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출판시장에도 부는 '취향저격' 바람...1인 출판 붐 이어진다

전은정 목수책방 대표 사무실에 진열된 목수책방 출간 도서들. 목수책방에서 낸 책 외에도 생태 관련 서적들을 다양하게 모아두고 있다. 누구나 사무실에 들러 책을 살펴볼 수 있다.<BR><BR>전은정 목수책방 대표 사무실에 진열된 목수책방 출간 도서들. 목수책방에서 낸 책 외에도 생태 관련 서적들을 다양하게 모아두고 있다. 누구나 사무실에 들러 책을 살펴볼 수 있다.




#자연이 좋았다. 자연을 담은 책은 더 좋았다. 읽고 싶고, 권해주고 싶은 책을 직접 만들어보고 싶었다. 잡지 에디터였던 전은정(43) 씨가 생태 전문 출판사 ‘목수책방’을 차린 이유다. 출판 경험을 쌓기 위해 디자인하우스, 미다스북스 등 다수의 출판사를 거치면서 그의 신념은 더욱 확고해졌다. ‘만들고 싶은 책’을 원 없이 만들어 보자는 것. 그래서 그가 가장 자신 있고 관심 있는 분야인 ‘생태’ 관련 서적에 집중하기로 했다. 2014년 2월 회사를 설립하고 2년도 안 돼 4권의 책을 냈고 작지만 알찬 책을 내는 출판사로 이름을 알렸다. 출판사 운영만으로 생계를 유지하기는 어렵지만 전 씨는 1인 출판사를 꿈꾸는 이들 사이에서 성공사례로 꼽힌다. 전 씨는 “아직 출판사만으로는 생활을 유지하기 어려워 윤문·대필·교열 등 아르바이트까지 하고 있다”며 “출판사가 자리를 잡으면 책과 자연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토론하고 책도 볼 수 있는 생태서점을 열 계획”이라고 말했다.

1인 출판사 유유에서 출간한 책들.<BR><BR>1인 출판사 유유에서 출간한 책들.



1인 출판사가 늘고 있다. 1인 출판사란 책 선정부터 작가와의 계약, 편집, 제작, 마케팅 등 출판의 전 단계를 한 사람이 맡는 출판사로 보통 통계에서는 직원 수 4인 이하의 소규모 출판사를 1인 출판사로 집계한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지난해 배포한 ‘2014 출판산업실태조사’에 따르면 전체 출판사 중 1인 출판사가 차지하는 비중은 79.3%로 전년(76.4%)보다 늘었다. 최근 5년간(2010~2014년) 출판 시장 규모가 10% 미만 성장한 데 반해 같은 기간 출판사 수가 3만5,840개에서 4만6,982개로 30% 이상 증가한 배경 역시 1인 출판사의 꾸준한 증가라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1인 출판사에서 출간한 책 3권이 지난해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30위에 이름을 올렸다. /자료출처=2015년 연간도서판매 동향 및 베스트셀러 분석(교보문고)<BR><BR>1인 출판사에서 출간한 책 3권이 지난해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30위에 이름을 올렸다. /자료출처=2015년 연간도서판매 동향 및 베스트셀러 분석(교보문고)



전문가들은 당분간 1인 출판사의 꾸준한 증가세가 이어지며 기존의 제작·유통 관행을 깨뜨리는 출판 트렌드가 두드러질 것으로 보고 있다. 온라인 서점 알라딘은 올 상반기 인문·사회 분야 출간 트렌드 다섯 가지 중 하나로 ‘1인 출판’을 꼽기도 했다. 소셜미디어의 발달로 책을 홍보할 수 있는 창구가 늘어난 데다 뚜렷한 취향의 독자들이 특정 분야나 특정 출판사의 책을 골라 읽는 ‘취향저격’ 소비트렌드도 1인 출판사 증가의 배경으로 꼽힌다.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19~20세기 초반 책을 소개하는 1인 출판사 초록달의 경우 책을 내기 전 독자들로부터 제작비를 투자받는 크라우드펀딩을 시도, 다수의 책을 사전에 알리는데 성공했고 목수책방의 전 대표는 숲 해설가로 온·오프라인 공간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며 타깃 독자층과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대형 출판사들과는 차별화된 제작·홍보 방식으로 출판 시장에서 좋은 성과를 낸 책도 다수 있다. 1인 출판사 클에서 발간한 어른들을 위한 색칠놀이 책 ‘비밀의 정원’은 2015년 교보문고 종합 베스트셀러(2015년 1월 1일~11월 30일) 3위에 올랐다. 2012년 설립된 클은 현재까지 30여권의 책을 출간했고 그중 컬러링북 5권이 특히 흥행했다. 초판 복간 전문 1인 출판사 소와다리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윤동주)’는 현재 알라딘에서 2주간 종합 1위를, ‘진달래꽃(김소월)’은 3주간 종합 TOP10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김준호 출판평론가(1인1책 대표)는 “도서정가제 시행 이후 대형 출판사가 출판시장을 휩쓰는 현상은 약해지고 있다”며 “독자 개개인의 요구나 취향을 맞추는 소규모 출판사들이 개성을 강점으로 주목받는 추세가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자책 시장 활성화에 더해 디지털 프린팅으로 소량 출판이 가능해지면서 1인 출판사의 증가세는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현재는 인쇄비, 제작비, 디자인비 등 ‘직접제작비’만 따져도 책 한 권을 만드는 데 보통 1,500만~2,000만원의 비용이 든다. 이를 회수하기까지 보통 1~2년이 걸리고 흥행에 실패할 경우 회수 자체가 불가능하다. 상당수 1인 출판사들이 손익분기점을 넘어서기 힘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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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전자책 전문 1인 출판사 아이이펍을 창업한 김철범 대표는 “주로 모바일 환경에 적합하고, 종이책으로 만들기 어려운 콘텐츠를 전자책으로 만들다 보니 차별화가 가능하다”며 “전자책의 기반인 이펍(ePUB)은 세계규격이자 오픈 소스라서 HTML에 대한 이해만 있으면 누구든 어렵지 않게 다룰 수 있다보니 1인 출판사를 창업하는 이들 가운데선 관심이 특히 높다”고 설명했다. 아이이펍은 ‘페이스북 사용법’, ‘내 인생의 책’, ‘발칙한 세 여자의 인도여행기’ 등 문체가 짧고 비교적 가벼운 주제의 콘텐츠를 제작해 호응을 얻었으며 현재 직원수 14명의 기업으로 성장했다.

