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서경이 만난 사람] "농민들에 실익 주는 기관 거듭날것"

이 수 화 농촌진흥청장<br>수익성 높은 유기농기술등 R&D분야 대폭 보강<br>기능 일부 민영화·해외인력 영입등 조직 개편도<br>식량안보 차원 해외기지 개발·인식 전환도 절실



“기관이 농민소득 제고와 농업 발전에 제대로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는 질책으로 받아들입니다. 앞으로 실용연구와 기술지도로 농업인들에게 실질적인 이익을 주는 기관으로 재탄생할 것입니다”. 정부조직개편 과정에서 전국에 총 2,200명, 박사급만도 850명의 인력을 거느린 매머드 기관인 농촌진흥청이 폐지 논란으로 홍역을 겪었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살아남았지만 농진청에는 조직혁신과 시장개방에 대응한 농업 경쟁력 제고라는 막중한 책임이 주어졌다. 이수화(사진) 신임 농촌진흥청장은 “시대에 맞도록 연구영역과 조직을 개편할 것”이라며 농업과 조직 살리기를 위한 포부를 밝혔다. 이 청장은 “농업이 고부가가치를 창출하지 못해 침체돼 있던 것이 사실이지만 유능한 젊은 인력을 유인하고 유기농ㆍ환경농업 등의 가능성을 살린다면 희망이 있다”며 “어려운 농업 현실에 대응하기 위해 농진청의 임무도 새롭게 재정립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필요하다면 농진청 기능의 부분적 민영화와 외국 인력 영입도 추진할 계획이다. 31년간 농업관료로 한 우물을 파온 그가 농진청의 회생과 농업 발전을 위해 어떤 패를 집어 들지 귀추가 주목된다. -새 정부 조직개편에서 농진청이 큰 홍역을 치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농진청이 하는 일은 실제로 매우 많습니다. 과거 식량이 모자랄 때는 식량자급을 이루기 위한 중추적 역할을 했고 새마을운동을 통해 농촌계몽과 생활개선에도 기여한 바가 많았지요. 하지만 지난 90년대 세계무역기구(WTO) 출범 이후 변화하는 환경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것이 문제였습니다. 사실 한국의 곡물기술은 세계 5위 수준에 달합니다. 그런데 농민 소득은 그에 한참 못 미치는 상황이지요. 농진청 민영화 논란도 거기에서 비롯됐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농진청이 하는 일들은 이론적으로 설명이 안되는 부분이 많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계획을 잘 세워 농업인들에게 실익이 되는 현장 중심의 조직으로 거듭나야 함은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인 조직혁신 방안은 있습니까. ▦이달 초 농민단체와 언론계ㆍ학계 등이 참여하는 ‘혁신추진단’을 구성해 운영하고 있고 이달 말까지 농진청 혁신방안 초안을 마련해 오는 6월 말까지는 관련 법령과 직제 개정을 준비할 계획입니다. 우선 혁신방향을 말하자면 농진청은 연구개발(R&D) 기관이면서도 새 기술을 농민에게 전파하는 기관이 돼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래야 원가를 줄이고 생산성을 높일 수 있습니다. 아울러 지금까지 농진청은 곡물, 특히 쌀에 대한 연구에 주력했지만 수익성이 높은 유기농 기술 등 다른 분야에 대한 대폭적 보강도 필요한 상황입니다. 이의 일환으로 농업대학을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식품과 농가의 연계업무도 확대할 계획입니다. 선진국 사례를 연구해 농가 소득을 높이는 실용적 방안을 찾기 위해 미국과 유럽으로 조사단도 파견할 예정입니다. 이를 통해 민영화할 부분은 과감하게 민영화하고 기능을 합칠 부분은 합쳐 전체적인 밑그림의 리모델링을 할 계획입니다. 현재 850명에 달하는 박사급 인력이 불필요한 연구를 하는 부분도 분명 있기 때문에 비효율은 과감하게 해소하고 외국에서 DNA 분야 연구인력을 영입하는 것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만 농진청 조직 개편은 6월 국회에서 논의돼야 할 사항이고 농업계의 동의도 구해야 하므로 쉬운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최근 식량위기가 다시 부각되면서 농업의 중요성이 높아졌습니다. ▦우리나라의 식량 자급도는 28%, 사료를 제외하면 50% 수준이지만 쌀을 제외한 자급도는 미미한 수준입니다. 그런데 최근 국제적인 수요 증대로 식량 가격이 2배가량 오르면서 우리나라로 돌아올 몫이 없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지요. 