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 은행 수수료 적정성 논쟁

김중회 <금융감독원 부원장>

지난해 국내 은행이 9조원에 가까운 사상 최대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하면서 은행이 공익성은 외면한 채 지나치게 수익성을 중시해 과도한 수수료를 받고 있다는 비판이 확산되고 있다. 은행 수수료의 적정성에 대한 논쟁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며 이는 종종 감독 당국을 깊은 딜레마에 빠지게 했다. 소비자는 은행이 원가에 근거하지 않고 높은 수수료를 책정해 손쉽게 수익을 높인다고 주장하는 반면 은행은 서비스의 가치와 발생 원가에 근거해 수수료를 결정하기 때문에 은행 수수료가 부당하게 높은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은행 입장에서는 억울한 면도 있다. 지난해 은행은 수수료를 포함한 비이자수익이 전체의 18%로 미국의 44%는 물론 일본의 27%보다 월등히 낮아 은행수익이 이자수익에 과도하게 편중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국내 모든 은행이 송금 수수료 등 일반 고객으로부터 받은 수수료는 약 9,000억원으로 총수익의 3.5% 수준임에도 은행이 시민단체나 여론으로부터 가장 많이 비판받는 부분이다. 몇 년 전 모 은행은 수수료의 객관성을 높이기 위해 수수료 원가 산출시 시민단체가 참여해줄 것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한 적이 있다. 은행은 이와 같이 수수료를 최대한 합리적으로 결정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소비자는 은행의 수수료 결정 과정이 투명하지 못하고 은행이 수수료를 발생 원가와 관계없이 과거 관행에 따라 은행에 유리하게 수수료를 책정함으로써 은행은 높은 수수료 수입을 올리고 있고 소비자는 그만큼 피해를 보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소비자의 주장도 일부 일리가 있다. 전산망의 발달로 자기앞수표 추심은 지역에 관계없이 발생 원가가 동일한데도 일부 은행은 지역에 따라 자기앞수표 추심 수수료를 달리 받고 있는가 하면 일부 은행은 영업시간 이외의 ATM 이용 수수료를 책정하면서 발생 원가를 적절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감독 당국의 입장에서는 소비자와 은행 모두의 불만을 최소화하도록 은행 수수료가 수요와 공급의 원리에 따라 시장에서 합리적으로 결정되는 것이 바람직하고 감독 당국이 가격결정에 개입하는 것은 최대한 자제한다는 방침이다. 문제는 수수료 징수 대상이 되는 금융서비스시장이 효율적으로 작동하는 경쟁시장으로 보기 어렵고 소비자 또한 은행 수수료의 원가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부족함에 따라 은행과 소비자는 끊임없이 서로 상반된 주장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은행이 제공하는 서비스에 대해서 적절한 수수료를 받는 것은 은행은 물론 금융 이용자에게도 도움이 된다. 은행이 일부 서비스에 대해 수수료를 받지 않을 수는 있으나 영리기업인 은행은 해당 서비스 제공에 수반되는 비용을 이자 또는 다른 원가에 전가할 수밖에 없다. 특히 국제시장에서 거대 은행과 경쟁을 해야 하는 은행으로서는 수익 다각화를 위해서 수수료를 면제하거나 지나치게 감면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은행의 수수료 면제 또는 감면은 서비스를 제공받지 않는 다른 소비자에게 비용을 전가해 자본주의 경제의 근간인 수익자 부담원칙에도 위반될 뿐만 아니라 수수료를 받지 않는 서비스의 품질 개선에도 소극적일 것이기 때문에 은행의 수수료 면제나 감면은 소비자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은행 수수료는 금융서비스 공급자의 원가를 적정하게 반영하면서 금융 소비자의 편익을 최대한 높일 수 있도록 시장참여자의 경쟁에 따라 합리적이고 공정하게 결정되는 것이 중요하며 감독당국은 시장기능이 최대한 효율적으로 작동하도록 시장 감시자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방침이다. 이를 위해 최근 감독 당국은 금융 이용자의 권익을 보호하고 은행 수수료가 보다 합리적으로 결정되도록 일부 불합리한 수수료를 폐지하거나 개선하도록 유도하는 한편 수수료 원가산정 표준안(Best Practice)을 마련하고 원가계산시스템의 객관성과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산출 원가의 외부검증을 강화하도록 은행을 지도함과 아울러 은행간 수수료 비교공시를 강화해 금융 이용자의 합리적인 선택을 적극 지원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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