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권홍우의 오늘의 경제소사]연금 데모, 61년전 영국과 10년후 한국




1954년 11월11일 런던. 웨스트민스터(국회의사당)로 몰려든 노인 4,000여명이 목청을 높였다. ‘생존이 위태롭다. 노인연금을 올려라!’

윈스턴 처칠 수상이 이끄는 보수당 정부는 난감했다. 노인연금전국연합이라는 기치 아래 모인 노인들의 인상 요구폭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경기침체로 재정이 어려운 형편에 독신 기준 주당 10실링인 노인연금을 17실링으로 한꺼번에 70%를 올려달라는 요구는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영국 정부는 크리스마스 이전까지 확실한 대안을 내놓겠다는 약속을 내놓았으나 시위대는 해산은커녕 의사당 중앙홀까지 점거해버렸다. 결국 특별위원회 설치와 추후 인상시 소급적용 등을 보장 받고서야 노인 시위대는 농성을 풀었다. 영국은 이듬해 연금을 30%가량 올려 지급했지만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재원이 없어 젊은 층의 연금 적립액을 높이려 하자 노동자 계층이 반발하고 나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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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 영국에서 처음 일어난 연금 데모는 신호탄이었다. 서유럽 대부분의 나라에서 노인들의 연금 인상 데모와 젊은 층의 갹출액 상향 조정 항의 데모가 되풀이됐다. 주요 정당들이 연금 개혁을 공약으로 내걸면 노년층으로 구성된 연금당(pension party)이 급조돼 개혁을 가로막았다. 이탈리아에서는 연금제도를 개혁하려다 정권의 향방이 갈린 적도 있다. 요즘도 연금개혁은 각국 정부의 골칫거리다.

우리나라의 사정은 더욱 심각하다. 1988년 국민연금제도를 도입할 때 ‘소득의 3%만 내면 20년 후에는 표준소득의 70%(소득대체율)를 연금으로 받을 수 있다’며 장밋빛 환상을 심어줬으나 급속한 노령화로 이행이 불가능하다. 소득대체율은 1999년부터 60%로 떨어진 이래 2007년 50%로 하향조정을 거쳐 2015년 현재는 46.5% 수준. 오는 2028년까지 40%까지 내려가도록 예정돼 있으나 이마저 지키기 어려운 형편이다.

2048년께면 국민연금이 고갈된다는 추계도 있다. 미래의 위기에 대응하려면 ‘덜 받고 더 내는’ 구조로의 개혁이 필요하지만 국민적 합의를 이루기가 쉽지 않다. 수급권자가 훨씬 적은 공무원 연금 개혁은 시늉에 내는 데 그쳤다. 사학연금·군인연금은 아예 손도 못 대는 판이다. 지역·계층간 갈등도 모자라 연금 개혁을 둘러싼 세대 갈등은 과연 불가피할까. 사회적 합의에 이르는 길은 없을까. 61년 전 영국 노인들의 시위에서 10년, 20년 후 한국 사회의 단면이 보인다./권홍우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hongw@sed.co.kr

권홍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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