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김나영 기자의 1일1식(識)] <240> 저녁이 있는 삶 vs 저녁에 시간이 남는 삶




얼마 전 국내 한 대기업은 ‘정말로 7시에 출근하고 5시에 퇴근하는 제도를 정착시키겠다’고 밝혔다. 원래 그 제도는 20여 년 전부터 오너의 의지에 따라 법제화된 출퇴근 시스템이었다. 그러나 발빠르게 변화해 가는 글로벌 경쟁환경, 상명하복식 조직 문화 등은 ‘정해진 출퇴근 이상으로 일하는 사람이 바람직한 직원’이라는 착각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급기야는 그 회사에서 임원이 되려면 주말도 없이 야근을 불사해야 한다는 소문까지 돌게 됐다. 특히 과학기술/연구개발 관련 임원들의 경우에는 실적이 부진하면 자살을 각오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중압감이 심했다.


그들은 유능한 직장인이었을 지는 몰라도, 좋은 ‘아빠’ 또는 ‘엄마’였을 가능성은 매우 적다. 얼마 전에도 그 회사에서 기적적으로 고위 임원직에 오른 어느 여성은 ‘일과 결혼했다’는 표현에 딱 들어맞는 인물인 것으로 알려졌다. 좀처럼 ‘유리 천장’이 깨지지 않는 한국 대기업 풍토에서 과학기술 연구자가, 그것도 여성이 치열한 경쟁을 뚫고 고점(高點)에 오르기 위해서는 수많은 일상의 행복을 희생해야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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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네 아버지들 중 상당수가 그런 모습으로 30대와 40대를 지나왔음을 기억한다. 경쟁이 존재하는 곳 어디나 마찬가지이듯 연차가 올라가고 권한이 강화될수록 업무 부담은 더 심해진다. 퇴근길에 득의양양한 얼굴로 치킨 한 두마리를 사 오는 아버지의 모습은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로맨틱한 이미지였을 뿐이다. 숱한 산업 역군들이 자신의 저녁을 희생해 왔기에 한국경제의 비약적 성장이 가능했다는 점 역시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한국이 중국과 일본 사이에 낀 ‘샌드위치’ 신세를 넘어 기술력과 가격 경쟁력에서도 밀리는 ‘샌드백’ 위기론이 대두된 지금, 우리는 정말 이대로 괜찮은 걸까. 압축성장기에는 함께 참아내고 함께 미래를 개척해 나가는 게 가능했다. 그러나 지금은 대기업 조차도 젊은 직원의 미래를 보장해 주지 못하는 세상이다. 대기업 근속연한이 아무리 짧다한들 합격의 기쁨을 누릴새도 없이 희망퇴직 대상이 되고 마는 것이다. 이유는 단순하다. 기회를 만들어 내기보다는, 비용 절감 차원의 구조조정이 가장 쉽기 때문이다. 일자리 창출은 사실상 정부 정책에 대응하기 위한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경우가 많다. 더 이상 이대로 희망이 없다면, 과감한 반전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급격한 기술의 변화로 우리 모두가 저녁에 할 일이 없어지는 세상을 살게 될수도 있다. 각 나라별로 30% 이상의 일자리가 로봇으로 대체될 수 있다는 노무라 종합 연구소의 지적은 한편으론 간담을 서늘하게 한다. 10~20년 이내에 일본은 49%, 미국은 47%, 영국은 35%의 노동력이 AI와 로봇에 일자리를 뺏길 수 있다는 분석이다. 어떤 사람들은 기술의 힘을 빌어 ‘디지털 아테네’를 건설할 수 있게 됐다고 호언장담하기도 한다. 과거 문화와 여유를 향유하던 소수의 시민들을 대다수 노예가 떠받치던 아테네 말이다. 인공지능과 빅데이터로 무장한 로봇들이 인간 노동을 대신한 유사 노예 역할을 할 거라는 전망이다. 그러나 로봇이 대다수 단순 노동과 업무를 대체하더라도 창의성이 요구되는 부분은 없애지 못할 것이라고 한다. 특히 로봇은 고도의 추상과 상상력이 필요한 일들을 대체하지 못한다. 어쩌면 우리가 그동안 ‘야근’을 필요로 해 왔던 일들 상당수는 기계에게 넘겨줘야 할 지도 모른다. 그때쯤엔 우리 모두 ‘저녁이 있는 삶’이 아니라 ‘저녁에 시간이 남는 삶’으로 내몰리는 건 아닐까. 미래는 다가오고 있는데 우리는 정말 이대로 괜찮은 걸까.


김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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