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피플

[CEO&STORY] 이효진 8퍼센트 대표

"안굶을 자신 있다"… 잘다니던 은행 그만두고 P2P대출·투자에 꽂혔죠

이효진 8퍼센트 대표13
이효진 8퍼센트 대표3

새로운 경험하고 싶은 마음 커 퇴사후 SNS서 '백수클럽' 만들어

사람들 만나며 창업 아이템 연구… 2014년 100만원으로 사업 시작

'8퍼센트' 사명 투자자에 8%대 수익… 돈 빌리는 사람엔 중금리 대출 의미

P2P대출 금융 패러다임 바꾸는 모델… 올 본격 성장 1000억 실적 올릴 것



"2년 전 8년간 다니던 은행을 그만둔 후 바로 페이스북에 '백수클럽'을 만들었어요. 백수 생활을 '즐기면서' 창업 아이템을 찾기 위해서였죠. 하지만 커피숍에서 화훼업까지 별별 업종을 다 검토해봤지만 확 끌리는 것이 없었어요. 그러던 중 지인을 통해 미국의 개인 간(P2P) 대출을 알게 됐는데 사람이 아닌 일에도 이런 표현을 사용할 수 있을까요. 말 그대로 '첫눈에 반한 느낌'이었습니다. 곧바로 관련 업체를 직접 보기 위해 미국으로 날아갔습니다. 직감적으로 우리 사회에 필요한 일이라는 것을 느꼈어요. 또한 제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화장기 없는 얼굴에 운동화를 신은 앳된 학생 같은 모습. 하지만 요즘 금융계에서 가장 '핫한' 인물로 꼽히는 젊은 창업자. 바로 P2P 대출업체 8퍼센트의 이효진(33·사진) 대표다. 지난 4일 서울 동작구에 위치한 8퍼센트 본사 인근 카페에서 만난 이 대표는 "업력이 짧아 할 이야기가 있을지 모르겠다"면서도 인터뷰 내내 확신에 찬 어조로 창업 스토리를 가감 없이 풀어놓았다.

2014년 11월 이 대표는 미국에서 돌아오자마자 사무실도 없이 커피숍에 앉아 단돈 100만원으로 8퍼센트를 창업하고 일을 시작했다. 회사명 '8퍼센트'는 투자자에게는 8%대의 수익을, 대출자에게는 중금리 대출을 제공한다는 의미다. 신생 기업이지만 자체적인 신용평가 시스템을 바탕으로 한 중금리 대출에 기대 이상으로 많은 투자자와 소비자가 관심을 보이면서 지난해 6월 투자금액 10억원을 넘어선 후 매달 90% 이상 성장했고 현재는 누적 투자금액이 100억원을 넘어섰다. 금융과 기술을 융합한 핀테크가 금융계의 화두로 자리 잡은 가운데 핀테크의 대표 모델로 거론되는 스타트업이기도 하다.

퇴직 전까지 이 대표의 삶은 줄곧 평탄했다. 어릴 적부터 수학에 관심이 많았다는 이 대표는 한성과학고를 거쳐 포항공대 수학과에 진학했다. 졸업할 때가 돼서는 선배·동기들과 마찬가지로 금융권 취직을 결심하고 2006년 우리은행에 입사했다.

"은행 근무 시절을 돌아보면 좋은 일이 많아요. 정말 재미있게 다녔던 것 같아요. 안 그러면 한 직장에서 8년을 보내기가 쉽지 않잖아요. 지금도 은행 근무 시절에 쌓은 지식과 인맥이 큰 도움이 돼요. 당연히 금융위원회나 금융감독원이 어떤 일을 하는 곳인지 알고 있고 은행과 카드·증권 등 금융사들의 역할과 상호 관계에 대해서도 익숙해요. 하지만 금융 쪽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금융위가 뭐 하는 곳인지조차 모르는 경우도 있어요."

직장 생활을 하면서 이 대표 역시 보통 직장인들과 같은 고민을 숱하게 했다고 한다.

