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저항세력의 거센 공격과 이라크인들의 비협조로 전후 처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미국이 이라크 주권이양 시기를 앞당기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미국 언론들이 11일 일제히 보도했다.
미국은 내년 말까지 헌법제정과 총선을 끝낸 뒤 주권을 이양하겠다는 방침을 바꿔 무능하기 짝이 없는 현 이라크 과도통치위원회를 보완ㆍ대체할 새 기구의 창설을 통해 주권이양을 추진하는 방안을 구상 중이다.
USA투데이는 폴 브레머 이라크 주재 최고 행정관이 이날 워싱턴으로 급거 귀국했다고 전하면서 “이번 귀환은 이라크 전후처리 계획과 주권이양 시간표를 새로 짜기 위한 것”이라며 “행정부가 이라크 정치체제에 관한 새 틀을 짜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브레머 최고행정관은 워싱턴에서 딕 체니 부통령, 콜린 파월 국무,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 콘돌리사 라이스 안보보좌관, 조지 테닛 중앙정보국(CIA) 국장과 회동할 예정이다.
이 신문은 현재 검토되는 사안 중 핵심은 미국이 현지의 실질 세력을 모아 과도통치위원회보다 더 실질적 권한을 행사하는 과도정부를 구성할지 여부라고 전했다.
워싱턴포스트와 MSNBC 방송도 “행정부 내 논의의 골자는 과도통치위를 해산시킬지 여부와 실권을 지닌 새 행정기구를 만드느냐의 여부”라고 전했다.
리처드 루가 미 상원 외교위원장은 과도통치위의 무능력을 맹비난하면서 아프가니스탄에서처럼 지방군벌 등 실세를 과도정부에 참여시키는 방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일부 미 행정부 관리들은 과도통치위의 해산을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밝혀 과도통치위를 존속시킨 채 새 행정기구를 창설하는 방안도 검토중인 것으로 보인다.
미 행정부의 이번 검토는 지난달 말 라마단 시작을 계기로 현지 저항이 거세지고, 8월 말 출범한 과도통치위가 이라크인들로부터 신뢰를 얻기는커녕 중요한 사안에 대해서 이렇다 할 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특히 미국은 과도통치위의 무능력한 행태로 인해 12월15일까지 이라크 주권이양 일정을 유엔에 제출하라는 안보리 결의안 의무사항을 이행하지 못하게 될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
미국의 새 구상이 확정된다면 과도통치위를 통해 점진적으로 주권이양을 추진해온 미국이 자신들의 정책이 완전히 물거품이 됐음을 자인하는 꼴이 된다.
미국의 입맛에 따라 구성된 과도통치위가 결국 이라크인들로부터 외면당했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은 물론 이라크 주권이양을 앞당기라는 프랑스 독일 러시아들의 요구를 뒤늦게 수용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한편 이라크 저항세력은 이날 오후 미국이 설정한 안전지대(그린 존)에 있는 바그다드 미군 사령부를 향해 지대공 로켓 공격을 감행했다. 미군은 2발의 발사체가 그린 존에 떨어졌으나 사상자는 없었다고 밝혔다.
<이영섭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