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김형철의 철학경영] 친구를 잃지 마라

<15> 타인과 공존하는 법


인생을 살아가는 데 가장 큰 기쁨 중 하나가 함께 갈 친구가 누구인지를 찾는 것이다. 친구를 찾았을 때의 기쁨과 잃었을 때의 슬픔 중 어느 것이 더 클까? 큰 의미는 없는 질문이다. 왜냐하면 둘 다 대단히 큰 기쁨이고 대단히 큰 슬픔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굳이 말하자면 친구를 잃었을 때의 슬픔이 더 클 것 같다. 친구 중의 최고의 친구는 단연 자신의 배우자다. 인생에서 가장 큰 슬픔이 바로 자신의 배우자 사망이라고 하지 않던가. 사람은 대개 새로 얻는 것보다도 이미 가진 것을 잃는 것에 더 큰 상실감을 느낀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친구를 잃지 않을 수 있을까.

첫째, 똑같이 갚아주려 하지 마라. 두루미가 여우를 저녁에 초청한다. 모든 음식들이 주둥이가 긴 그릇에 담겨 있다. 여우는 한 모금도 못먹고 쫄딱 굶고 돌아간다. 그야말로 황당함의 극치다. 역시 두루미는 '새대가리'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이번에는 여우가 두루미를 저녁에 초대한다. 모든 음식이 납작한 접시에 깔려 있다. 두루미 역시 굶는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따져보자. 자기 방식대로 상대방을 대접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로마에서 온 사람은 로마식으로 대접하라! 고객이 원하는 방식으로 고객을 대해주는 것 역시 서비스의 핵심정신이다. 더 큰 문제는 두루미는 머리가 모자랐을지 모르지만 여우는 사악하게 행동했다는 점이다. 여우는 귀한 친구 한 명을 잃어버리는 선택을 후회할 것이다.

둘째, 혼자 다 먹으려고 하지 말라. 쥐 중에서 제일 잡기 쉬운 쥐는 단연 '독 안에 든 쥐'다. 그런데 쥐가 어쩌다가 독 안에 갇히게 됐는지 물어본다면 대개는 쥐 스스로 빈 독에 들어갔을 것이라고 대답한다. 천만의 말씀이다. 쥐가 독 위에 올라가 보니 쌀이 독 끝까지 가득 차 있고 그래서 쥐 혼자서 먹을 욕심에 위에서부터 먹어 들어가다가 그만 독 안에 갇히게 된 것이다. 독 안에 든 쥐가 되지 않으면서 독 안에 든 쌀을 다 먹는 유일한 방법은 '친구와 밧줄'뿐이다. 다른 어떤 방법도 이보다 좋을 수 없다. 다음부터 친구 없이 혼자 쌀을 다 먹겠다고 하는 순간 '하~아~, 내가 이러다가 독 안의 든 쥐가 되는구나'라고 생각하시라. 나눠 먹는 사람은 친구를 잃지 않는 법이다. 여기서 얻는 교훈은 어떤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는 반드시 출구전략(exit plan)이 있어야 한다.

셋째, 상대방을 비난하지 마라. 두 친구가 길을 떠난다. 저쪽에서 곰이 갑자기 나타난다.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에서 두 친구가 취한 태도는 정반대다. 한 명은 재빨리 옆에 있던 나무 위로 올라가서 곰을 피한다. 또 다른 한 명은 땅에 바짝 엎드린다. 죽은 척하는 것이다. "곰은 죽은 동물을 안 먹는다"는 말이 진짜든 가짜든 일단 살고 봐야 하는 순간에 취한 선택이다. 곰이 땅에 엎드린 친구에게 다가오더니 귀에다 대고 뭐라고 얘기한다. "저 나무 위에 혼자 살겠다고 올라간 저런 애랑 다시는 친구하지 말라." 곰은 땅에 엎드린 인간이 살아 있다는 것을 다 알면서도 그냥 지나친 셈이다. 나무 위에 피신한 친구가 내려오더니 궁금해서 묻는다. "곰이 너한테 뭐라고 얘기했냐?" 친구가 답한다. "다음부터 너 같은 친구하고는 함께 다니지 말라고 하던데." 문제는 지금부터다. 당신이라면 그 곰의 말을 친구에게 전했을까. 그게 잘한 일인가. 곰의 '분할통치(divide rule)'전략에 말려 들어갈 것인가. 그 말을 전달하는 순간 곰의 말이 아니라 당신의 진심이 되는 것이 아닐까. 그 이후 둘의 사이는 전과 같아질 수 있을까.

'빨리 가려면 혼자 가라. 멀리 가려면 같이 가라.' 당신의 조직은 빨리 가려고만 하지 않는가. 빨리 가려고 조직원들 다 팽개치면서 냅다 뛰고 있지는 않는가.

방향이 어딘지, 몇 명이 같이 가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말이다. 지속 가능한 발전과 생존은 같이 가는 사람만이 챙길 수 있는 트로피다.

김형철 연세대 철학과 교수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