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금융정책

계좌개설 '은행의 두 얼굴'

온라인선 쉽게 해주고… 영업 창구선 깐깐하게…

핀테크 부문 성과 알리기위해 비대면 방식 계좌개설 서비스

대포통장 근절 방침 따라 지점은 발급 요건 강화

금융당국 엇갈린 주문 탓에 시중銀 "뽀족한 해결책 없다"



은행들이 일선 지점의 계좌 개설 요건은 강화하면서 오프라인보다 본인 확인이 쉽지 않은 온라인 계좌 개설의 문턱은 오히려 낮추는 아이러니한 모습이 연출되고 있다. 금융 사기 방지를 위한 대포통장 근절과 핀테크 부문 활성화를 통한 금융개혁 성과 가시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쫓고 있는 금융 당국의 엇갈린 주문 탓이라는 게 금융계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7일 금융계에 따르면 시중은행들은 최근 들어 스마트폰을 활용한 비대면 계좌 개설 서비스를 잇따라 내놓으며 핀테크 부문 성과를 알리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신한은행은 국내 최초로 비대면 방식으로 계좌 개설이 가능한 모바일은행인 '써니뱅크'를 지난달 출시했으며 서비스 범위 또한 기존 대출승인 고객에서 신규 고객으로 점차 확대할 계획이다. 기업은행 또한 지난달 '헬로 아이원(i-ONE)' 앱을 내놓으며 비대면 방식의 계좌 개설 서비스를 개시했고 우리은행은 지난 5일 위비모바일대출 고객을 대상으로 '위비뱅크'를 통한 비대면 계좌 개설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 밖에 KEB하나은행과 국민은행도 조만간 비대면 계좌 개설 서비스를 선보일 예정이다. 다시 말해 영업 지점 방문 없이도 계좌를 개설하거나 은행 직원과 대면 상담 없이 대출 거래 등을 온라인상에서 진행할 수 있는 서비스를 확대하는 경쟁을 벌이고 있는 것.

하지만 문제는 이 같은 온라인 거래 확대가 금융 사기를 막기 위해 대포통장 근절에 은행권이 철저히 나서줄 것을 요구하는 금융 당국의 또 다른 지침과 상충 된다는 점이다. 시중은행들은 금융 당국의 대포통장 근절 방침에 따라 지난해 하반기부터 새로 발급되는 통장이 대포통장으로 사용되지 못하도록 신규 계좌 개설시 재직증명서나 급여확인서 등을 깐깐하게 요구하고 있으며 금융거래목적확인서 등까지 별도로 작성하도록 하고 있다. 본인의 직장이나 거주지와 떨어진 곳에서 통장을 만들려고 하는 고객에게는 해당 지역 지점에서 계좌를 개설하라며 퇴짜를 놓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이 때문에 별도 소득이 없는 주부나 학생 등이 계좌 개설을 포기하는 경우도 목격된다. 이뿐만 아니라 금융 당국이 신규 계좌 개설에 관한 가이드 라인을 마련해주지 않고 각 은행에 일임, 이에 따라 은행별로 계좌 개설 요구 조건에 차이가 나자 일부 엄격한 조건을 내세우는 은행에 대해서는 "왜 이렇게 빡빡하게 구냐"는 식의 고객 불만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은행들은 계좌 개설과 관련한 온라인과 오프라인 간 온도 차에 대해 뾰족한 해결책이 없다는 입장이다. 대포통장의 경우 발급 건수가 많으면 당국의 제재를 받고 핀테크는 은행 혁신성 평가에서 배점이 커서 어느 하나 소홀히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시중은행 고위관계자는 "청와대가 직접 나서 금융개혁 성과를 독려하는 상황에서 그나마 눈에 띄는 핀테크 부문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이런 상황을 감내할 수밖에 없다"며 "대포통장으로의 활용을 막기 위한 조치를 취한다고 하지만 비대면 채널의 특성상 본인 확인 등에서 허점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점은 확실히 우려되는 부분"이라고 털어놓았다.

이 때문에 금융계에서는 핀테크가 중요하기는 하지만 안정성이 최우선인 금융 서비스의 특성을 고려해 핀테크 부문에 관한 지나친 조급증을 버려야 한다는 의견도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이미 국민 1인당 평균 보유 은행 계좌가 4개나 되는 상황에서 인프라 구축 비용이 많이 드는 비대면 계좌 개설 서비스 도입에 은행들이 경쟁적으로 나서는 모습이 사업성 면에서 과연 적절한 지 물음표를 던지기도 한다.

한 금융계 관계자는 "핀테크 관련 서비스를 내놓는 데 각종 테스트 기간까지 감안하면 수개월이 걸릴 수밖에 없는데 각 금융사들이 충분한 검증 없이 지나치게 경쟁적으로 서비스를 내놓고 있다"며 "향후 비대면 기반 본인 인증이 필수인 인터넷전문은행이 출범할 경우 온라인을 통해 쏟아질 신규 계좌들이 금융 사기에 연루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이와 관련한 대비책을 철저히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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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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