정광진 1인출판협동조합 이사장은 “1인 출판사의 증가가 출판물의 다양성과 전문성 증대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은 충분히 긍정적”이라며 “기존의 제작·유통 관행을 깨뜨리며 마니아층을 확보하는 출판사들의 성공사례가 많이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차오름 인턴기자 cor1021@sed.co.kr

▶▶1인 출판사 성공 비결은 ‘전문성’…저자 섭외 어려우면 번역서 출간부터

생태 분야를 전문으로 하는 목수책방, 축구 전문 출판사 그리조아, 중국·고전·공부법 등 세 가지 키워드를 관통하는 서적을 내는 유유출판사, 음식 교양서를 주로 출간하는 따비 등 대중들에게 이름을 알린 1인 출판사의 공통점은 ‘전문성’이다. 특화된 콘텐츠를 만들다 보면 트렌드를 알게 되고 소위 ‘읽힐 만한 콘텐츠’나 저자를 보는 눈이 생긴다는 게 이들의 조언이다. 또 출판사의 정체성이 분명해야 대형 출판사와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출판사의 콘셉트를 분명하게 잡았다면 이제 창업 절차를 밟을 차례다. 사무실에는 컴퓨터·팩스·프린터 등만 있어도 업무가 가능하다. 때문에 자택을 사무실로 쓸 수 있다. 이후 사업장 주소지 관할 시·군·구청에서 출판사 설립 신고를 하고 국립중앙도서관 서지정보유통지원시스템에서 국제도서번호(ISBN)를 신청한다. ISBN은 어떤 책이 어느 나라, 어느 출판사에서 출간된 것인지를 알려주는 번호다. 세무서에서 사업자등록까지 하면 출판을 위한 준비는 끝난다.

제작 비용을 아끼기 위해 질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점 역시 이들이 강조하는 부분이다. 박성경 따비 대표는 “디자인 비용 50만~100만원을 아껴보려다가 독자들에게 외면을 받게 되면 이미 늦은 것”이라며 “1인 출판사지만 퀄리티 높은 책을 낸다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찾아가는 마케팅’으로 독자의 취향을 저격한 사례도 있다. 창업 전 미국·일본·영국의 축구 책을 찾아볼 정도로 열렬한 축구 팬이었던 김연한 그리조아 대표는 축구 커뮤니티 아이러브사커나 레알 마드리드 팬카페에 책을 홍보했다. 지난 11월 이랜드FC의 경기장 내에 일일 북스토어를 마련해 직접 책을 팔기도 했다. 그는 “서점을 방문하는 일반 독자들이 축구 관련 서적을 읽지 않을 거라 생각해 차별화된 홍보 방법을 고민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본격적으로 저자를 섭외하고 출판 계약을 하는 일이 1인 출판사의 주요 업무다. 저명한 교수에게 직접 연락해 원고를 의뢰하거나 다른 전문가를 소개받는 방법이 있다. 인터넷 커뮤니티·블로그·페이스북 등을 찾아봐도 좋다. 출판사 정체성과 정말 잘 맞는다고 생각되는 저자가 있다면 ‘삼고초려’의 노력도 필요하다. ‘책 먹는 법’의 저자를 섭외하면서 수 차례 거절을 당했다가 끝내 마음을 돌리는데 성공한 조성웅 유유 대표의 사례도 참고할만하다. 조 대표는 섭외 전 저자의 책, 저자가 한 언론 인터뷰, 저자의 페이스북 글 등을 살펴보며 ‘뒷 조사’를 철저히 한 덕분에 섭외에 성공했다. 그는 “저자 자신에 대해 철저하게 조사하고 준비했다는 걸 보여주면 대부분 마음을 열더라”며 “‘그 주제의 책을 써주실 분이 당신뿐’이라는 자세로 설득했다”고 귀띔했다.

여의치 않으면 번역서부터 시작하는 것도 방법이다. 해외도서 에이전시나 아마존닷컴을 통해 아직 국내에 소개되진 않았지만 외국서 이미 검증된 책들을 찾아볼 수 있다. 원고가 나오면 교정·교열·디자인을 거쳐 책을 인쇄소에 넘긴다. 디자인이나 인쇄의 경우 혼자 해낼 여력이 부족한 경우 별도 업체를 계약한다. 책이 나오면 서점MD를 만나 ‘영업’을 해야 한다. 주요 서점에 책을 납품하고 진열을 확인하며 언론·SNS 등에 홍보하는 것이 1인출판사가 책을 팔기 위해 최종적으로 하는 일이다. /차오름 인턴기자



차오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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