이 같은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대책으로 우선은 경지이용을 최대한 높이는 방안을 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현재 농지의 10%에 불과한 이모작 면적을 두 배 정도로 늘림으로써 사료자급을 높이는 것입니다. 또 농사비용을 줄여야 하는데 이는 에너지 효율과도 관련된 문제입니다. 무엇보다 시장경제하에서는 수익성이 있어야 합니다. 시장에서 가격보장이 안 된다면 농사를 지을 사람은 없게 되지요. 그런 부분도 같이 해결돼야 할 것입니다. -해외농업개발에 대한 논의도 많은데요. ▦사실 70년대 말에도 미국이나 아르헨티나ㆍ연해주 등의 농지 개발이 추진된 바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토질이나 타당성 조사도 제대로 안하고 농업을 하겠다고 해외로 나간 사람들이 도시로 나가버리는 등 문제가 많았고 정부 지원시스템도 1985년 이후로 끊긴 상태입니다. 해외개발은 미리 투자를 해두고 식량이 부족할 때 들여오는 일종의 보험 같은 것이지요. 그러므로 반드시 해야 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정부가 나서서 상대국 정부로부터 확실한 땅에 대한 보장협약을 받아주고 해당 지역에 대한 사전 타당성 조사를 하는 등 간접적인 지원을 해야 합니다. 민간이 직접 할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지요. 일본은 이 같은 해외식량기지 운영을 잘 하고 있습니다. -우리와 입장이 비슷한 일본의 식량안보는 어떤 상황입니까. ▦일본은 1976년부터 사실상 농업을 포기했습니다. 즉 농업을 포기하고 농촌 살리기 개념으로 갔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현재 일본 농가에서는 농업 외 소득이 90% 이상이고 농사는 주말에 대형 농기계로 잠깐 짓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식량안보에 관해서는 아까도 말했듯이 해외기지 발달이 강점입니다. 일본은 국가 차원에서 해외 식량확보에 나선 결과 지금은 세계적인 곡물 메이저인 미쓰비시 등 일본 자본이 항상 일정 물량의 식량을 확보해두고 있는 상황입니다. 일본은 모든 부문에서 미국을 가상의 적으로 보고 미국의 봉쇄에 대한 가상 정책을 세우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나라는 식량안보 개념이 사실상 없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그동안 우리는 ‘농촌문제=노인문제’ 정도로 인식하면서 농촌을 등한시해왔던 게 사실인데요. ▦사실 가장 중요한 것이 농업의 개념 정립이라고 봅니다. 현재 우리나라 농업은 국내총생산(GDP)의 3.5% 수준에 불과한데 식품 부가가치를 고려하면 그 비중은 현재의 2배로 늘어나게 됩니다. 또 유기농ㆍ환경농업 등의 가능성을 생각하면 우리 농업에는 충분히 희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2년 전에 농업은 바닥을 쳤지만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그래도 빛이 보이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먹는 것으로만은 해결되지 않는 농산물 수요를 다양화해야 합니다. 화장품이나 아이스크림ㆍ민속주 등을 통한 수요 창출인 한 예지요. 또 종합 브랜드 육성, 농촌 여성의 창업을 돕는 비즈니스 지원과 농촌에 대한 교육기회, 주택 지원 등을 제공해 능력 있는 젊은 세대를 농촌으로 끌어들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농진청이 주도하는 기술개발과 기술의 산업화도 강화돼야 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현재 우리 농업기술이 세계적이라고는 하지만 쌀 생산기술은 G7 수준인 데 반해 저장ㆍ가공ㆍ포장 등 부가가치 제고 기술은 20위권에 머무는 수준입니다. 주요국과의 농업기술 격차도 현재 미국보다 5.9년 뒤지고 중국보다 3.3년 앞서 있지만 2010년에는 미국을 3.9년 차이까지 따라잡는 데 반해 중국에는 1.9년 차이로 추격당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앞으로는 딸기ㆍ화훼 등 자유무역협정(FTA) 관련 49개 품목 관련 기술, 병충해나 유기농약 기술개발 등 친환경 농업기술, 그리고 로열티 기술 개발에 역량을 집중시킬 계획입니다. 또 농식품산업 육성과 수출 증대를 위해 현장기술 지원을 강화하고 고부가가치 창출을 위한 경영마케팅 기술도 확산, 보급할 계획입니다.
농진청, 마케팅기술 보급등 10대과제 선정

