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본드와 스파이더맨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영화 ‘007시리즈’와 ‘스파이더맨’의 주인공인 둘은 저마다의 장기로 악당을 제압하는, 대(代)를 이어 사랑받는 글로벌 영웅이다. 백인 배우의 전유물이던 두 캐릭터는 최근 ‘인종 이슈’로 비슷한 시기 화제를 모았다. 스파이더맨은 영화 제작사와 만화 원작사가 ‘남자 주인공은 백인 이성애자여야 한다’는 계약을 맺었다는 보도가 나오며 논란의 중심에 섰고, 007 시리즈는 8대 제임스 본드 후보로 흑인 배우 이드리스 엘바가 거론되며 찬반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흑인 배우의 진가는 1920년대 공연 무대에서 크게 발휘됐다. ‘셔플 얼롱’은 1921년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초연한 최초의 흑인 주연(배우 전원 흑인) 뮤지컬이다. 이전까지만 해도 검은 피부의 배우는 별 볼 일 없는 배역을 맡았고, 비중 있는 흑인 캐릭터도 얼굴을 검게 칠한 백인이 연기했다. 셔플 얼롱을 계기로 뮤지컬 무대에서 흑인 배우, 흑인 음악(재즈)이 영역을 확장할 수 있었다. 뮤지컬 역사에서 1차 세계대전 직후(1918년)부터 세계 대공황(1929년) 전까지를 ‘재즈의 시대’라고 부르는데, 이 시기 흑인들이 들여온 고유의 리듬과 감성은 백인 음악가에게 큰 영감을 줬다. 1935년 초연한 거슈인 형제의 걸작 오페라 ‘포기와 베스’(1935년)도 흑인을 주인공으로 캐스팅해 흥행에 성공한 대표작이다.
최근엔 백인의 전유물이던 배역도 당당히 꿰차는 흑진주가 잇따르고 있다.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의 지난해 브로드웨이 공연에선 놈 루이스가 흑인 최초로 팬텀 역을 맡아 호평을 받았다. ‘신데렐라’도 지난해 키키 파머를 캐스팅해 ‘건강한 구릿빛 피부’의 재투성이 아가씨를 선보였고, ‘레미제라블’ 역시 지난 7월 (지금은 고인이 된) 카일 장 밥티스트에게 ‘최초의 흑인 장발장’ 역을 맡겼다.
공연예술에서의 블랙 파워는 오랜 시간에 걸쳐 꾸준히 그 역량을 증명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흑인의 수상이나 캐스팅 소식 앞엔 지금도 ‘흑인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곤 한다. 혹자는 ‘지금이 어느 때인데’ 하며 지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흑인 예술가에게 캐스팅과 수상이 ‘당연한 자격’이 된 건 비교적 최근의 일. 힙합 같은 특정 소재가 아니고서야 해외 뮤지컬·드라마 하면 여전히 파란 눈과 흰 피부의 배우를 떠올리는 관객이 많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당장 매년 한국을 찾는 해외 유명 뮤지컬을 떠올려 보라. 주연 배우는 누구인가. 또 당신이 기대하는 배우는 누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