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펀한 저금리 파티를 끝낼 시간인가. 미국이 다음달 기준금리 인상에 나설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관측이 잇따르고 있다. 미국의 금리인상은 전 세계 돈 흐름을 뒤바꿀 가장 위협적인 변수다. 신흥국까지 넘치게 밀려든 돈은 선진국으로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돈에 만취했던 세계 경제는 숙취로 두통을 앓을 것이다.
윌리엄 마틴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은 "중앙은행은 파티가 한창일 때 펀치볼(punch bowlㆍ칵테일 음료를 담은 큰 그릇)을 치워야 한다"고 했다. 경기가 과열되기 전에 금리를 올려서 부작용을 차단해야 한다는 의미다. 파티의 흥이 깨진다고 비난 받아도 어쩔 수 없다. 그냥 뒀다간 뒷감당이 더 어렵다.
한국은행도 변곡점에 섰다. 미국과 스텝을 동시에 밟을 수는 없겠으나 금리인하로 역주행하기 어려운 환경이 돼가는 것은 맞다. 평소 무난한 어법을 쓰는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최근 들어 강한 톤으로, 그것도 자주 미국 금리인상에 대비해야 한다고 걱정하는 것도 이런 탓일 것이다.
이 총재는 이달 금융통화위원회 후 "성장 모멘텀도 중요하지만 한계기업 구조조정도 병행해야 한다"면서 "수출은 가격경쟁력뿐 아니라 기술경쟁력이 중요하다"고 말해 시장에 남아 있던 금리인하 기대를 싹 잠재웠다.
프랑스 파리 테러사태 이후 첫 공개 강연에서는 오는 12월 미국 금리인상 가능성을 "대단히 높다"고 전망하고 "글로벌 금융 불균형이 드러날 여건이 이미 성숙돼 있다"고 했다.
물론 이 총재는 지난해 취임 직후 "앞으로 기준금리의 방향은 인하보다 인상이 아니겠느냐"고 말하고는 기준금리를 2.5%에서 1.5%로 네 차례에 걸쳐 떨어뜨렸다. 이번에도 미국이 금리인상을 미루거나 한국 경제 회복세가 꺾이면 다시 한번 생각을 접고 금리를 더 떨어뜨려야 할 수 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이 총재 재임 전반부와 달리 후반부는 우리나라도 금리인상에 따른 고통이 불가피해 보인다는 것이다. 금리 정상화가 "시기의 문제이지 명백한 흐름"인 것은 미국뿐 아니라 한국도 결국 마찬가지다.
기준금리 인상은 환영 받지 못한다는 점에서 어렵다. 글로벌 금융위기에 2%로 떨어진 금리를 3.25%까지 끌어올렸던 김중수 전 총재는 첫 금리인상을 "거의 혁명 같은 일"이라고 자평했다. 그만큼 주변의 반대가 극심했다는 뜻이다.
이 총재 앞에 놓인 상황도 녹록지 않다. 미국 금리인상으로 예민해질 국제 금융시장, 식어가는 중국 경제 같은 대외여건뿐 아니라 구조조정, 가계부채, 총선, 새로 올 경제부총리와의 정책조합 등 대내여건도 까다롭다.
그나마 다행인 건 한은 총재가 정치인처럼 인기를 얻어야 하는 자리는 아니라는 점이다. 한은을 외풍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총재는 임기 4년을 보장 받는다. 금리 인상기에 접어들면 좋건 싫건 이 총재의 존재감은 커진다. 주목을 받는다. 부담도 커질 수밖에 없다. 어쩌겠는가. 파티가 끝나기 전 펀치볼을 기꺼이 집어드는 게 그에게 주어진 소명이다. /이연선 경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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