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번을 아니라고 부인했더니 수사관이 각목으로 때리고 뒤에서 팔을 내리쳤습니다. 무슨 말을 하려 해도 묵살해버렸기 때문에 하라는 대로 대답했습니다.”
1974년 울릉도 간첩단 사건에 연루돼 옥고를 치른 박 모씨(79)는 5년 전 시작된 재심 재판에서 이같이 진술했다. 울릉도 간첩단 사건은 1974년 당시 중앙정보부가 울릉도 등지에 거점을 두고 간첩활동을 하거나 이를 도운 47명을 검거했다며 발표한 공안 조작 사건이다. 박 씨를 포함한 5명도 이때 간첩을 도왔다며 연루돼 옥고를 치렀다. 당시 재판 증거는 수사기관에서 한 진술밖에 없었지만, 이 진술에 따라 이들은 징역 1년~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이들의 억울함은 최근에서야 풀렸다. 대법원 판결을 통해서다. 사건 발생 이후 41년이며 소송을 낸 일부 피해자는 이미 사망했다.
대법원 1부(주심 이인복 대법관)는 박 씨 등 5명에 대한 재심 상고심에서 무죄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9일 밝혔다. 1심과 2심에 이어 대법원도 박 씨 등의 범행을 증명할 증거가 없다고 봤다.
재심에서도 피해자들의 진술과 반성문 등이 주요 증거로 제출됐다. 1심 재판부는 이에 대해 “피고인들은 모두 중앙정보부 수사관들에게 연행된 후 불법 구금돼 폭행과 협박 등 가혹행위를 당하는 과정에서 공소사실을 자백하는 진술을 했다고 봐야 한다”며 “그 결과 작성된 신문조서나 진술서, 반성문은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고 봤다.
실제 과거사위 조사 당시 간첩단 수사를 맡았던 한 중앙정보부 수사관은 “당시 구타는 당연한 행위였고, 잠 안 재우기 등은 통상적이었다”고 진술했다. 또 다른 수사관은 “매에는 장사 없다. 아무리 말 안 하고 있다가도 때리고 나면 다들 고분고분해진다. 그러면 그것을 범죄사실로 확정하게 된다”고도 했다.
피해자들도 직접 고문을 당한 사실을 알렸다. 피해자 서모씨(사망)는 “일주일 정도 잠을 안 재웠고 구타도 수없이 당했고, 전기고문을 두 번 정도 당했는데, 그때마다 기절했다”며 “나흘째 되는 날 수사관들이 ‘이런 식이면 니 마누라를 울릉도에 가서 데려와야겠다’고 협박해 모든 것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진술했다.
대법원은 결국 대법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검찰의 상고를 기각하고 무죄를 선고했다.
한편 이번 판결에 앞서 지난 8월에는 서울중앙지법51형사부(수석부장판사 임성근)가 또 다른 간첩단 피해자의 유족들이 낸 형사보상금 청구에서 총 13억6,500만원의 보상금 지급 결정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