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서로에게 거울 같은 존재예요.” 전수경과 최정원은 알고 지낸 기간만 20년이 넘는 죽마고우다. 각각 1988년 대학가요제와 1989년 뮤지컬 ‘아가씨와 건달들’로 데뷔한 두 사람은 1994년 웨스트사이드 스토리를 시작으로 수많은 작품에 함께 출연하며 우정을 쌓아왔다. 특히 2000년 시카고 국내 초연 때 벨마의 인기를 위협하는 “저런 애들”인 록시로 함께 캐스팅돼 연기했다. 당시 두 사람은 서로의 아이디어를 공유하며 ‘록시’라는 캐릭터를 만들었다. “정원이는 몸으로 표현하는 요염함이, 저는 웃음 포인트를 살리는 코믹함이 강점이었어요. 둘이서 매일 ‘이 장면에선 이런 대사나 동작을 넣는 게 어때?’ 하며 회의를 했죠.”(전)
젊고 섹시한 록시의 시대를 지나 15년이 흐른 지금. 전수경은 지난해부터 마마로 시카고에 다시 합류했고, 초연부터 장기근속 중인 최정원은 2007년 벨마로 변신해 무대를 지키고 있다. 중년의 캐릭터로 옮겨가는 것이 여배우에겐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극 중 벨마가 록시로 인해, 록시가 또 다른 경쟁자의 등장에 느꼈을 감정이 이와 같지 않을까. “처음엔 ‘록시를 더 할 수 있는데…’하는 서운함이 앞섰죠. 그런데 벨마의 입장에서 대본을 다시 보니 그 속에 또 다른 매력이 담겨 있더군요.”(최) 전수경도 지난해 마마 역에 끌려 오디션을 보고 시카고에 합류했지만, 몇 년 전 제작사에서 같은 배역을 제안했을 땐 정중히 거절했다고. 그는 “마치 이모 역을 건너뛰고 바로 엄마로 가는 기분이 들었다”며 “그땐 여배우로서 마음의 준비가 안 되어 있었다”고 말했다.
지금은 무대에 서는 것 자체가 행복하다는 천생 배우. 서로가 바라보는 상대의 강점은 무엇일까. 전수경은 “정원인 무대를 위해 하루하루 사는 아이”라며 “작품 하나를 오래 하면 느슨해지기 마련이지만 늘 관리하며 역동적으로 무대를 꾸미는 ‘독보적인 배우’가 바로 최정원”이라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최정원도 전수경을 향해 “언니는 노래도 잘하는 데다 연기를 체계적으로 공부한 사람이라 대사를 맛깔나게 표현한다”며 “언니와 작품을 할 때 안도감을 갖고 무대에 오를 수 있는 이유”라고 전했다.
‘록시 역을 다시 할 수 있다면 하겠느냐’는 질문에 두 사람은 ‘Why not(왜 안돼)?’을 외친다. “시카고는 이 세상을 비꼬고 풍자하는 작품이에요. 벨마가 꼭 나이 많고 록시가 어려야 한다는 편견을 버리자구요.”(최) “시카고 국내 초연 20주년 때 우리 둘이 록시를 연기해도 재미있을 것 같지 않아요? 설마, 그 날 하루 관객이 안 들겠어요?”(전) 5년 남은 시카고 20주년이 벌써 기다려진다.
/사진=송은석기자 songthomas@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