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위기로 부진의 늪에 빠졌던 설비투자가 2년 연속 5%대 증가율을 이어가고 있지만 경제 전반에 온기를 퍼뜨리지는 못하고 있다. 통상 설비투자는 미래 경제성장을 담보하는 가장 확실한 신호로 해석된다.
지난해(5.8%)와 올해(5.7%)에 이어 내년까지 투자 추세가 이어진다는 것은 중국 경기둔화 등 대내외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기업이 미래에 대한 투자를 늘린다는 신호로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설비투자의 경기선행성이 약화했고 그나마 최근 투자행태를 들여다보면 적정 수준을 이어가기도 벅차다고 지적했다.
◇"중국 추격 따돌려야" 노후설비 교체=설비투자 회복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극도로 커진 대내외 불확실성에 따라 기업들이 투자를 주저하다가 지난해부터 노후설비에 대한 교체를 중심으로 투자에 나섰기 때문이다. 중국기업의 추격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올해 말 미국 금리인상 이후 뒤따를 자본조달 비용과 자본재 가격 상승 등의 악재를 미리 피하자는 목적도 있다.
정부의 투자독려도 영향을 미쳤다. 산업은행을 통해 추진 중인 총 30조원 규모의 '기업투자촉진프로그램'과 잇달아 쏟아낸 각종 투자 활성화 대책들이 어느 정도 효과를 발휘했다는 평가다.
내년 설비투자도 4%대 안팎이 예상된다. 국회예산정책처 전망치는 5.2%, 한국은행은 4.8%다. 예정처 관계자는 "그동안 투자를 미뤄왔던 대기업들이 중점산업인 항공기와 반도체, 기계용 장비, 운송장비 등에 투자한 효과"라며 "설비투자는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투입되기 때문에 한번 투자가 시작되면 수년간 숫자가 늘어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한은 관계자도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설비투자 비중은 8.5%로 소득 수준이 비슷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에 비해 높은 편"이라며 "다만 고도성장기 이후 우리 경제의 자본축적도가 높아져 투자효율성은 감소했다"고 말했다.
◇수입 줄이고 한계기업 정리해야 성장과실 이어져=한은에 따르면 우리나라가 3%대 초중반의 경제성장률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매년 5%대 설비투자가 필요한 것으로 분석됐다. 문제는 설비투자가 성장에 미치는 영향력이 점차 줄고 있다는 점이다. 보통 설비투자는 경제성장률을 크게 웃돌며 경기의 선행지표 역할을 해왔지만 최근 들어서는 동행 내지는 후행한다.
원인은 크게 두 가지다. 우선 설비투자의 자본재 수입의존도가 50%에 육박한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설비투자 자본재의 총국내수요 116조3,000억원(2011년 기준) 가운데 약 44.8%에 달하는 52조1,000억원이 수입된다. 정밀기계와 수송기계, 전자전기기계 등의 절반 가까이를 해외에서 수입한다는 의미다. 설비투자를 늘려도 국내 고용이나 생산이 늘어나기 힘들 수밖에 없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이사대우는 "현재 정부는 제조업 혁신을 목표로 스마트 공장을 추진하고 있지만 우리 기술을 바탕으로 한 설비투자를 할 수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한계기업도 설비투자를 까먹고 있다. 한은은 한계기업이 전체 설비투자를 연평균 1.2%포인트 떨어뜨린다고 분석했다. 지난 2011~2014년 정상기업은 설비투자를 연평균 2.2% 늘렸으나 한계기업은 도리어 20.9% 감축했다.
규제에 막힌 서비스업 설비투자도 문제다. 제조업 부진으로 서비스업 설비투자가 상대적으로 호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운수·보관업(택배차량), 정보통신업(LTE) 등 일부만 선전할 뿐 도소매, 금융·보험, 보건·의료 투자는 규제에 막혀 저조하다.
김성태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기존 업종과 설비에 대한 과잉투자로 자본의 한계 생산성이 저하되고 투자수요가 둔화됐다"며 "한계기업에 대한 구조조정과 기술혁신을 통해 설비투자의 질을 높여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연선기자 세종=박홍용기자 prodigy@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