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적인 수요위축과 저유가 기조로 수출 물가가 급락하면서 우리 수출기업들의 매출과 영업이익률이 '뚝' 떨어졌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주요 선진국과는 반대로 우리 기업의 성장성과 수익성이 갈수록 악화되는 등 제조업 경쟁력이 위기에 빠졌다는 분석이다.
16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2009년 1·4분기 108.37이던 수출 물가지수는 지난 3·4분기 85.35로 21% 이상 급락했다. 같은 기간 전기 및 전자기기 제품의 수출 물가지수는 123.5에서 66.9로 7년 만에 반 토막이 났다. 전기 및 전자기기 제품은 반도체와 액정디스플레이(LCD), 휴대폰 등 우리 수출의 대표 품목으로 구성돼 있어 수출 물가지수 중 기여도가 가장 높다.
수출 물가지수는 수출기업의 성장성 지표인 매출을 가늠할 수 있다. 여기다 수입 물가를 더하면 수익성 지표인 영업이익률을 판단할 수 있다. 수출 물가가 급락하면서 제조업 매출은 지난해 사상 처음으로 1.6% 뒷걸음질했다. 3,046개 외부감사 기업을 대상으로 한 올해 경영지표로 보면 매출은 1·4분기 -5.7%, 2·4분기 -6.3%로 지난해보다 좋지 않다. 한은의 한 관계자는 "전 세계적인 수요위축에다 저유가로 수출 물가가 크게 떨어진 상태"라며 "구조적인 문제라 당분간 개선되기 어려워 보인다"고 설명했다.
수출 물가가 크게 떨어진 것은 저유가 기조보다 수요위축의 영향이 더 컸던 것으로 분석된다. 수출 물가 기여도가 36.7%에 달하는 전자제품과 12.7%인 화학제품(석유화학 기초제품 등)을 비교해보면 알 수 있다. 유가에 직접적 영향을 받는 화학제품의 3·4분기 수출 물가지수는 90.24로 고점(2011년 1·3분기 115.55) 대비 21.9% 떨어지는 데 그쳤다. 2009년 1·4분기(90.57)와 비교하면 전자제품의 가격이 반 토막 나는 동안 화학제품의 가격변동은 거의 없었던 셈이다.
상황이 이렇지만 교역 조건을 나타내는 지표는 아이러니하게도 좋다. 올해 9월 순상품교역조건지수는 101.63으로 전년 동기 대비 12.5% 상승했다. 수출 가격(-14.3%)에 비해 수입 가격(-23.9%)이 더 크게 떨어진 게 원인이다. 유가 등 원자재 가격 하락에 기인한 것으로 이는 전 세계 모든 국가의 공통된 현상이다.
문제는 전 세계적인 수요위축과 저유가 기조 속에 우리 기업들의 성장성과 수익성이 다른 선진국에 비해 나빠지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경제연구원이 이날 전경련 콘퍼런스센터에서 '위기의 기업경쟁력, 실상과 극복 방안'을 주제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200대 기업의 매출은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20.99%에서 지난해 0.52%로 급락한 반면 미국 등 주요 선진국은 -6.95%에서 현재 3%대 후반~ 4%대 초반을 유지하고 있다. 영업이익률도 우리 기업은 6.79%에서 4.23%로 하락한 반면 주요 선진국 기업은 6.17%에서 8.01%로 상승한 것으로 분석됐다.
발제자인 신현한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낮아진 경제성장률이 영향을 미친데다 수출 중심 산업구조라 통화가치 하락에 큰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라며 "높은 매출원가 비율 등 고정비 성격의 비용이 많아 경제환경의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하기 어려운 것도 원인"이라고 말했다. /김상훈기자 ksh25@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