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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라노 중앙역 광장 맞은 편에는 세계 5대 타이어 기업이자 포뮬러1 공식 타이어 공급업체인 피렐리 본사 건물이 있다. 이탈리아 제조업의 상징과도 같은 이 건물은 지난해 3월 중국 국영화학공사(Chemchina)에 인수됐다. 중국은 이를 통해 단숨에 한국을 제치고 일본, 프랑스, 미국, 독일에 이은 타이어 5대 강국에 이름을 올렸다.
타이어뿐만이 아니다. 지난 2012년에는 중국 웨이차이그룹이 세계 최대 호화 요트 제조업체인 페레티를 인수했다. 장인들이 오랜 시간 공들여 쌓아온 세계적 브랜드를 인수합병(M&A)으로 손쉽게 거둬들이고 있는 셈이다. 이탈리아인들은 중국의 공세적인 M&A를 두고 750여년 전 동방의 문물을 배우기 위해 원나라를 찾은 마르코 폴로를 빗대 '역(逆) 마르코 폴로 현상'이라고 지칭했다. 재정위기로 경영이 어려워진 이탈리아 우량 제조기업을 쓸어담고 있는 중국 사례를 유럽 진출의 전략적 방안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인수기업을 발판으로 까다로운 현지시장에 연착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이탈리아 현지기업을 인수한 사례는 세아제강이 사실상 유일하다. 세아제강은 KOTRA 글로벌M&A센터의 도움으로 2014년 이탈리아 업체인 이녹스테크를 인수했다. 이 회사는 스테인리스 대구경 강관 글로벌 선두업체였다. 세아제강은 이녹스테크 인수를 통해 진입 장벽이 높기로 유명했던 글로벌 설계·조달·시공(EPC) 업체인 사우디 아람코 등을 새 고객으로 맞을 수 있었다.
이탈리아 렌디나라에 있는 생산공장에서 만난 김상규 세아제강 이녹스테크 현지법인장은 "유럽의 오일메이저나 EPC 업체는 한국산을 거의 쓰지 않는다. 개별 기업이 노력한다고 해도 할 수 없는 게 있다"며 "이녹스테크 인수를 통해 이런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정원준 KOTRA 밀라노무역관장은 "기계·부품·항공 분야에 강한 이탈리아는 제조업지수가 세계 5위일 만큼 원천기술이 많다"며 "우수한 기술력을 가졌음에도 자금력이 약한 중소기업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우리 기업 입장에서는 그만큼 인수합병 매력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M&A 쪽에 노하우가 없다 보니 무턱대고 달려들다 실패를 하거나 아니면 소극적으로 방관하는 경향이 뚜렷한 것도 문제"라고 설명했다.
특히 높은 조세부담률, 행정과 사법의 비효율성 등은 M&A 시 유의해야 할 점으로 꼽힌다. 이탈리아는 행정처리절차가 매우 느리다. 평균 소송기간도 8.7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압도적인 꼴찌다. 법인세와 판매소득세 등을 모두 더하면 기업의 조세부담률은 60%에 육박하고 외국인투가에 대한 혜택도 많지 않다. 정 관장은 "세아는 2년 동안 기회를 엿보고 있다 매물이 나오자마자 6개월 만에 M&A를 끝냈다"며 "이탈리아는 겉으로 드러나는 것만 보면 기업 하기 좋은 나라가 아닐 수도 있어 M&A 시 철저한 준비 과정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밀라노·렌디나라=김상훈기자 ksh25th@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