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 매출 200억원대의 새시업체를 운영 중인 A씨는 최근 한 은행을 찾았다가 씁쓸한 뒷맛을 남긴 채 은행 문을 나왔다. 2~3년 정도 걸리는 설비투자를 하기 위해 대출을 요청했으나 은행측은 만기 1년 이상은 불가능하다고 잘라 말했다. 거기다 방카슈랑스 가입까지 강요했다.
정부는 최근 금융권에 이 같은 왜곡된 대출행태가 확산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재정경제부의 한 관계자는 “지난 7월 중기 대책을 내놓았지만 왜곡된 행태를 바로잡지 않고는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며 대출행태를 수술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밝혔다. 최근 금융정책협의회에서 함부로 대출회수를 못하도록 은행권의 내규를 고치기로 한 것도 같은 줄기다.
정부는 아울러 금융감독원을 통해 오는 10월 중순께 대규모 인력을 투입, 내규를 제대로 고쳤는지를 집중 파악할 방침이다. 은행권이 경쟁적으로 대출회수에 나설 경우 ‘중기 부실→은행 건전성 악화→금융대란’이라는 악순환 구도를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정책방향에 대한 비판의 시각도 적지않다. 관치(官治) 논란은 차치하고 부실기업 구조조정을 지연시킬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특히 정책이 명절을 앞두고 발표됐다는 점도 짚어볼 대목이다.
한 재경부 당국자는 “명절을 앞두고 중소기업들의 어려운 목소리가 커지고 정치권의 요구도 있어서…”라고 언급했다. 전시용 이벤트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은행들은 불만을 애써 감춘 채 입조심을 하며 대책마련에 부심 중이다. 전일 은행장회의를 통해 “중소기업 지원확대를 위한 새로운 방안은 없다”고 정부의 중기지원 확대요구에 불만을 드러냈던 것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정부가 ‘신관치’ 논란 속에서도 예상보다 훨씬 강도 높게 은행들을 다그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뚜렷한 지원책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무작정 대출을 늘렸다 잘못되면 은행 부실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도 부담이다. 한 시중은행의 여신담당 부장은 “정부의 개입을 이해하지만 은행이 자선단체도 아닌데 무작정 대출을 늘릴 수는 없는 것 아니냐”며 어려움을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