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핫 이슈메이커)답답한 현정은

‘구조조정 모범생’이라는 별명까지 얻으며 2년 가까이 꾸준한 자구 노력을 펼쳐온 현대그룹이 주력 계열사 현대상선의 실적 부진과 자구계획 핵심 과제였던 현대증권 매각 불발로 막판에 허우적거리고 있다. 시아버지와 남편의 뜻을 이은 현대아산의 대북사업은 지난 2008년 중단돼 여전히 답보상태인 가운데 아버지가 일으킨 해운업의 위기로 그룹 전체가 흔들리면서 현정은(사진) 현대그룹 회장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29일 업계에 따르면 현 회장은 지난 19일 현대증권 등 금융 3사를 사기로 한 일본계 사모펀드 오릭스PE가 인수를 포기하면서 대응 방안 마련에 주력하고 있다. 현대그룹은 현대증권을 매각해 6,457억원을 확보할 계획이었다. 2013년 말 마련한 3조3,000억원 규모 자구안의 20%에 해당한다. 다행스러운 점은 매각은 불발됐지만 이를 전제로 산업은행이 2,000억원을 빌려줬고 내년 4월 만기인 1,600억원가량의 회사채도 연장될 가능성이 커 당장 유동성 위기는 없다는 것이다.


이는 현대그룹이 지난 2년간 계획에도 없던 6,000억원 규모 현대로지스틱스를 매각하는 등 충실하게 자구계획을 실행하며 채권단의 신뢰를 얻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당장 현대그룹은 수천억원의 자금 유입이 무산된 사태 수습에 분주하다.


산업은행을 비롯한 채권단 역시 현대그룹에 현대증권 매각을 다시 진행하는 등 추가 조치를 요구한 상태. 원래 계획대로 현대증권을 매각하는 것이 가장 빠른 방법이지만 현재 대우증권이 시장에 매물로 나온 상황이어서 함께 팔 경우 제값을 받기 힘들다는 시각도 우세해 재매각까지는 험로가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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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그룹은 현대상선이 추진하는 3,000억원 규모 영구채 발행에 기대를 걸고 있지만 최근 해운업 불황의 불똥이 튀는 것은 아닌지 노심초사하는 모양새다. 현대그룹은 또 현대상선이 보유한 현대증권·현대아산 등 계열사 지분을 현대엘리베이터로 넘기거나 유동화하는 방안 등 다양한 재무구조 개선안을 검토 중이다. 현대그룹의 자구노력에 막판 제동이 걸리자 금융당국과 산은 실무진 사이에서는 현대상선 매각이나 한진해운과의 합병설까지 거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정작 현 회장은 이런 방안을 전혀 검토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주변에 알린 것으로 전해졌다. 현대상선은 현 회장 부친 현영원씨가 일군 신한해운과 합병한 ‘피와 같은’ 회사이기도 하다. 현대그룹도 “현 회장은 이런 방안을 보고받은 적도 없고, 사실과도 다르다”며 일축하고 있다.

심지어 산은 핵심 관계자조차 “비상식적”이라고 말하고 있을 정도다. 이 관계자는 “현대그룹 측에 증권 매각 무산에 따른 자구안을 가져오라 하고, 증권을 빨리 팔라고 얘기했다”면서도 “현대 측과 현대상선 매각에 대해 어떤 언급도 없었다. 산은과 재무구조개선약정의 대상이 현대그룹이 아닌 현대상선인데 현대상선에 스스로 매각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상식적으로도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현대 측은 당국에 밉보일까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채 속앓이만 하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현 회장의 고민거리는 계속되는 해운업 불황이다. 모든 자구계획 역시 현대상선이 중심이며 현대상선을 살리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현대상선의 주력인 컨테이너선 시장은 최근 선복량(선박 공급량) 과다와 세계 경기 부진으로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에 따라 현 회장도 노선 합리화와 선대 효율화 등 원가 절감과 추가적인 구조조정 방안을 찾는 데 집중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해운업계의 한 관계자는 “국적선사를 살리려면 선박펀드를 활성화해 합리적인 가격으로 배를 빌려주거나 금융·신용 지원 등이 절실하다”며 “단순 셈법의 구조조정 방식은 실물(업종 특성)은 모른 채 금융 논리로만 접근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보리·임진혁기자 liberal@sed.co.kr

임진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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