농업 고부가화·비용 절감 지원 농촌진흥청은 1차 산업에서 벗어나 2, 3차 산업과 연계되는 농업의 패러다임 변화에 부응하고 선진농업기술 강국의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올해 주력할 10대 실천과제를 선정했다. 국제 곡물가격 급등에 따른 식량안보 필요성 증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고유가 등으로 갈수록 어려워지는 농촌을 위해 현장 중심으로 문제 해결에 나서기 위한 과제들이다. 우선 수요자인 농업인이 필요로 하는 실용기술을 농촌 현장에 확산시키기 위해 농식품산업 육성을 위한 연구와 기술지원을 늘리고 농업 고부가가치화를 위해 경영마케팅 기술을 널리 보급할 계획이다. 가령 쌀 수요 창출을 위해 쌀수제비ㆍ쌀빵 등 다양한 가공제품을 개발하고 농가의 사이버마케팅 전략을 지원하는 등의 방안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또 농식품 수출을 늘리기 위해 수출전담 연구팀을 확충하고 딸기나 장미 등 수출국 기호에 맞춘 국산품종 보급을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농가비용을 줄이기 위한 기술보급 차원에서 청보리 재배기술과 화학비료 절감기술의 개발 보급, 고유가에 대응한 농업에너지 절감기술 개발 보급도 주요 과제로 꼽았다. 축산농가 사료로 이용되는 청보리는 지난해 현재 7개 품종을 오는 2015년까지 15품종으로 확대하고 화학비료 사용을 2013년까지 40% 감축시킬 계획이다. 또 고유가 시대를 맞아 시설구조 개선을 통한 보온력 향상으로 40~50%, 자연에너지 및 대체연료 이용기술 개발로 30~40%의 에너지 절감 효과를 낼 계획이다. 아울러 장기적인 미래에 대비한 기초연구 차원에서 농업생명공학 연구를 강화, 현재 세계 10위 수준인 국제 위상을 2012년에는 G7 수준까지 끌어올리는 것이 농진청의 과제다. 이와 함께 농진청은 자연순환농업기술 보급, 안정적인 식량확보를 위한 품종재배기술 제고, 농촌 활성화를 위한 어메니티 자원 활용 등도 앞으로 집중 추진해야 할 실천과제로 꼽았다.

이수화 약력
▦55년 경북 청도 출생 ▦경북고ㆍ성균관대 행정학과 ▦행정고시 19회 ▦미국 미주리대 경제학 석ㆍ박사 ▦농림부 식량정책과장 ▦농업정책과장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장 ▦농림부 식량생산국장 ▦산림청 차장

/대담=이용웅 부국장 대우 경제부장 yyong@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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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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