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권홍우의 오늘의 경제소사]석유냄새를 맡는 귀신, 드골리에



미국이 제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기 직전인 1940년. 영국 등 연합군은 미국산 석유에 절대적으로 기댔다. 영국 자본이 1908년 처음 유전을 발견한 중동지역이 주목받았으나 당시까지 세계 석유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를 밑돌았다.

미국이 세계 생산량의 63%를 점하던 시절, 누군가 경고음을 날렸다. ‘언젠가 미국 석유가 고갈될 날이 온다. 대신 중동을 보라. 중동 석유는 역사를 통틀어 최고의 횡재가 될 것이다.’ 미국인들은 이 경고를 가볍게 흘리지 않았다. ‘기름 냄새를 맡는 귀신’인 에버렛 리 드골리에(Everette Lee DeGolyer)의 말이었기 때문이다.


드골리에가 누구인가. 대학 휴학생이던 1910년 멕시코에서 ‘세계 최대인 포르트레노 유전’을 발견한 주역 아니던가. 당시 미국 석유 자본은 온통 멕시코에 몰려 있었다. 미국 최대의 석유 부존 지역으로 판명된 텍사스주 부근인 멕시코 영토에는 석유가 많이 묻혀 있으리라 믿었기 때문이다. 하긴 그렇게 여길만 했다. 1845년 억지로 빼앗아온 텍사스주 역시 멕시코 땅이었으니….

불과 스물 세살 짜리 오클라호마 대학 지질학과 휴학생 드골리에 덕분에 멕시코는 단박에 세계 2위의 산유국으로 떠올랐다. 한 몫 단단히 잡은 드골리에에게 멕시코 대박은 단지 이름을 알리는 신호탄이었을 뿐이다. 드골리에는 석유 탐사의 역사에서 누구보다 큰 흔적을 남겼다.


석유와 인연을 맺게 된 이유는 엉뚱하게도 꿈과 필수과목간 불일치 탓. 글을 쓰는 문필가를 원했으나 라틴어가 적성에 안맞아 지질학과를 택한 게 자신은 물론 세계의 석유지도를 바꿨다. 멕시코 시추 성공 직후 오클라호마 대학 조교인 넬과 결혼(동갑내기인 둘은 평생을 해로하며 자녀 4명을 낳았다)하고 아내의 격려 속에 일과 학업을 병행한 드골리에는 석유 탐사의 과학화에 힘을 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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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표면에 자연 분출되는 원유의 흔적과 지형·영감에 의존하던 시추지 선정에 다이너마이트와 진동계를 도입하고 탐사 전문회사를 차려 업자들의 자본 모집과 시추를 거들었다. 드골리에가 1949년 세운 ‘드골리에 & 맥노튼’사는 지금도 세계 유수의 석유탐사 및 매장량 조사 컨설팅사로 이어지고 있다.

드골리에는 석유 이외에 다방면에서도 이름을 떨쳤다. 석유에서 번 돈으로 문학잡지를 운영(편집에는 관여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하고 칠레에 정통한 역사학자였다. 오클라호마대학 도서관의 명성도 그가 기증한 방대한 소장도서 덕이다. 세계 3위의 반도체회사인 텍사스인스트루먼트(TI)사도 드골리에가 1930년 설립한 CSI(Geophysical Service Inc)사와 합병(1941년)을 통해 덩치를 키운 역사를 갖고 있다.

1956년 12월14일, 70세로 숨진 드골리에의 흔적이 가장 많이 남은 곳은 중동. ‘미주 대륙만은 못해도 중동은 원유가 제법 묻힌 곳’이라는 인식이 지배하던 시절, 그는 전시석유행정부 자문관으로 일하며 ‘중동 석유를 지배하는 나라가 세계를 지배한다’는 드골리에 보고서를 올렸다.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이 2차 대전말 얄타회담의 일정 끝 감기 몸살에도 사우디 국왕과 만나 극상의 의전을 베풀며 전후 석유 이권 확보에 전력한 배경에도 드골리에 보고서가 깔려 있다.(루스벨트 대통령의 갑작스런 병사에는 당시의 빡빡한 일정 탓이라는 해석도 있다.) 드골리에가 파악한 석유 매장량 지도는 중동의 지배권이 영국에서 미국으로 넘어가는 첫 단계이자 20세기 후반과 21세기를 관통하는 국제 자원구도의 밑그림이었던 셈이다.

드골리에 사후 59주년. 국제 석유시장은 그가 미처 예상하지 못한 변수들이 맞물려 돌아가고 있다. 드골리에는 1944년 이렇게 말했었다. “세계 석유 생산의 무게중심은 이리저리 변하다가 결국 중동 지역에 단단히 못 박힐 것이다. 같은 시기에 미국 내 석유 자원이 바닥날 수 있다”라고. 과연 그럴까. 오일샌드 개발붐에 힘입은 미국은 경제와 국제정치에서 더욱 더 강력한 발언권을 행사하고 있다. 반면 중동국가들은 저유가의 늪에 빠졌다. ‘석유의 귀신’ 드골리에의 전망이 갖는 신뢰도를 따지기에는 시간이 아직 더 필요할까./권홍우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hongw@sed.co.kr

김경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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