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지인에게 들은 이야기다. 회사에서 바삐 일하고 있는데, 점심시간도 되기 전에 누군가가 열심히 먹고 있더라는 것이다. 자꾸 옆자리의 소리가 거슬려 그 원인을 찾으니 자신의 동료가 빵을 책상 서랍에 숨겨 놓고 먹는 모습을 목격했다. 한 사람이 다 먹기에는 많은 양이었지만, 그는 자신의 빵을 다른 사람에게 권하거나 나중에 먹을 생각도 없는 듯했다. 그냥 ‘몰래 먹는 게’ 최선의 방책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사건’이 발생한 후 다른 사람들과 커피를 마시면서 몰래 빵을 먹던 동료의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자 사람들의 반응이 ‘다 알고 있었다는 듯’ 한쪽 방향으로 모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단다. ‘그 친구, 원래 그래!’
직장에서의 소통 부재. 여간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한때 사내정치와 비정규직의 설움을 다룬 드라마가 인기였는데, 가만 보면 구조의 모순보다 더 무서운 것이 개개인들이 최소한의 커뮤니케이션 기회를 포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점심 먹으러 나가는 막내, 부서에서 ‘허리’를 담당하는 중간급 대리들이 자기 돈으로 아이스크림이나 과자 등을 매번 사 와서 ‘바치는 것’도 당사자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운 일이다. 벌면 부장님이 더 벌지 않느냐, 내 자리에서 뭘 먹든 무슨 상관이냐고 항변하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어찌되었건 함께 모여 뭔가를 먹는때 외에는 자발적 소통과 공감의 장이 마련되지 않는 현실을 감안하면 숨어서 먹는 동료나 혀만 차는 선배나 노력이 부족하다. 대책이 필요하다.
미국 포틀랜드 주립대학의 스티븐 트론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직장에서 동료나 상사-부하 간에 오가는 작은 음료수나 격려의 메모 한 장 같은 것들이 매우 중요한 소통 기제 역할을 한다고 한다. 회사에서의 커뮤니케이션은 어느 정도 ‘막이 덮인’ 대화다. 서로가 공적 책무감과 사회적 구속 가운데서 만난 사이기 때문에 적정 거리를 두고 소통하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상대방의 진의(眞意)를 헤아릴 만한 대화가 쉽지 않다. 직장에서의 친구가 일상생활 전반의 친구로 바뀌기 어렵고, 이직하고 나면 그를 잊어버릴 수 밖에 없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어디까지나 회사에서의 소통은 일과 관련된 것, 그리고 자신의 직무 안정성과 관련된 것 이외에 더 ‘깊어서는 안 된다’는 일종의 강박이 있기에 인간적 교류가 쉽지 않은 것이다. 게다가 일과 휴식의 구분을 엄격히 하는 젊은 직원들의 마인드도 이런 소통 부족에 한 몫 한다고 볼 수 있다. ‘일은 일’이고 ‘퇴근 후는 퇴근 후’라는 사고다. 이처럼 서로 간의 간극이 엄청난 상태에서 잠깐 동안의 성의와 배려가 담긴 음료수, 사탕, 과자 같은 것들이 이문화 간 커뮤니케이션(intercultural communication)을 촉진할 수 있다는 게 트론 교수의 주장이다. 그리고 이런 ‘물건’(artifact)들이 많은 말보다 오히려 진실되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그는 언급한 바 있다.
가만 보면 부하 직원의 업무성과에 대한 격려 말을 간단하게 메모로 작성해서 출근 전 책상에 붙여 두는 ‘쎈스’ 있는 상사들도 있다. 직장은 기본적으로 지식이 교환되는 장소다. 그런데 직원이 상사로부터 이전된 지식을 제대로 흡수하려면, 그에게 인간적으로 공감하고 따르는 자세가 선행되어야만 한다. 적정거리에서 형성된 위계가 아니라, 따뜻한 메모 한 장이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것이다. 친구가 멘토라고 칭하는 어느 과장님은 친구가 일을 잘할 때마다, 아무리 작은 부분이라도 칭찬받을 만하다고 느끼면 700원짜리 음료수 한 잔, 1000원짜리 과자 한 봉 등을 몰래 책상 위에 올려 놓는 습관이 있단다. ‘거하게 회식 한번 하지 그 정도로 선심썼다고 하냐’고 할 법도 하지만, 진심 어린 음료수 한 잔 만으로도 조직 성과에 기여하는건 분명한 것 같다. 과장님께 배울 게 많다며 본인의 후배 역시 다독이는 친구의 변화를 확인했으니 말이다. 어차피 기업도 사람이 일하는 곳이 아니던가. 과장님의 음료수에서는 왠지 사람냄새가 날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