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때 여성 팬츠·스커트로 첫 사업
백화점·대형매장에 맞서 전문화 승부
매출 수직상승, 세계적 브랜드로 키워
기업 덩치 커지자 다시 '선택과 집중'
'빅토리아시크릿' 등에 올인, 재도약
52년째 경영지휘 '포춘 최장수 CEO'
"기여할 게 없다고 물러나면 바보"
미국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들이 평균 7년도 못 채우고 물러나는 와중에 반세기 넘게 자리를 지키며 건재함을 과시하는 CEO가 있다. 작은 옷가게로 시작해 종합패션유통 기업 '리미티드 브랜즈'를 이끌고 있는 레슬리 웩스너(77)가 그 주인공이다. 그는 올해까지 52년 넘게 CEO직을 유지해 '포춘 최장수 500대 CEO' 중 1위를 기록했다. 나이가 많은 오너 경영인들이 대부분 회사에 이름만 올려놓고 직접 경영에 나서지 않는 것과 달리 웩스너는 지금도 현장에서 사업전략을 구상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20대 때 처음 사업을 시작했다. 웩스너는 지난 1963년 오하이오주에 여성복 전문매장인 '리미티드'를 차렸다. 그가 여성복을 첫 사업 아이템으로 삼은 것은 옷가게를 운영했던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어느 날 아버지 가게를 대신 보게 된 웩스너는 호기심에 옷 가운데 어떤 아이템이 수익성이 높은지 따져봤다. 그 결과 치마와 셔츠·블라우스가 드레스와 코트 등에 비해 수익이 높다는 것을 알아챘다.
평소 백화점 등 대형매장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전문화가 필수라고 생각했던 웩스너는 이 경험을 바탕으로 여성 블라우스·치마·바지 판매에 집중했다. 선택과 집중 전략은 통했다. 1년 만에 리미티드는 16만달러의 매출을 냈고 2년 차에는 사업규모가 세 배로 늘었다. 사업은 성장을 거듭해 1974년까지 리미티드는 전 세계 매장을 48개로 확대했고 웩스너는 이후에도 젊은 여성들을 목표고객으로 정하고 거침없이 사업을 확장해나갔다. 포춘은 리미티드가 처음 기업공개(IPO)를 실시한 1969년 이 회사에 1,000달러를 투자했으면 올 6월까지 6,240만달러의 수익을 얻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토페카캐피털마켓의 도로시 레크너 전무는 "리미티드 브랜즈는 성공적이었다"며 "웩스너는 경쟁이 심하지 않은 아이템을 잘 선정했다"고 평가했다.
1980년에도 여성복 브랜드인 '익스프레스'를 론칭한 그는 1982년에는 유명 속옷 브랜드인 '빅토리아시크릿'을 100만달러에 인수했다. 또 1988년 '아베크롬비앤피치', 1990년에는 미용용품 업체 '배스앤보디웍스' 등을 잇따라 사들였다. 하지만 무리한 사업확장은 곧바로 부작용을 불러왔다. 외형이 확대되면서 사업은 뚜렷한 방향성을 잃었고 효율성도 떨어졌다.
1990년대 들어 적자가 심화되자 웩스너는 사업을 대폭 줄이고 다시 한번 선택과 집중 전략을 펼쳤다. 그는 과감하게 리미티드투·레인브라이언트·러너·익스프레스 등의 브랜드를 매각했고 아베크롬비앤피치는 분사했다. 아울러 1,700개의 점포를 없애는 등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그 결과 웩스너는 다시 한번 도약의 기회를 맞게 됐다. 영양가 없는 브랜드를 정리하고 빅토리아시크릿과 배스앤보디웍스에 집중한 그는 큰 성공을 거두게 된다. 시장조사기관 IBIS월드의 집계에 따르면 그가 소유한 빅토리아시크릿과 핑크·라센자 등 속옷 브랜드는 2014년 전체 132억달러의 미국 여성 속옷 시장에서 41%의 점유율을 기록했다. 배스앤보디웍스 또한 올 1~5월에 4% 넘게 판매가 증가했다. 이 두 브랜드를 포함해 5개의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는 리미티드 브랜즈의 지난해 매출은 114억달러로 전년 대비 6% 이상 증가했다. 현재 웩스너의 개인 재산은 73억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된다.
웩스너가 50년 넘게 현직에서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도 일에 대한 열정과 흥미 때문이다. 최근 포춘과의 인터뷰에서 웩스너는 "패션유통 사업은 내 운명"이라며 "쇼핑은 누구에게나 즐거운 일이며 나에게 코스트코를 가는 일은 여전히 환상적인 영화를 보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웩스너는 여전히 은퇴를 원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에게 은퇴 의사를 묻자 "CEO가 더 이상 기여할 게 없을 때 순차적으로 물러나야 한다는 일반적인 관념들은 바보 같다"며 역정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