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상으로 근로자의 임금 상승률이 지난해보다 두 배나 높아졌지만 실제 임금이 많이 오른 것이 아니라 저임금 노인 일자리가 늘어난 데 따른 기저효과인 것으로 나타났다. 벌이는 제자리걸음인데 수출부진, 기업 구조조정 한파로 일자리까지 위태로워지면서 올해 말 체감경기에 찬물을 끼얹을 것으로 전망된다.
4일 통계청·고용노동부 등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 8월까지 상용근로자 5인 이상 사업체의 월평균 임금은 325만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315만원)에 비해 2.9% 올랐다. 8월까지 평균 물가 상승률(0.6%)을 뺀 실질임금 상승률은 2.3%였다. 이는 지난해 실질임금 상승률(1.2%)의 두 배에 가깝다. 이 통계는 매월 고용부가 표본추출한 기업에 실시한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작성된다.
실질임금 상승률은 경제성장률이 높아지는 등 경제여건이 호전되면 이에 맞춰 높게 오르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올해는 거꾸로 가고 있다. 올해 성장률은 2.7%(한국은행 전망)로 지난해(3.3%)에 비해 크게 둔화됐지만 임금 상승률은 올랐다.
가장 큰 이유는 지난해 임금 상승률이 비정상적으로 낮았던 데 따른 기저효과에 있었다. 고용부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 통상임금·정년연장 등의 이슈로 기업의 임금단체협상 타결률이 저조해 전반적으로 임금 상승률이 너무 더뎠다"고 설명했다. 실제 지난해 5월까지 임단협 타결률은 10.7%로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올해 통계상 임금 상승률이 높게 나오지만 근로자들의 체감임금 상승률이 여전히 낮은 것도 지난해 오르지 못한 임금이 제자리를 찾아갔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해에 유독 저임금 일자리가 크게 늘어난 것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정성미 한국노동연구원 전문위원은 "지난해 60세 이상을 중심으로 저임금 취업자 수가 급증해 전체 평균 임금 상승률을 끌어내렸다"고 밝혔다.
지난해 조사대상에 낮은 임금 근로자가 대거 포함돼 평균 임금을 끌어내렸고 그 결과 올해는 기저효과로 전체 임금 상승률이 높아진 것처럼 보인다는 설명이다. 실제 지난해 7월까지 임시직 취업자 수는 80만9,000명(전년 동기 대비) 불어난 반면 올해는 4분의1인 22만2,000명 증가하는 데 그쳤다. 이 밖에 임금 상승률 제고를 위해 올해부터 정부가 실시한 근로소득증대세제와 최저임금 상승 등도 일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근로자들의 체감임금이 낮은 상황에서 수출부진과 한계기업 구조조정의 여파가 노동시장에까지 미치면 연말 경기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전망된다. 조선업계발 감원 칼바람이 가뜩이나 고전하는 업계 전반으로 확산될 경우 정부가 간신히 살려놓은 내수경기가 다시 내려앉을 수 있다. /세종=이태규기자 classic@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