위를 초월한 독립적인 경제 공동체가 유럽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1973년 영국과 아일랜드, 덴마크가 참여하면서 ECC는 외연을 넓힌다. 당시 노르웨이는 국민투표에서 부결돼 ECC 참여가 무산됐다. 1979년에는 유럽의회가 출범하게 된다. 이후 그리스(1981년), 스페인, 포르투갈(1986년) 참여했다. 1985년 회원국간의 무비자 여행(솅겐협정)이 가능해졌고, 1986년부터는 유럽의 통합을 상징하는 깃발이 처음으로 사용됐다. 1991년에는 마스트리흐트 조약이 체결되면서 유럽연합이 공식 출범한다. 이후 오스트리아, 스웨덴, 핀란드(1995년)가 회원국으로 가세한다. 1990년 '철의 장막'이 붕괴되면서 동유럽에도 문호가 개방된다. 2004년 몇 년간의 준비 끝에 폴란드, 체코, 슬로바키아 등 중동부 유럽 10개국이 무더기로 가입한다. 이어 루마니아, 불가리아(2007년)이 회원국으로 참여하면서 현재의 27개 회원국에 이른다. 경제 통합이 가속화되면서 1999년 공통 화폐인 유로화가 도입된다. 2001년 말까기 가상화폐로 회계 목적이나 은행계좌이체 등에 사용되던 유로화는 2002년 실물화폐로 공식적으로 등장해 11개국에서 사용된다. 현재 유로화는 사용국은 슬로바키아를 포함해 16개국으로 늘었다. 유로권(유로화 사용 16개국)의 GDP는 미국에 필적하고 있으며 유로화는 기축통화로서의 위치를 빠르게 확보해가고 있다. 그러나 하나의 국가공동체로 가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미국식의 유럽 합중국을 겨냥해 2004년 만들었던 유럽헌법이 2005년 주도국인 프랑스와 네덜란드에서 부결됨으로써 좌초된 것이다. 하지만 유럽의 국가통합 불씨는 기적처럼 되살아났다. 2007년 6월 유럽 27개국 정상들은 기존의 유럽헌법을 대체할 새 조약(리스본 조약)에 합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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