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시각] '검은 늑대'로 전락한 '코리아 블프'









지난 2주 동안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코리아 블랙프라이데이' 행사가 마무리됐다. 코리아 블프 기간 동안 롯데·신세계·현대 등 주요 백화점은 20% 안팎의 높은 매출 신장세를 기록했다. 그런데 '대박 장사'로 웃음꽃이 핀 유통업계와 달리 중소업계에서는 '속 빈 강정'이라는 자조 섞인 비아냥이 흘러나오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대형 유통업체들은 판매업체로부터 매출액의 33~40%를 판매 수수료로 받는다. 100만원짜리 물건을 팔면 33만~40만원을 백화점에 자릿세로 내는 셈이다. 여기에 세일 기간 백화점은 할인 폭의 10분의1 정도만 부담한다. 정상 판매일 때 판매 수수료를 40% 받았다면 30% 할인 행사를 할 경우 판매 수수료를 3% 깎아 37%를 받는 식이다. 결국 세일로 줄어든 마진 폭 대부분을 판매업체가 부담해야 하는 구조다. 백화점에 패션 잡화를 납품하는 A사장은 "70% 세일가를 적용하면 납품업체 부담 63%, 백화점 부담 7%로 책정되는 것이 불문율"이라며 "수수료가 38%인 제품에 50% 세일을 하면 수수료를 33% 받아 가는 구조로 '코리아 블프'는 전적으로 '유통공룡, 그들만의 잔치'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그렇다면 미국 연간소비의 20%가 발생한다는 블랙프라이데이는 어떤 점이 다를까. 한국과 미국의 가장 큰 차이는 바로 유통구조에 있다. 미국이나 유럽 등 대부분 국가의 백화점이나 쇼핑몰은 제조사로부터 직접 제품을 구입한 뒤 판매하는 '직매입' 구조가 많다. 매입한 상품 중 판매가 안 된 제품에 대한 책임까지 대형 유통사가 부담하기로 하고 매입하는 거래로 유통업체가 재고 상품을 모두 팔아야 다음 시즌을 준비할 수 있는 만큼 가격 인하 폭도 크다. 반면 국내 유통사는 30~40%의 수수료를 받고 재고 부담은 지지 않는 '특약매입' 구조다. 유통사가 매입한 상품 중 판매되지 않은 상품은 반품할 수 있는 조건으로 상품을 외상으로 매입해 판매한 후 수수료를 제외하고 남은 대금을 납품업체에 지급하는 방식이다. 국내 유통 시장은 대기업 중심의 유통 메커니즘으로 대기업에 유리한 특약매입의 비중이 높은 편이다.

실제로 공정거래위원회(지난 2013년 기준)에 따르면 국내 직매입 비중은 백화점 7개사 9.1%, 홈쇼핑 6개사 3.2%로 미미하다. 반면 일본 이세탄백화점 30%, 미국 최대 백화점업체인 메이시스는 41.6%, 영국 데번함스백화점은 67%에 달한다. 특히 직매입의 경우 납품업체 수수료가 15~20%에 그친다는 사실은 국내 유통 시장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중소 납품업체들은 수수료 부담이 높은 특약매입 구조로 인해 팔면 팔수록 손해라고 입을 모은다. 주요 백화점에서 매장을 운영하는 B사의 경우 수수료 35%, 세금 6.5%, 판매비용 15%, 제품개발·인건비·광고·물류·애프터서비스 등 본사 제반 비용 16%, 제품 원가 30%를 더하면 총 102.5%에 달해 오히려 물건을 팔수록 손해가 커지는 이상한 구조다. 그럼에도 백화점이라는 상권이 주는 후광 효과를 무시할 수 없어 터무니없는 자릿세를 내고 있는 셈이다.

이번 코리아 블프에 참여한 납품업체 사이에서는 '검은 볼프(Wolf·독일어로 '늑대')'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졌다. 유통 대기업을 지칭하는 '검은 늑대'의 거센 협박을 견디지 못해 참여한 블랙프라이데이라는 얘기다. 정부가 내수 진작을 위해 꺼내 든 '블프 카드'가 검은 늑대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서는 지금이라도 유통 구조에 대한 본질적인 고민을 해야 할 것이다. /정민정 성장기업부 차장 jminj@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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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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