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전자산업을 위협하는 나라는 중국뿐만이 아니다. 한편에서는 미국과 일본이 부활의 기지개를 켜고 있다. 미국은 세계 최강의 소프트웨어(SW) 기술력을 바탕으로 플랫폼 위주의 정보기술(IT) 산업과 첨단 제조업을 무섭게 키우고 있다. 가전·TV·스마트폰에서 주도권을 내준 일본은 전열을 재정비해 부품과 소재·장비산업으로 한국을 압박하고 있다.
애플과 구글을 비롯해 마이크로소프트(MS)·퀄컴 등 미국의 내로라하는 IT 기업들은 스마트카·스마트홈 같은 사물인터넷(IoT)에서 로봇·인공지능(AI)에 이르는 미래 산업에 전방위로 진출하고 있다.
스마트카의 핵심인 운영체제(OS)의 경우 애플은 카플레이, 구글은 안드로이드 오토, MS는 윈도인더카(Window in the car)를 내놓으며 각축전을 벌이는 상황이다. 미국 IT의 심장부 실리콘밸리에서 글로벌 IT 업체에 근무하는 한 한국인은 "미국 기업들은 캘리포니아 일대에 몰려드는 전 세계 최고 수준의 인력을 활용해 IT의 미래를 선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에는 첨단 전자제조업 진출도 두드러진다. 중국에서 낸드플래시를 생산하기로 한 인텔이 대표적이다. 인텔은 반도체 설계기술과 공정기술 모두 세계 최고다. 낸드 시장에서 독보적 1위를 달리는 삼성전자가 바짝 긴장하는 이유다.
더욱이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는 국가주도 수출정책을 적극 추진하며 미국 기업들에 날개를 달아주고 있다. 바로 지난 2010년에 발표한 국가수출구상(NEI)이 그것이다. 수출기업에 대한 재정적 지원을 확대하고 물류비용을 줄여주며 해외 거래선 확대를 돕는 제도다. 올해 미국 연방정부의 발표에 따르면 NEI는 당초 목표인 '5년 내 수출 두 배 증가'는 달성하지 못했지만 4년 연속 수출 기록을 경신했고 수출액도 2009년 대비 43%나 늘었다.
1990년대 이후 한국에 반도체·TV 분야를 잇따라 내준 일본은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마무리하고 다시금 도약할 태세를 갖추고 있다. 경쟁력 없는 사업은 과감히 털어내고 첨단 부품과 소재 분야에 집중해 과거의 위상을 회복한다는 전략이다. 가전과 반도체·PC 사업을 정리한 히타치는 기업 간 거래(B2B) 전문기업으로 탈바꿈하며 3년 연속 사상 최대 영업이익을 기대하고 있다. 올해 전망치는 6,800억엔(약 6조6,427억원)선이다. 스마트카 시대의 전개에 따라 수요가 급증할 차량용 반도체는 이미 일본의 르네사스가 선점해 세계 1·2위를 다툰다.
파나소닉도 가전 대신 2차전지에 주력하며 세계 시장 점유율 1위를 지키고 있다. 스마트폰 카메라에 쓰이는 센서 분야 세계 1위인 소니는 도시바의 카메라 센서 사업을 인수하며 입지를 더욱 공고히 다졌다. 도시바·후지쓰·소니(바이오)는 PC 사업을 합쳐 NEC레노버를 제치고 세계 최대 PC 제조사를 키우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여기에 아베 신조 정권의 공격적 엔저 정책도 일본 업체들의 글로벌 가격경쟁력 확보에 한 몫 거드는 양상이다.
전문가들은 전통의 제조업 강호인 미국과 일본이 다시 살아나는 반면 한국의 경쟁력만 정체 혹은 추락하는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 실제로 미국 컨설팅 업체인 딜로이트가 세계 각국의 기업인들에게 설문한 결과를 토대로 발표한 2020년 글로벌 제조업 경쟁력지수를 보면 미국은 2015년 현재 2위에서 1위로 올라서고 일본은 4위를 유지하지만 한국은 5위에서 6위로 밀리며 인도에 자리를 내줄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