"규모가 큰 조직은 어쩔 수 없이 조직 문화 자체가 경직적으로 변해요. 대규모 조직은 본질적으로 혁신을 이루기가 쉽지 않죠. 그냥 조직원 한 사람의 입장에서 일 하나를 처리할 때도 거쳐야 하는 단계가 많잖아요.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엔가 내가 누구를 위해 이 일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회의감이 들기 시작해요. '이대로 괜찮을까' 하는 질문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되고요. 그런데 그러다 보면 어느새 한 달의 시간이 흐르고 월급날이 되고 그 고민을 잊어요. 그러다 보면 또 한 달이 가고…(웃음)."

퇴직 계기는 의외의 상황에서 비롯됐다. 바로 시할아버지의 죽음이었다.

"그전에도 문상은 가봤지만 가족이나 친지 상을 치러본 적은 없었거든요. 그런데 시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난생처음 상복을 입게 된 거예요. 그때 제가 죽을 때를 생각해봤어요. 직장에서 최고로 성공하면 임원이 될 거고 재테크를 잘해놓았다면 은퇴 후에도 200만~300만원을 받으며 살다가 안 아프고 죽을 수 있을 거예요.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니까 너무 후회할 것 같더라고요. 새로운 경험에 대한 목마름이 크다는 것을 그때 확실히 느꼈어요."

정보기술(IT) 관련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남편은 '하고 싶은 것을 했으면 좋겠다'며 이 대표의 결심에 흔쾌히 동의했다. 하지만 부모님의 반대가 극심했다. 어머니에게 장문의 '카톡' 메시지를 받기도 했다. '백수 하려고 그 어려운 공부하고 대학 가고 은행 들어갔느냐. 네가 아직도 20대인 줄 아느냐. 그만두면 대체 뭘 할 계획이냐. 여기서 직장 그만두면 끝이다. 쓸데없는 생각 말고 애나 낳으라'는 것이 메시지의 요지였다. 이 대표가 어머니에게 보낸 답장은 단 두 줄. '먹고는 사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아이는 내년에 낳을게요.' 이 대표의 백수 생활은 그렇게 시작됐다. 그리고 1년여가 지난 현재 그는 당시 자신이 말한 대로 잘 먹고살고 있고 약속대로 얼마 전 아이도 출산했다.

"회사를 그만둬도 굶어 죽지 않을 자신이 있었어요. 요새 굶어 죽기 쉽지 않아요. 1년에 한 번은 해외여행 가고 트렌드에 맞는 옷차림을 챙기는 등 남들과 같은 생활을 계속하겠다고 하면 힘들 수도 있겠지만 전 그런 것에 별로 관심이 없어요."

지난 1년간 8퍼센트가 모집한 투자자는 4,400명, 채권은 총 518개다. 대출 실행 대상 가운데 중소기업 근로자와 소상공인이 59%, 비정규직 및 사업자가 46%에 이른다. 신생 기업이지만 기존 금융권에서 소외된 소비자들을 흡수하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 것이 이 때문이다.

이 대표는 "지난 한 해가 P2P 대출 영업이 가능한지를 시험하는 기간이었다면 올해는 본격적인 성장을 시작할 때"라며 "1,000억원대 실적을 내는 것이 올해 목표"라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P2P 대출을 두고 어떤 분들은 그냥 인터넷 대출이 아니냐고 하기도 하지만 저는 P2P 대출이 장기적으로 금융업의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는 모델이라고 생각해요. 투자 고객과 대출 고객, 그리고 우리 회사 등 3개 주체가 모두 윈윈하는 것이 경영 목표입니다."

