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동향

가뜩이나 힘든 수출기업들 '탁상 관세행정' 에 두번 운다

세관 통관 시켜놓고 사후심사


수년째 "제도개선" 다짐뿐… 업체만 '세 폭탄'

기재부·관세청 '핑퐁게임' 속 일선 세관도 지침 적용에 혼선

"통관절차 믿고 관세 냈는데…" 조세심판원에 청구 봇물

"8월 행정법원 판결 나온 뒤 추징금 드라이브 걸려" 지적도


중국에서 생산된 제품을 홍콩을 거쳐 한국으로 수입해 판매하는 A사는 지난 3년간 아시아태평양무역협정(APTA)에 따른 협정관세율 혜택이 적용돼 기본관세율(8%)에서 30% 가까이 낮은 관세할인을 받아왔다.

하지만 최근 세관은 사후검증을 통해 원산지 증명서류가 미비한 것으로 확인됐다며 관세할인분에다 가산세까지 2억원에 가까운 과세추징 처분을 내렸다.

이 업체는 조세심판원에 과세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심판청구를 낼 예정이다. 조세심판원에는 비슷한 사례의 심판청구가 봇물을 이루고 있다.

정부의 탁상 관세행정이 수출기업들을 두 번 울리고 있다.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등 무관세 통상 고속도로 확보에 속도를 내고 있지만 정작 기존에 체결된 다자 간 무역협정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주무부처인 기획재정부와 관세청은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다"면서도 몇 년째 제도개선에 나서지 않은 채 핑퐁게임을 벌이고 있다.

9일 기재부와 관련업계에 따르면 일선 세관의 통관심사와 원산지 사후검증 과정 등에서 기업들의 불만이 고조되며 제도 개선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APTA에 따른 특혜관세 혜택을 둘러싼 갈등이다.

APTA 규칙은 회원국 사이에 직접 운송된 제품에만 특혜관세를 적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예외적으로 지리적 또는 운송상 이유로 불가피하게 비회원국을 통해 들어온 상품도 관세혜택을 준다. 다만 이 경우 협정 관세율을 적용받으려면 원산지 확인을 위한 '통과선하증권(Through Bill of Lading)'이 서류로 첨부돼야 한다. 통과선하증권은 제조지부터 환적지·도착지까지 운송과정에서 통과할 지역 등이 모두 기록된 운송장이다.

관세청이 사후검증을 통해 관세와 과징금을 물리는 근거도 통과선하증권 제출 여부다. 하지만 일선 세관은 여전히 통과선하증권 없이 원산지를 증명할 수 있는 서류만 제출하면 관행적으로 통관시키고 있다. 법령과 실제 현장이 따로 노는 것이다. 더구나 조세심판원 등을 통해 경정청구 등 문제제기를 하고 싶어도 대기업과 달리 자금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중소업체들은 고민이 크다. 추징금과 가산세를 낸 후에야 조세심판 청구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APTA 특혜관세 혜택을 받고 일선 세관을 통과한 제품들이 사후검증을 통해 관세 폭탄을 반복적으로 맞는 이유는 주무부처인 기재부 시행령과 시행규칙, 관세청의 지침이 서로 엇박자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일선 세관은 갈팡질팡하며 기업들의 불편만 가중되고 있다.

APTA가 발효된 것은 2006년 9월이지만 국내법에서 원산지 관련 시행령과 시행규칙이 만들어진 것은 이보다 뒤늦은 2011년 8월이다. 기재부는 관세법 제299조 제3항 'APTA 원산지 확인기준'에 "원산지에서 생산된 물품이 제3국을 거칠 경우 직접운송요건을 충족하는 동시에 통과선하증권 등 서류를 제출해야 협정세율을 적용받을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원칙대로라면 통과선하증권이 없을 경우 특혜관세 혜택을 받지 못한다. 하지만 대다수 업체는 원산지를 증명할 다른 서류를 통해 특혜관세를 적용받고 세관심사를 통과했다. 이유는 관세청이 2013년 7월 일선 세관에 내린 'APTA 직접운송원칙 입증서류' 관련 추가 지침에 있다. 이에 따르면 통과선하증권이 발행되지 않은 물품도 단순 경유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서류로 원산지를 인정하며 이에 대한 사실 확인과 조건 충족 여부는 사안별로 세관장이 자체 판단하도록 하고 있다.

APTA 규칙에서 정한 통과선하증권이 없더라도 세관이 판단해 특혜관세 통관 유무를 결정하라는 얘기다. 하지만 사후검증을 통해 과세 폭탄을 맞게 됨으로써 일선 세관의 통관절차를 믿고 관세를 냈던 업체들만 뒤통수를 맞게 됐다.

A사의 사례는 빙산의 일각이라는게 업계의 주장이다. B 대표는 "억울하면 조세심판원에 이의제기하라는 게 세관의 답변"이라며 "우리처럼 영세한 수입업자는 비용도 문제지만 정부와 다툼을 벌이는 동안 영업상의 피해로 사실상 문을 닫을 수밖에 없는 처지"라고 설명했다.

업계에서는 8월 행정법원의 판결이 나온 후 세관의 추징 드라이브가 더욱 거세지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4부는 영국 패션 브랜드인 닥터마틴의 한국 법인이 서울세관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패소 판결을 내렸다. 세관이 적하목록과 선하증권(bill of lading)을 제출하는 경우에도 통과선하증권을 제출한 것으로 보고 통관업무를 해왔다는 원고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APTA 회원국에서 비회원국을 거쳐 상품을 수입할 때 어떤 서류를 갖춰야 협정 관세율을 적용 받는지에 관한 사법부의 첫 판단이라는 점에서 관세 당국의 추징이 더욱 힘을 받고 있다는 게 업계 주장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APTA 관련 시행령과 일선 세관에 전달된 지침 및 실제 적용 과정에서 혼선이 발생하고 있고 이 피해는 고스란히 업체가 뒤집어쓰고 있는 상황"이라며 "하루빨리 시정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세종=김정곤기자 mckids@sed.co.kr

김보리기자 boris@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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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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