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카드

[리빌딩 파이낸스] 업종·국경 사라지는 카드산업… 먼저 벽 허물어야 살아남는다

금융산업, 낯선 길을 가다 <6> 카드사 무한경쟁 속으로

ICT·유통사 등 경쟁자 잇단 출현, 결제업무 잠식

중금리 대출은 인터넷은행 가세로 수익악화 우려

"가맹점 늘리고 '결제 플랫폼'으로 역할 넓혀가야"


삼성전자와 네이버, 구글과 백화점, 그리고 스타트업까지. 유사점을 찾기 힘든 이들 모두가 최근 들어 뛰어든 사업이 하나 있다. 바로 모바일 결제 시장이다. '페이'라는 이름을 달고 쏟아지는 이 모바일 결제 서비스들은 스마트폰이나 메신저, 오프라인 유통망 등을 디딤돌 삼아 과거 신용카드가 현금을 대체했듯이 지갑 속 플라스틱 카드의 지위를 넘보고 있다.

반면 기존 결제 시장의 패권을 쥐고 있던 카드사들의 상황은 녹록지 않다. 당장 올해부터 시작되는 가맹점 수수료 인하와 대부업 최고금리 인하, 그리고 미국발 금리 인상으로 인한 조달비용 상승 등 대내외적 악재가 기다리고 있는 가운데 지금까지는 대결해본 적 없는, 업종과 국경을 넘어선 경쟁자들과 맞서야 한다.

◇결제 산업 문 두드리는 낯선 경쟁자들=핀테크가 금융권의 화두로 떠오른 지난해, 카드사들은 다른 금융업종보다 한 발 앞서 핀테크로 인한 금융환경의 변화를 실감했다. 우후죽순처럼 늘어난 '페이' 때문이다. 페이 서비스는 금융 서비스임에도 불구하고 사업주체가 대부분 전자제품 회사나 정보통신기술(ICT) 업체, 유통사 등 비금융사라는 점이 새롭다. 이처럼 전에 없던 경쟁자들의 등장은 단순히 카드 업계의 경쟁 심화에 그치지 않고 카드 산업의 정체성을 바꿔가고 있다.

국내에서 '페이(pay)'라는 이름을 내걸고 온·오프라인 결제 업무를 하고 있는 서비스는 약 17개에 이른다. 참여자의 면면도 화려하다. 우선 삼성전자는 삼성페이 출시 2개월 만에 가입자 100만명을 돌파했고 LG전자 역시 올해 서비스를 목표로 최근 신한카드 및 KB국민카드와 업무제휴를 맺었다. 온라인 플랫폼과 막강한 회원 수를 가진 ICT 업체들 중에서는 네이버가 1,500만명 이상의 고객을 보유한 네이버페이를 운영 중이며 카카오도 500만명 이상의 고객이 있는 카카오페이를 갖고 있다. LG U+의 페이나우는 가입자 300만명을 넘어섰으며 SK플래닛의 시럽페이도 100만명 이상의 가입자를 보유하고 있다.

이외에 티켓몬스터와 인터파크 등 온라인 유통사와 신세계·롯데·현대백화점 등 대형 유통사들도 각각의 페이 서비스를 선보이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신생 핀테크 업체인 비바리퍼블리카가 계좌 간 간편송금을 기반으로 한 '토스페이'를 내놓은 바 있다. 아직 국내에 출시되지는 않았지만 애플페이와 안드로이드페이·알리페이 등 국적을 넘어선 경쟁자들도 국내 진출을 준비하고 있다.

17개 서비스 가운데 카드사로는 근거리무선통신(NFC) 기반의 오프라인 결제 수단인 'BC페이'와 온라인 결제 서비스인 '페이올' 두 개를 운영하는 BC카드가 유일하게 이름을 올렸을 뿐이다. 물론 아직까지는 새로운 플레이어들이 기존 시장에 얼마나 큰 영향을 줄지는 미지수다. 삼성페이의 경우 카드사 결제망을 그대로 이용하는데다 카드사에 별도의 수수료도 받고 있지 않아 당장은 큰 영향이 없고 인터넷전문은행들은 사업 초기 인프라를 갖추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데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새로운 경쟁자들이 더 많은 고객을 확보해 명실상부한 '결제 플랫폼'으로 자리 잡는다면 이야기는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 업계의 시각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페이 서비스가 카드사의 결제 업무 영역을 잠식하고 있다면 올해 말 출범하는 인터넷전문은행은 중금리 대출 시장에서 카드사와 대결할 것으로 보인다. 인터넷전문은행 시범사업자로 선정된 카카오뱅크와 K뱅크는 저마다 새로운 신용평가 시스템으로 중금리 대출 시장에 진출하겠다는 포부를 밝힌 바 있다. 카드사들의 주 수입원인 카드론과 현금서비스 금리 역시 평균 15% 안팎의 중금리대다. 특히 앞으로 가맹점 수수료를 통한 수익 증대를 기대할 수 없는 카드 업계 입장에서는 중금리 시장의 경쟁 격화가 수익성 악화로 직결될 것으로 우려된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먼저 벽 허무는 자가 살아남는다=카드 산업을 둘러싼 이 같은 환경 변화에 한 카드사 임원은 "은행이라는 단어가 사라진다는 전망처럼 카드사라는 단어도 고객들의 뇌리에서 머지않아 사라질 것"이라며 "하지만 카드사는 없어져도 언제 어디에서나 간편하게 쓸 수 있는 결제 플랫폼에 대한 니즈는 사라지지 않는다"고 내다봤다. 이어 "카드사가 끝까지 생존하려면 먼저 벽을 허물고 다른 업종, 더 많은 가맹점과 손을 잡아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미 일부 카드사들은 이 같은 트렌드를 반영한 '결제 플랫폼화' 전략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하나카드는 올해 출시 예정인 하나페이를 다른 카드사 고객들도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쟁이 치열한 카드 업계에서 공동 플랫폼 서비스를 시도하는 경우는 매우 이례적이다. 앞서 신한카드는 일명 '모바일 플랫폼 얼라이언스'라는 이름으로 지난해 중순부터 세계 최대 숙박 예약 사이트 '부킹닷컴'을 비롯해 GS리테일·교보문고·SK플래닛·한국스마트카드 등 다양한 업체들과 단순 제휴상품 출시 이상의 전략적 협약을 맺고 있다.

한 카드사 최고경영자(CEO)는 "새로운 경쟁자들이 만만찮은 것은 사실이지만 카드사들도 수많은 고객과 데이터를 가진 하나의 막강한 플랫폼"이라며 "카드사라는 업종에 얽매이지 말고 결제 플랫폼으로서 역할을 넓혀가는 것이 시장 변화에 대응하는 유일한 전략"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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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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