사진=권욱 기자

She is…

△1983년 서울 △2002년 포항공대 수학과 △2006년 우리은행 입행

△2014년 11월 8퍼센트 창업



"사장 의견도 직원에 까이는걸요"… 격없는 토론 분위기

이효진 대표가 말하는 '8퍼센트'일상은

박윤선 기자 sepys@sed.co.kr

"창업인의 현실요? '항상 일하는 중'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주중이나 주말·출퇴근의 개념이 사실 없거든요." 이효진 8퍼센트 대표는 인터뷰 도중에도 노트북에서 손을 떼지 못했다. 틈틈이 e메일이나 메신저를 확인하면서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월화수목금금금'이라는 스타트업의 일상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직원 17명이 함께 꾸려가는 8퍼센트의 하루는 오전10시 스크럼 회의와 함께 시작된다. 전체 직원이 사무실에 동그랗게 둘러서 어제 한 일은 무엇인지, 잘 처리되지 못한 일은 무엇인지, 오늘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등에 대해 10분 정도 이야기를 나눈다. 이때 직원들은 사무실 입구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알록달록한 색깔의 접착식 메모지를 사용한다. 해야 할 일이 적혀 있는 메모지들은 일이 마무리되면 '완료' 칸으로 옮겨 붙일 수 있다. "이게 은근히 떼서 옮기는 재미가 있어요. 성취감도 주고요. 메모지 하나를 완료 칸으로 옮기면 다들 박수를 치고 좋아해요."

출근 시간은 오전10시, 퇴근은 오후8시다. 출근 시간에 1분이라도 늦거나 8시 전 조퇴할 경우 메신저로 해당 사실을 전 직원에게 공지해야 한다. 이 외에 다른 페널티나 규칙은 없다. "아무래도 사업 초기이다 보니 '칼퇴' 분위기는 아닙니다. 정시 퇴근을 원한다면 스타트업이 아니라 공무원을 해야죠. 하지만 지속 가능하려면 잘 쉬고 재충전하는 것도 정말 중요해요. 일을 마라톤이라고 생각해야지 그렇지 않고 너무 빠르게 달리면 금방 지치거든요. 또 저는 아이를 키우다 보니 주말에는 아이랑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해요."

미국 렌딩클럽 방문 당시 직원과 최고경영자(CEO)가 격의 없이 대하는 모습을 보며 '정보기술(IT) 회사 같은 금융회사'를 구상했다는 이 대표의 말처럼 8퍼센트에서는 늘 자유로운 토론이 오간다. 이 대표는 "자유로운 분위기가 중요한 것은 의사소통과 관련된 부분이기 때문"이라며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말할 수 있어야 일이 제대로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회사 대표라고 해 직원들이 토론할 때 봐주는 법은 없다"며 "대표가 의견을 내도 그것은 아닌 것 같다며 곧바로 지적을 한다. 내가 낸 의견의 90% 정도는 직원들에게 '까인다'"며 웃었다.

이 대표는 고객들이 기존 금융기관에서는 못했던 일을 해줬다며 고마워하고 응원해줄 때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이 대표는 보람을 느꼈던 사례 중 하나로 대학 시절 저축은행 대출을 바탕으로 창업에 나섰다가 은행권에 거절당해 힘들어하던 고객을 지원한 일을 꼽았다. 이 대표는 "저축은행 대출 금리가 높아 원금은 못 갚고 이자만 꼬박꼬박 갚던 중 금융 비용 부담을 덜기 위해 은행에 대출을 받으러 갔더니 저축은행 대출이 있다며 대출을 안 해줬다고 한다"며 "우리가 9%대로 저축은행 대출을 대환해줬고 고객은 무거운 짐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빵집 대출을 지원했다가 직원들이 빵을 실컷 먹은 에피소드도 전했다. 이 대표는 "천호동에 있는 빵집에 대출을 해줬는데 대출받은 고객이 투자자들에게 고마움의 표시로 빵 쿠폰을 많이 나눠주셨다"며 "그런데 한 투자자가 쿠폰으로 빵을 교환한 후 우리에게 가져다줬다"고 전했다.

이 대표는 "요새 많은 사람이 창업을 꿈꾸는데 직장 생활과 창업 중 어느 쪽이 나은지에 대한 정답은 없다"며 "어차피 쉬운 길은 없기 때문에 단지 직장 생활이 싫다는 이유로 창업을 해서는 안 되고 직장 생활이든 창업이든 어렵더라도 본인에게 맞는 일을 선택하는 것이 옳은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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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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