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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하는 동대문] 대한민국 의류 유통의 메카, 동대문 상권 100년의 발자취

진화하는 동대문 상권, 쇼핑·관광 메카로 떴다

<이 콘텐츠는 FORTUNE KOREA 2015년 12월호 스페셜 리포트 ‘변화하는 동대문’의 상위 기사입니다.>

▶서울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관통하는 지역을 떠올려보자. 굴곡진 한국 정치사의 중심 여의도, 대한민국 경제 발전을 상징하는 ‘한강의 기적’, 서울시 랜드마크 ‘서울타워’가 위치한 남산, 서울의 도시화를 상징하는 강남 등 수많은 지역이 머릿속을 스쳐 간다. 하지만 여기서 빼놓을 수 없는 지역이 또 있다. 바로 ‘동대문’이다. 과거 조선 시대부터 2015년 현재에 이르기까지 동대문 지역의 모습은 수없이 변신을 거듭해왔다. 화려한 초고층 빌딩이 등장했고, 거리는 깨끗해졌으며, 동대문 지역 문화를 직접 보고 들으려는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최근에는 ‘디자인 서울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옛 동대문운동장 부지에 건립된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가 서울시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떠오르기도 했다.


이처럼 백여 년 가까운 시간 동안 수많은 변화를 겪은 동대문 지역에서도 변하지 않은 게 딱 한 가지가 있다. 바로 동대문이 서울, 나아가 대한민국 상권(商圈)을 대표하는 지역이라는 점이다.

전통적 재래시장으로 시작해 현대식 상권, 신흥 상권에 이르는 변화를 거치며 동대문 지역은 현재 대표적인 대한민국 쇼핑, 특히 패션 의류 시장의 메카로 자리를 잡았다. 물론 동대문 상권엔 늘 활황(活況)기만 있었던 건 아니다. 강남, 명동 등 신흥 상권이 동대문으로 향하던 소비자들의 발길을 되돌리기도 했다. 우후죽순 등장한 인터넷 쇼핑몰은 가격 경쟁력이라는 동대문 상권의 장점을 빼앗기도 했다. 그야말로 동대문의 부흥은 과거의 영광에 그치는 듯했다.

이런 까닭에 동대문 지역에 최근 불어닥친 변화의 바람은 꽤 긍정적이다. 정부와 기업의 든든한 지원을 등에 업고 과거의 영광을 되찾기 위한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 대형 면세점 유치가 확정됐고, 문화와 패션의 융합을 통한 동대문 지역을 살리기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 포춘코리아가 대한민국 상권 1번지의 위상을 되찾으려는 동대문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살펴봤다. / 김병주 기자 bjh1127@hmgp.co.kr◀


쇼핑·관광 메카로 자리매김한 동대문 상권의 야간 전경.<BR><BR>쇼핑·관광 메카로 자리매김한 동대문 상권의 야간 전경.



“뭐가 그리 궁금한데예? 잠깐 안에 들어가서 앉아 계이소.”

걸쭉한 경상도 사투리가 인상적이었다. 가게 내부를 살펴봤다. 5평 남짓한 가게에는 화려하면서도 기품이 넘치는 한복들이 가득 전시돼있었다. 세월의 흔적 역시 내부 곳곳에서 살펴볼 수 있었다. 따뜻한 물이 담긴 낡은 주전자와 겹겹이 쌓인 헤어질대로 헤어진 낡은 방석이 가게, 나아가 동대문 상권의 오래된 역사를 느끼게 해주었다.

황 씨는 주단 가게 사장님이다. 이곳에 정착한 지 40여 년이 흘렀다고 한다. 황 씨의 가게는 원래 의류 원단 판매점으로 출발했다. 황 씨의 시어머님이 운영하던 이 가게는 시어머님이 작고한 후 지난 1989년부터 황 씨가 운영하고 있다. 처음 가게를 물려받았던 당시의 동대문 모습은 어땠는지 궁금했다. 걸쭉한 사투리로 입을 연 황 씨의 이야기를 소개한다(사투리를 표준어로 바꿔 기술한다.).

“원래 가게가 있었던 곳은 종로구 예지동에 형성되어 있던 상설시장이었어요. 울산에서 가게를 운영하시던 시어머님께서 1960년 무렵 서울에 둥지를 트셨죠. 이후 1970년에 동대문종합시장이 문을 열면서 가게를 이전하셨어요. 처음 입주할 당시 기억은 아직도 생생해요. 막 서울에 상경한 20살 촌뜨기로선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어마어마한 규모여서 입이 쫙 벌어졌다니까요.”

황 씨의 기억처럼 1970년 문을 연 동대문종합시장은 당시 동양 최대 규모의 쇼핑몰이었다. 전국 최대의 원단 전문상가로 명성을 크게 얻은 동대문종합시장은 1960년대 초반부터 이어진 동대문 상권 형성기의 중심에 서 있었다.

