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테러 등 대외악재로 가뜩이나 회복세가 불안한 우리 경제에 '재고'발 경제위기 가능성이 부상하고 있다. 정상적인 경기회복에 따라 소진돼야 할 재고가 장기간 과도하게 쌓이면서 기업은 물론 국민경제 성장의 발목을 잡는 뇌관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의미다. 임계점에 이른 재고물량이 저가로 시장에 풀릴 경우 디플레이션 압력이 높아질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이에 따라 기획재정부는 다음달 발표하는 내년도 경제정책 방향에서 이례적으로 재고의 위험성을 경고하기로 했다.
18일 통계청에 따르면 제조업 재고율은 지난 8월 129.5%로 2008년 12월(129.9%) 이후 6년8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9월에는 소폭 낮아졌지만(128.1%)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재고율의 경우 2000년대에는 105%를 기준으로 상승·하강 사이클을 보여왔다. 기업들이 수요·공급 법칙에 따라 재고가 많이 쌓여 있으면 생산을 줄여 재고부터 소진하고 재고가 부족하면 생산을 늘리는 등 재고율 관리를 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2009년 하반기를 기점으로 재고율은 계속 오르고 있다. 전 세계 수요둔화, 좀비기업의 버티기식 생산 등으로 수요와 공급 법칙이 깨지고 과잉공급 현상이 지속돼온 것이다.
제조업 재고는 제품이 팔리지 않아 쌓이는 '나쁜 재고'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재고에는 경기가 살아날 것에 대비해 제품을 쌓아놓는 '좋은 재고'와 나쁜 재고가 있다. 좋은 재고라면 제조업 가동률이 높아져야 하지만 현재는 떨어지는 추세다. 평균 가동률은 2011년 80.5%를 정점으로 지속 하락해 올 3·4분기 74.6%까지 하락했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가까운 시일 내 '대규모 재고 처리→생산급감→고용위축→소비감소→성장률 급락'의 악순환이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이른바 '재고'발 위기다.
권영선 노무라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기업들이 어찌 됐든 생산이 이득이라는 판단하에 재고를 쌓으면서도 제품을 만들어왔지만 미국 금리 인상 등으로 세계 수요가 급감하면 생산을 중단할 수 있다"며 "기업들이 재고를 싼값에 내놓기 시작하면서 디플레이션 압력도 높아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세종=이태규기자 classic@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