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사설] 신념과 개혁의 상징으로 남은 김영삼 전 대통령

22일 새벽 향년 88세로 서거한 김영삼(金泳三) 대한민국 제14대 대통령은 이미 작고한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한국 정치의 민주화 여정에 결코 지울 수 없는 커다란 족적을 남긴 정치인이었다. 언제나 애칭인 'YS'로 불려온 김 전 대통령 또한 한국 현대사가 그렇듯 정치인으로서 길고도 험한 영욕의 길을 걸어왔다.

김 전 대통령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신념의 정치인이었다. 정치사의 굴곡에서마다 보여준 그의 꽉 다문 입술은 고래 힘줄 같은 강인한 의지를 표상했다. 물론 신념을 위해 많은 시련을 겪기도 했다. 1969년 3선 개헌을 반대하다 초산 테러를 당했고 1979년 유신 말기에는 국회의원직에서 제명당하는 불운을 겪었다. 1983년 가택연금 중에는 23일간의 목숨 건 단식투쟁으로 신군부에 저항하기도 했다. 1993년의 대통령 당선은 민주화를 위한 투쟁에서 자신의 정치적 신념이 옳았음을 입증받은 이정표라 할 수 있다.

그는 개혁의 정치인이기도 했다. 대통령 취임 이후 공직자 재산공개를 단행해 부패의 고리를 끊고자 노력했다. 당시 '청와대 칼국수'는 청렴의 상징이었다. 군부의 사조직인 하나회를 척결했으며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들의 12·12군사반란을 법정에 세워 정의를 실현했다.

김 전 대통령의 공과(功過ㅂ)는 경제정책에서 가장 뚜렷하게 나타난다. 금융실명제와 부동산 실명거래 등 경제개혁 정책을 펴는 한편 대외적으로는 적극적인 시장 개방을 추진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했다. 그러나 선진국 클럽인 OECD 가입은 거꾸로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를 초래하게 된 직접적 원인으로 작용했다. 급속한 세계화와 자본 유출입 허용으로 기업 부채가 급증하면서 나타난 신용경색과 금융시장 혼란은 마침내 한국을 초유의 금융위기로 몰아가 버렸다.

여러 가지 공과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치에서 문민정치의 실현을 이끌어낸 그의 민주화 투쟁은 결코 빛이 바랠 수 없을 것이다. YS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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