◇100여 년 역사의 동대문 상권

동대문 상권의 태동은 일제 침략이 본격화되던 190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을사늑약을 앞세워 지속된 일제의 핍박은 순수 우리 민족자본을 황폐화시키고 있었다. 오래전부터 서민 장사꾼들이 일궈왔던 종로 일대 시장은 일본의 수탈대상 1순위였다. 당시 대한제국의 거상들은 일본의 수탈에 대항해 오롯이 민족자본으로 뭉친 시장을 만들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지난 1905년 배오개(현 종로 4가)의 거상으로 불리던 박승직(두산그룹 창립자)과 동대문 일대 상인들이 뭉쳐 국내 최초의 근대 시장인 ‘광장주식회사’를 설립한다(광장주식회사는 지금도 종로구 예지동에 있는 광장시장으로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이후 동대문 지역은 1961년 설립된 평화시장을 기반으로 하나의 상권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통일시장, 신 평화시장, 동화시장 등 다른 상가들도 우후죽순 개장했다. 평화시장을 시작으로 형성된 동대문 상권은 이때부터 하나의 전문 시장으로 변신해 나갔다. ‘의류 도매’가 바로 그 전문 영역이었다.


황 씨도 이를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당시 가정에서 꼭 갖춰야 할 필수품이 있었습니다. 재봉틀이었죠. 주로 가게에서 구매한 원단을 집에서 봉제해 옷을 입었거든요. 당시 동대문 시장에 입점한 가게들은 주로 원단을 판매했어요. 반대로 남대문 시장에선 기성복을 판매했죠. 그런데 점점 시간이 흐르면서 직접 옷을 만들어 입는 일이 줄어들었고, 그 때부터 동대문 일대 상인들도 원단 대신 기성복을 만들어 팔기 시작했어요. 저희도 그때부터 원단 대신 한복을 판매하기 시작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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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당시만 해도 동대문 상권은 의류 소매시장이 대다수를 이루고 있었다. 그렇다면 소매 중심의 동대문 상권이 전국 규모의 의류 도매시장으로 탈바꿈한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이유는 간단합니다. 바로 고속도로 건설과 고속버스 터미널의 등장 때문이었죠. 1970년에 운송회사별로 흩어져있던 고속버스 정류장이 통합됐는데, 통합 터미널이 들어선 곳이 바로 동대문 종합상가 근처였거든요. 이후 동대문 지역에 자리 잡고 있던 의류 상가들은 교통망 변화에 따른 혜택을 톡톡히 누리게 됐습니다. 서울에 한정돼있던 유통망을 전국으로 확대할 수 있었으니까요.”

그뿐만이 아니었다. 동대문을 지나는 지하철 2호선 개통과 동대문 일대 슬럼지구 개선 작업이 이뤄지면서 접근성이 한층 향상됐다. 이처럼 1980년대 후반까지 진행된 동대문 지역 개발은 동대문 상권 형성에 또 하나의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동대문 상권은 서울 중심지라는 입지적 요소, 도소매시장의 효율적인 분업 시스템, 정부와 기업의 과감한 지원정책과 투자라는 삼박자가 조화를 이루며 성장해왔다. 사진은 지방으로의 배송을 기다리는 동대문 도매물품 더미.<BR><BR>동대문 상권은 서울 중심지라는 입지적 요소, 도소매시장의 효율적인 분업 시스템, 정부와 기업의 과감한 지원정책과 투자라는 삼박자가 조화를 이루며 성장해왔다. 사진은 지방으로의 배송을 기다리는 동대문 도매물품 더미.



◇도소매 시장의 조화, 동대문 성장을 이끌다.

이야기를 나누는 30여 분 동안 4명의 손님이 황 씨의 가게를 방문했다. 결혼을 앞둔 예비 신랑 신부처럼 보였다. 혼주 한복 선물을 위해 방문한 이 젊은 커플들 손에는 얼핏 봐도 4~5개의 비닐봉지가 들려있었다. 모두 동대문의 대형 의류 쇼핑몰 이름이 쓰여 있는 봉투였다. “둘러보고 오세요”라고 말하며 손님을 보낸 황 씨에게 물었다. 언제가부터 우후죽순 들어선 대형 쇼핑몰은 황 씨 가게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을까? “사실 처음에는 불안했어요. 어마어마한 규모의 건물 내부에 의류 가게가 빼곡히 들어 선다고 하니 겁부터 앞섰죠. 그곳으로 사람들이 몰리면 내 가게의 매출이 떨어질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러나 결론적으론 제 생각이 완전히 빗나갔어요. 소매 판매량이 늘면서 오히려 매출이 상승했어요. 제가 가게를 물려받고 나서 가장 돈 냄새를 많이 맡은 때가 아마 그때였던 거 같습니다(웃음).”

황 씨의 말처럼 1990년대 초반부터 등장한 대형 쇼핑몰 건물은 동대문 상권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켰다. 1990년 등장한 동대문 상권 최초의 현대식 대형 쇼핑몰 ‘아트 프라자’를 필두로 디자이너 클럽, 우노꼬레, 팀204, 거평 프레야가 차례로 오픈하면서 동대문 상권에 본격적으로 현대식 쇼핑몰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특히 이들 쇼핑몰은 동대문 상권의 동쪽에 위치한 까닭에 ‘동대문 동부상권’이라고 불렸다.

