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총선 앞두고 '2차 경제민주화' 바람 부나

삼성·현대차 등 대기업 정조준… 공정거래법 개정안 발의 봇물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에서 '2차 경제민주화' 바람이 불어닥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기업들이 가뜩이나 경기불황에 힘겨워하는데다 최근에는 정부발 기업 구조조정과 사업구조 재편에 매달리는 상황에서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을 등에 업은 경제민주화 논란이 재차 불거질 경우 기업경영 전반에 심각한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3일 재계에 따르면 최근 야권을 중심으로 삼성과 현대자동차·롯데 등 대기업을 정조준한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속속 발의된 것으로 파악됐으며 여권 일부도 이런 흐름에 동조할 수 있다는 흐름이 감지되고 있다.

당장 김영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지난달 말 그룹 총수 일가의 계열사 보유지분을 낮추도록 하는 내용의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현행법에는 그룹 총수 일가가 계열사 지분 30% 이상을 보유할 경우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으로 규정하고 이를 어기면 매출액의 최대 5%까지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정해져 있는데 총수 일가 지분 비중을 10% 이상으로 끌어내렸다. 이에 앞서 김기준 새정연 의원은 총수 일가의 지분제한을 20% 이상으로 낮추는 내용의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 개정안은 특히 총수 일가뿐 아니라 총수 일가의 간접지배를 받는 지분까지 규제 대상에 포함해 파급효과가 더 클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삼성그룹을 예로 들면 삼성생명공익재단이 보유한 계열사 지분도 총수 일가 지분에 합산하는 식이다.

특히 야권발 반(反)대기업 법안에 여당까지 여론을 얻기 위해 가세할 경우 기업들로서는 현재의 사업 재편작업 전반을 다시 검토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10대 그룹의 한 대관 업무 담당 임원은 "현재로서는 경제민주화 바람이 미풍 수준이지만 총선 과정에서 어떤 돌발변수가 등장해 태풍으로 돌변할지 알 수 없어 바짝 긴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감 몰아주기 관련 법안은 지난 대선 과정에서 경제민주화 열풍이 불면서 재계의 반발을 무릅쓰고 논란 끝에 탄생한 규제다.

실제로 개정법이 지난 2월 실시되자 재계에서는 즉각 후폭풍이 일었다.

현대차그룹은 올 들어 정몽구 회장 일가의 그룹 계열사 지분을 29.99%로 끌어내리는 지분 조정을 실시했다. 삼성그룹 역시 삼성물산(옛 제일모직)의 단체급식사업(삼성웰스토리)을 분리하고 건물관리사업을 에스원에 매각하는 방식으로 간신히 규제의 칼날을 피했다.

하지만 이번에 새롭게 발의된 개정안에는 이보다 훨씬 더 강한 규제가 담겼다. 총수 일가의 계열사 지분 상한을 10% 이상으로 낮추고 규제 대상이 되는 거래도 현행 연간 200억원 이상에서 50억원 이상으로 끌어내리는 내용이 포함됐다.

삼성과 현대차 등 주요 기업들이 모두 규제의 그물에 걸려드는 것이다.

문제는 이 같은 법안이 나온 시기다. 정부는 외환위기 이후 최대의 기업 구조조정을 단행하고 있다. 대기업 계열이라 해도 재무구조에 문제가 있는 계열사라면 가차 없이 퇴출시키겠다는 각오를 드러내고 있다.

같은 흐름에서 대기업들 사이에서는 비주력 사업을 매각하는 방식의 자발적 빅딜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다. 글로벌 저성장 기조가 굳어지자 기업들이 '선택과 집중'에서 활로를 찾고 있는 것이다. 총액 3조원에 달하는 삼성과 롯데의 화학사업 매각이나 SK와 CJ의 방송사업 거래가 이런 사례다.

그러나 정치권에서 예상하지 못한 경제민주화 바람이 다시 불어올 경우 생존을 위한 사업 재편은 뒤로 밀릴 수밖에 없다.

예컨대 삼성그룹의 경우 향후 지주사 역할을 맡게 될 삼성물산에 대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일가의 지분은 총 30.4%로 이 중 0.4%만 떼어 팔아도 규제를 피할 수 있는 구조다.

하지만 만약 공정거래법상 규제가 까다롭게 개정된다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규제를 피하기 위해 지분을 더 많이 팔아치우면 그만큼 삼성그룹에 대한 오너 일가의 지배력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이런 경우가 발생한다면 삼성 입장에서는 반도체 공장 건설 등을 도맡고 있는 삼성물산 건설 부문을 아예 분리시키는 방안을 검토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전혀 예상하지 못한 사업·지배구조 재편 변수가 생기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공정거래법의 무더기 개정 이슈가 '찻잔 속 태풍'에 그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무엇보다 정부가 미온적 태도를 보이고 있어서다.

공정거래위원회의 한 고위 관계자는 "지난 2월 시행된 법을 1년도 안 돼 개정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며 "현행법을 유지하자는 게 공정위의 기본 입장"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전직 공정위 출신의 한 법조계 관계자는 이에 대해 "내년 총선까지 '땅콩 회항'이나 '롯데 왕자의 난'과 같은 또 다른 변수가 발생할 경우 분위기를 장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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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일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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