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용 순자산이 1조원이 넘는 '공룡펀드'의 올해 운용 성과가 대부분 시장 평균 수익률을 넘어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펀드 규모가 커지면 기존에는 담지 않던 주식까지 담아야 하는 등 운용의 효율성이 떨어져 수익률이 악화되는 '공룡펀드의 저주'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된 셈이다.
26일 펀드평가사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국내에서 운용 중인 운용 순자산 1조원 이상의 대형펀드 14개 가운데 올 들어 유형별 평균 수익률보다 못한 성과를 기록한 펀드는 4개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 주식형 펀드 8개 가운데서는 5개가 시장 평균 이상의 성과를 기록했고 채권혼합형 펀드는 모두 시장 평균 이상이었다.
실제 국내 펀드 중 순자산이 2조9,667억원으로 규모가 가장 큰 '신영밸류고배당펀드'는 연초 이후 14.17%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일반 배당주 펀드의 수익률이 11.16%임을 고려하면 3% 포인트가량 '오버 퍼포밍(시장수익초과)' 한 셈이다. 원조 공룡펀드인 '한국투자네비게이터펀드' 역시 올해 18.59%의 높은 수익률을 기록했다. 또 최근 수익률이 다소 떨어지긴 했지만 올해 가장 많은 자금을 끌어모은 '메리츠코리아펀드' 역시 21.71%의 수익률을 기록하며 일반 주식형 펀드의 연초 이후 성과(5.49%)를 3배 이상 앞섰다.
자산의 60% 이상을 채권에 투자하고 일부를 주식에 투자해 안정성과 함께 초과수익을 기대하는 채권혼합형 펀드 중에서도 '공룡펀드'는 선전했다. 'KB가치배당40펀드'와 'KB퇴직연금배당40펀드'는 올 들어 각각 3.35%와 3.41%의 수익률을 기록하며 채권혼합형 펀드의 평균 수익률 2.50%를 넘어섰다.
물론 평균 이하 성과를 기록한 펀드도 있다. 코스피200지수를 추종하는 '교보악사파워인덱스펀드'와 '한국밸류10년투자펀드' '한국투자삼성그룹적립식펀드' 등은 시장 평균 수익률에 미치지 못했다.
이들 공룡펀드가 시장 평균을 웃도는 수익률을 기록한 데는 시장흐름이 공룡펀드에 비교적 우호적이었고 펀드 매니저들의 위험회피 등 운용 전략이 시장 상황과 맞아 떨어졌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공룡펀드의 경우 규모가 커 중소형주를 담기보다는 대형주 위주의 주식을 담을 수밖에 없는데 그동안 주가가 많이 떨어졌던 대형주가 하반기 반등에 성공하면서 높은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신영밸류고배당펀드'의 경우 삼성전자의 비중이 6.71%로 가장 높으며 아모레퍼시픽 5.25%, KT&G 4.90% 등 대형주를 주로 담고 있고 '메리츠코리아펀드'도 중소형주를 일부 포함하고 있지만 SK(3.78%), CJ(3.60%), 제일모직(3.53%) 등 대형주의 비중이 높은 편이다. '한국투자네비게이터펀드' 역시 30개 안팎의 종목 대부분이 대형주로 구성돼 있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대형펀드는 대형주 비중이 높을 수밖에 없다"며 "올해 지난해 하반기 대형주 가격이 하락하면서 손실을 봤던 것처럼 올해 하반기에는 대형주가 반등하면서 성과가 개선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아울러 올해 증시 변동성이 심화하면서 대형펀드의 '리스크 헤지(위험 회피) 전략'이 효과를 거둬 상대적으로 성과가 양호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실제 대형펀드의 샤프지수는 대체로 비슷한 유형 펀드 중 상위권에 있다. 샤프지수는 펀드가 일정 위험을 부담하는 대신 초과 수익이 얼마인지를 나타내는 평가 지수로 높을수록 위험에 비해 성과가 좋은 펀드다. 펀드평가사 제로인에 따르면 신영밸류고배당펀드의 샤프지수는 0.68로 동일 유형 펀드 중 상위 17%에 속하고 한국투자네비게이터펀드는 0.85로 상위 4%, 메리츠코리아펀드도 상위 9% 내에 진입해 있다. 자산운용사의 한 매니저는 "주가가 아무리 올라도 적절한 비중을 유지하는 한편 유망한 종목을 꾸준히 발굴하는 식으로도 변동성을 줄일 수 있다"며 "공룡펀드는 규모가 큰 만큼 시장 변화에 민감하게 대응하지 않은 편인데 시장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기존 운용 전략을 고수한 것도 수익률 방어에 도움이 됐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