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권홍우의 오늘의 경제소사]여행을 떠나요…프레야처럼 못나고 늦었어도



금수저나 미인? 거리가 멀었다. 평생토록 풍족하지도 않았다. 153㎝의 작은 키에 어릴 때 입은 화상으로 용모도 자신이 없었다. 학벌도 체력도 뛰어나지 못했으나 여성 탐험가로 이름을 날린 프레야 스타크(Freya Stark)는 출발마저 늦었다. 1928년 시리아 지역으로 첫 여행을 떠날 때 나이가 35세였으니.

여행 비용마저 충분치 않았던 프레야는 지도에만 나올 뿐 실상이 알려지지 않은 오지나 다름없던 중동의 구석구석을 훑었다. 제 2차 세계대전에서는 현지인 정보조직을 만들어 영국의 중동 전선을 거들었다. 사막 부족들이 영국군에 가담하거나 최소한 중립을 지키는 데에 숨은 공을 세웠다. 제 1차 세계대전 때 아라비아의 부족들을 규합한 영국군 정보장교 ‘아라비아의 로렌스’의 여성판. 왕립협회의 회원으로 추대되고 기사작위(Dame)까지 받은 것도 오지탐험가로서의 명성과 국가에 공로했다는 평가 덕분이다.


대학 입학 전까지 정규교육을 전혀 받지 못한 그가 세계적 여행가로 이름을 날린 비결은 철저한 국제화와 현지화. 서로 사촌지간이었으나 국적은 복잡했던 영국인 화가 아버지와 폴란드ㆍ독일계 이탈리아인인 어머니 사이의 다국적 환경에서 자랐다. 프랑스 파리에서 출생해 어린 시절의 대부분을 이탈리아에서 지내며 정규교육을 받지 못했으나 영어와 불어ㆍ이탈리아어ㆍ독일어ㆍ라틴어를 익혔다. (실은 그의 부계는 아무도 모른다. 프레야의 아버지는 다른 남자의 아이를 임신한 채 결혼한 사촌동생이 낳은 프레야를 친딸처럼 아꼈다)

이탈리아와 유럽 각지를 오가며 자라던 프레야에게 아버지가 선물한 소책자 ‘천일야화’는 평생의 꿈을 심어줬다. 런던대에 입학하며 역사학을 전공으로 선택해 역사와 아라비아어·페르시아어를 공부한 이유도 어릴 적부터 꿈꾸었던 ‘중동 여행’에 대한 갈망 때문이었다. 1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짧은 대학 생활을 접고 이탈리아 전선의 간호부대에 종군했던 그는 한 군의관과 약혼―파경의 과정을 겪으며 다시금 중동으로 눈을 돌렸다.

런던 동방학원에서 아라비아어와 페르시아어를 익힌 그는 죽음의 위험을 마다하지 않고 전설상의 오지를 주로 찾아 다녔다. 이슬람 수니파와 시아파 양쪽으로부터 배척받는 드루즈파, ‘암살자 집단’이라는 전설이 전해지는 ‘어쎄신’파의 성채들을 찾아다니고 고대 보물의 항구를 추적하며 온갖 일화를 남겼다. 영화로도 제작된 ‘인디애나 존스’의 몇몇 장면이 프레야의 여행기에서 따온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프레야는 장수한 여행가로도 유명하다. 1993년 100살 천수를 누리고 죽기 10여 전까지 그는 여행을 즐겼다. 90세 무렵에는 유프라테스강을 여행하던 도중 뗏목이 뒤집혀 죽을 뻔했던 적도 있다. 남성우월주의가 지배하는 거친 중동지역에서 연약한 여성이 탐험가이자 지리학자로 명성을 떨친 이유가 어떤 편지에 나온다. 어머니에게 보낸 1938년 1월 12일자 편지에 그 비결이 적혀 있다. 요즘도 그가 간파한 비결은 여기저기에 등장한다. ‘여행가의 7가지 덕목’이라는 이름으로.



1. 자신의 생각과 맞지 않는 기준을 인정하고, 나와 다른 가치관이 있다는 점을 깨달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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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우둔한 사람과 부적절한 도구를 화내지 않고 이용하는 법을 배울 것.

3. 육체적 불쾌감을 신경 쓰지 않고 견딜 것.

4. 언제 어디서라도 휴식을 취하거나 영양을 섭취할 것.

5. 자연뿐 아니라 인간의 특성도 사랑할 것.

6. 편견을 버리고 주의 깊게 관찰하며 하나하나 트집 잡지 말 것.

7. 하루의 시작처럼 차분한 마음으로 하루를 끝낼 것.

어디 여행 뿐이랴. 세상 만사에서 ‘프레야의 덕목’을 접목하고도 풀리지 않는 일이 있을까. 프레야는 언어에서 문화까지 상대를 철저하게 공부한 이후에 위와 같은 마음가짐으로 세상을 온 몸과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어찌보면 인생살이 자체가 여행길인지도 모를 일…. 프레야의 덕목과 행동 양식에서 미래를 비추는 등불이 보인다. /권홍우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hongw@sed.co.kr

권홍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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