그리고 동부상권의 팽창은 또 다른 상권을 만들어 냈다. 바로 ‘밀리오레’와 ‘두산타워’로 대표되는 ‘동대문 서부상권’이다. 지난 1998년 밀리오레 오픈을 시작으로 촉발된 서부상권은 이듬해인 1999년 두산타워, 2002년 헬로apm이 들어서면서부터 동부상권과 대등한 위치에 서게 됐다.

그 후 동부상권과 서부상권은 상호보완적 관계를 이뤄가며 동반 성장을 해나갔다. 동부상권은 전통적인 동대문 상권의 특성에 맞게 도매 위주의 영업을 펼쳤다. 반면 서부상권은 철저히 소매 위주의 복합쇼핑몰로 성장을 추구했다. 이러다 보니 서부상권에 필요한 의류를 동부상권에서 제작·납품하는 방식이 자연스럽게 형성됐다.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판매 시스템을 구축해 동대문 상권의 발전을 이뤄낸 셈이었다. 신평화시장에서 외국 바이어를 대상으로 여성복을 판매하는 강기주(41) 씨는 말한다. “동대문시장 내 상인들은 기본적으로 협력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도소매를 떠나 의류 업계에 종사한다는 일종의 동질감 때문일까요? 도매와 소매는 원래 협력할 수밖에 없는 관계이기도 하고요. 도소매상끼리 정기적으로 만나 최근 패션 트렌드를 공유하거나, 하청을 주는 의류 제조 공장들에 대한 정보도 나누며 상생하는 방안을 꾸준히 모색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기존 전통 재래시장과 도매 위주의 동부상권, 소매 위주의 서부상권이 입지를 다진 2000년대 초반을 기점으로 현재의 동대문 상권이 탄생하게 된다. 현재 동대문 상권에선 30여 개 상가와 총 3만 5,000여 개 점포가 운영되고 있다.

외국인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동대문 소매상가의 내부 모습.<BR><BR>외국인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동대문 소매상가의 내부 모습.



◇외국인 관광객을 사로잡다

동대문 상권을 둘러보다 보면 외국인 관광객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동대문이 하나의 관광명소로 자리를 잡으면서 지난해에는 700만 명이 넘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동대문을 찾았다. 동대문관광특구협의회에 따르면, 동대문 상권이 지금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 지난 2002년, 동대문 상권의 총 매출은 약 18조 3,000억 원에 달했다. 당시 정부는 동대문의 지역적 특성에 맞춘 정책을 내놓으며 ‘동대문 띄우기’에 집중했다. 그리고 2002년 5월에는 동대문 상권을 ‘동대문패션타운 관광특구’로 지정하고 동대문을 글로벌 패션 클러스터로 키우겠다는 야심 찬 계획도 발표했다. 이후 동대문 상권은 하나의 관광명소로 진화했다. 지난 2005년 완료된 청계천 복원사업은 동대문 상권을 더욱 쾌적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탈바꿈시켰다. ‘디자인 서울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옛 동대문운동장 부지에 건립된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는 여의도 63빌딩, 남산의 N서울타워를 잇는 또 하나의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했다.

동대문 상인들 역시 외국인 관광객 유입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평화시장에서 청바지 가게를 운영하는 윤지훈(30) 씨는 말한다. “가게를 방문하는 손님 중 60~70%는 외국인 관광객들이에요. 대다수는 중국인 관광객이지만 최근에는 한류 영향 때문인지 동남아 지역 분들도 많이 찾아오고 있습니다. 가끔은 엑소, 샤이니 같은 한류스타들의 사진을 보여주며 이 멤버가 입은 바지를 달라고 하는 관광객들도 있어요. 참 난감하죠(웃음).”

동대문 상권의 성장은 서울 중심지라는 입지적 요소, 도·소매시장의 효율적인 분업 시스템, 정부와 기업들의 과감한 지원정책과 투자 삼박자가 조화를 이뤄낸 결과물이다. 물론 동대문의 변화를 몸소 체험하며 이곳을 묵묵히 지켜온 상인들의 노고도 빼놓을 수 없는 성장의 원동력이다.

30분간의 짧은(?) 대화를 마치고 황수자 씨에게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앞으 로 기자가 결혼하게 되면 꼭 이곳에 와서 한복을 준비하겠다는 약속도 했다. 마지막으로 황 씨에게 지난 30여 년 간 동대문에서 가게를 운영하면서 느낀 소회를 물어봤다. “제가 얼마나 더 여기서 장사를 하겠습니까. 지금까지 일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죠. 그런데 최근 들어 조금 아쉬운 점이 생기긴 했어요. 동대문 상권이 예전만 못하다는 느낌이 든다는 거죠. 가격도 싸고 품질도 좋은데 생각보다 손님이 많이 줄었어요. 바람이 있다면 예전처럼 동대문 시장이 손님들로 바글바글했으면 해요. 아마 저 뿐만 아니라 동대문을 지켜온 상인들의 한결같은 바람이지 않을까요?”

김병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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