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금융권의 경쟁력은 주요국 중 최하위 수준이다. 최근의 한 조사에 따르면 한국 경제규모는 세계 12위 수준이지만 국내 은행산업의 경쟁력은 60위권 밖으로 평가된다. 즉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는 물론 대부분의 주요 국가 가운데 은행의 경쟁력이 가장 낮은 것으로 평가된 것이다. 우리 은행의 경쟁력이 낮은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정부가 은행을 강하게 규제하고 민간은행마저 정부 소속기관처럼 관여하고 지배하려 하니 은행들은 자율적인 경쟁력을 기를 여지가 없다. 은행 역시 정부의 보호 아래 소비자의 수요에 맞는 상품 개발을 소홀히 하고 예대마진만 챙기다 보니 국제경쟁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결국 한국 은행은 대부분 외국 은행에 종속돼 현재 순수한 토종은행은 몇 개 남지 않은 상황이다.
은행의 경쟁력이 낮은 또 다른 이유는 후진적인 은행의 인적자원관리제도다. 특히 고용과 임금제도의 후진성은 심각한 문제로 은행산업의 경쟁력 약화에 결정적 역할을 하고 있다. 우선 지나치게 높은 임금수준이 문제다. 우리 은행의 임금수준은 생산성보다 훨씬 높고 심지어 한국의 은행원 초임은 일본의 2배나 된다는 보고서도 있다. 또 하나는 후진적 임금구조 문제다. 한국 은행원들의 임금에서 성과급이 차지하는 비중은 15% 정도에 불과하고 85%가 연공서열에 따른 기본급이다. 호봉제에 따라 노동비용이 거의 고정비용이 된 상황에서는 경기변동을 견디기 어렵다. 또 매년 호봉상승에 따라 임금이 자동으로 인상되는데다 해마다 반복되는 임금협상으로 임금 인상폭이 가파를 수밖에 없다. 더욱이 인구 고령화는 은행의 인력구조를 항아리형으로 만들어 앞으로 인건비 부담이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기업은 경기순환을 견뎌내기 위해 일정한 수준의 유연성이 필요하다. 즉 임금이나 고용 측면에서 유연성을 가져야 한다. 한국 은행산업의 경우 호봉제를 채택해 임금유연성이 거의 없으므로 경기변동을 견디려면 부득이 고용유연성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은행은 고용유연성 확보를 위해 다수의 비정규직을 고용하게 되고 명예퇴직이라는 이름으로 몇 년에 한 번씩 주기적으로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하는 것이다. 경직된 임금유연성이 필연적인 고용위기를 초래한 대표적인 예가 지난 1998년의 아시아 경제위기 당시의 상황이다. 당시 한국 은행들의 취약성이 고스란히 드러났고 결국 몇몇 은행들이 문을 닫았으며 거의 40%의 은행 직원들이 구조조정되는 아픔을 겪었다. 문제는 이러한 일들이 은행의 임금구조가 경직돼 있는 한 일정한 시간을 두고 계속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현재 은행 인사관행의 후진성은 노사 모두에 책임이 있다. 돌이켜보면 은행산업의 노사 모두 아시아 경제위기 당시의 교훈을 살리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1998년 당시의 대규모 구조조정은 노사 모두에 상생을 위한 교훈을 주기는커녕 불신의 실마리가 됐고 이후 노사 모두 조그마한 단기적 불이익도 감수할 수 없다는 전투적인 태세를 심어준 결과를 빚었다. 결국 경제위기의 뼈아픈 경험에도 불구하고 은행산업 종사자들이 장기적인 시각이 결여된 채 근본적인 개혁을 하지 못해 산업 전체의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은행 종사자들의 고용안정을 해치는 우를 범해온 것이다. 은행의 경쟁력 회복을 위해서는 임금체계 개편이 시급하다. 임금유연성을 확보하도록 호봉제를 완화하는 획기적인 시도가 필요하고 동시에 은행이 이익을 남기면 직원들과 이익을 공유할 수 있는 공정한 성과배분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 은행 노사는 임금유연성 확보가 고용불안을 방지하는 방안임을 자각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