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김나영 기자의 1일1식(識)] <242> '직장인 사춘기'




반항심 최고조, 톡하고 건드리면 말 그대로 터질 것만 같은 그런 시절. 사춘기라는 단어는 적어도 내게는 그런 의미다. 스스로에게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아 한없이 헤매야만 할 것 같은 시간. 10대에 겪지 않으면 20대 혹은 30대에라도 아니 그 이후에라도 한번쯤은 찾아올 듯하다. 사전적 의미대로 ‘정신적으로 성인이 되는 시기’로 정의한다면 꼭 겪어야 할 중간과정쯤으로 해석해도 좋을 것이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면 다시 아이로 돌아가게 되는 걸까. 사춘기를 겪은 사람도 웬만해선 피해갈 수 없다는 ‘직장인 사춘기’가 따로 있단다. 증상은 일반 사춘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의욕이 없고 쉽게 짜증나고 ‘내가 꿈꾸던 인생은 이게 아닌데’라는 생각이 자꾸 머리를 맴돈다면 의심해 볼 법하다. 대처법은 두 가지다. 꾹 참아내거나 새로운 선택을 하거나. 수동적인 사람이라면 친구들에게 회사 험담을 늘어놓으며 속 풀이 하고, 좀 더 능동적인(?) 사람이라면 다른 회사를 알아보거나 유학, 대학원 진학 등의 결단을 내리기도 한다. 회사를 그만두고 세계일주를 시작한 사람이나 꿈을 좇아 창업에 뛰어든 이의 이야기를 전해 들으며 대리만족하는 경우도 있다. 또는 반대로 싸늘한 회사를 뛰쳐나가 더 추운 현실에 동사한 옛 동료의 사연을 곱씹는다. 버티길 잘했다는 안도감과 함께 드라마 ‘미생’ 속 대사 ‘밖은 지옥이야’를 곁들여 가면서.


물론 직장인 사춘기의 본질은 몸 담고 있는 회사나 직종에 비전이 없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판단보다 부수적인 업무 환경이 직장인 사춘기를 초래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직장인 사춘기는 개인차가 있겠지만 대개 업무가 어느 정도 익숙해지는 시기에 찾아온다. 신입사원 때는 몰랐던 상사, 직장선배의 무능함이 속속 눈에 띄기 시작하는 것이다. 원칙과 강단이 있다고 존경하던 선배는 융통성 없는 꽉 막힌 사람으로 전락한다. 그뿐이랴. 갓 들어온 신입사원은 일도 못하고 눈치도 없다. ‘나 때는 안 그랬는데’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걸 간신히 참아내는 게 한 두 번이 아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회식장소 섭외부터 신입 담당 교육, 상사 의전까지 온갖 뒤치다꺼리를 도맡는다. 손해 본다는 생각이 안 드는 게 되려 이상할 정도다. 그래서 ‘끼인 연차’는 괴롭다는 말이 있다. 중간다리 역할을 해야 하는데 잘 한다고 딱히 공로를 인정받는 것도 아니면서 제대로 못 해내면 욕 먹기 십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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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부수적 환경이 초래하는 직장인 사춘기의 속내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나만 이렇게 일해 억울하다’가 아니라 ‘서운하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좀 더 정확하게는 비슷한 시기를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수고로움을 알아주지 않는 데 선배에게 섭섭함이 크다. 말 한마디라도 ‘수고한다’ ‘고생이 많다’ 해주면 좋을 텐데 좀처럼 그런 이야기를 듣기가 쉽지 않은 게 우리네 현실이다. 나의 수고로움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면서 불만이 쌓인다.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충족되지 않은 데서 비롯된 현상이다.

더 나은 미래를 꿈꾸며 새로운 길을 택하는 동료에게 ‘직장인 사춘기’는 반드시 필요한 과정일지모른다. 하지만 위에서 까이고 아래에서 치여 ‘못해먹겠다’며 새로운 선택을 강요받는 지경이라면 애초에 최선의 선택이 불가능한 것은 아닐까. 얼마 전 ‘따뜻한 말 한마디’로 수많은 가출 청소년을 엄마 품으로 돌아오게 한 김성중 경위의 이야기가 많은 사람을 감동시켰다. 주변에 유독 지치고 힘들어 하는 동료가 있다면 ‘수고한다’고 한 마디 건네 보자. 누군가에게 상상 외로 큰 힘이 될 수도 있으니까.


김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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