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시련'은 말년에 내가 할 수 있는 큰 작품이 아닐까 싶어요."
배우 이순재(사진)가 국립극단의 연극 '시련'으로 연말 무대를 장식한다. 올 초 김윤철 국립극단 예술감독에게 먼저 '제대로 만들어 올려보자'고 제안했던 작품이다.
이순재는 19일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시련'은 힘든 작품이지만 분명히 이 시대에 줄 메시지가 있는 연극"이라고 소개했다. '세일즈맨의 죽음'으로 유명한 미국 극작가 아서 밀러는 지난 1953년 이 작품을 발표해 매카시즘 광풍에 사로잡힌 당시 미국 현실을 강하게 비판했다.
밀러가 생전 '가장 애착을 가진 작품'이라고 말한 '시련'은 1692년 폐쇄적인 마을 세일럼을 배경으로 도덕적으로도 완벽하지 않고 자신과 관련 없는 일에는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그래서 평범한 농부 프락터(지현준)가 마녀사냥의 한가운데서 '거짓 고백으로 얻는 삶'과 '명예로운 죽음'을 두고 고민하는 과정을 그린다. 그 속에 주민들의 잘못된 종교적 믿음과 사적 욕망, 권력에 대한 집착이 만들어낸 집단적 광기가 펼쳐지고 이들이 개인과 사회를 어떻게 파괴해가는지도 생생하게 묘사된다.
이순재는 배우 이호성과 함께 자신의 권위를 지키기 위해 원칙과 주장을 바꾸지 않고 권력의 광기를 보이는 댄포스 역을 맡았다. 그는 "대사도 200여마디나 되고 쉴새 없이 상대방과 붙어야 해 체력적으로도 힘들다"며 "힘든 작품이고 힘든 역할"이라고 혀를 내둘렀다. 오래전의 실화를 바탕으로 1950년대 만들어진 이야기지만 '시련'이 지닌 강력한 메시지는 여전히 유효하다.
"극 중 등장인물은 지금 우리의 모습과 비슷해요. 정치적 편견에 의해 인권이 말살되는 부분, 인간의 존엄에 대한 생각 등 이 시대에 이 작품이 줄 수 있는 메시지도 있죠. 앞으로의 역사에서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점도 그렇고." 이순재는 이 의미를 "시대를 초월하는 고전의 명작성"이라고 표현했다.
국립극단이 광복 70주년을 맞이해 기획 주제로 내세운 '해방과 구속'의 마지막 작품으로 오는 12월2~28일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한다. 무대 위에서 배우의 동작을 더 생생하게 볼 수 있도록 36석의 '특별관람석'도 마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