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에서 월세로 갈아탄 세입자들이 손에 쥐게 된 목돈(전세보증금)을 굴리기 위해 고안된 '전세보증금 투자풀'을 두고 논란이 커지고 있다. 세입자가 반환받은 전세보증금을 안전하게 운영해 월세 부담을 줄여주겠다는 취지는 좋지만 펀드 모집부터 실제 운용까지 현실성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든다는 지적이다.
전세금 투자풀이 성공적으로 구성돼도 문제가 있다. 원금 보장에 4% 수익률, 세제혜택까지 주어진다면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를 뛰어넘는 '재테크의 블랙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회사 입장에서 볼 때 다른 금융상품들은 경쟁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수요가 얼마나 될지가 관건이다. 안정적으로 운용하면서 수익률을 내려면 적어도 10조원은 돼야 한다는 게 금융위원회의 주장이다. 주택금융공사가 추산한 전세자금 규모는 약 350조원. 금융위는 이 중 월세 전환 물량을 제외하고 300조원이 전세보증금으로 묶여 있다고 보고 매년 5%씩 월세로 전환한다고 가정했다. 향후 1년간 반환될 것으로 추정한 전세보증금 15조원 중 66%가 전세금 투자펀드에 들어오면 10조원이 된다. 그러나 정부가 전세금 투자풀의 '가입 대상'을 어떻게 한정할지에 따라 자금 유입 속도는 기대에 못 미칠 수 있다. 전세자금대출, 향후 금리 상승 추세 등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변수다.
② 원금 안까먹고 4% 수익… 안전자산 투자만으론 어려워
원금을 까먹지 않고 4% 안팎의 수익을 올리기도 쉽지 않다. 정부는 자산운용사의 시딩투자(설정액의 5%)를 손실준비금으로 활용하고 보증을 통해 원금 손실을 최소화하겠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미국이 단계적으로 기준금리를 인상할 경우 채권투자수익률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펀드평가사 제로인에 따르면 국채와 우량 회사채 등에 투자하는 채권형 펀드의 지난해 연간 수익률은 2.68%다. 한 대형 자산운용사 사장은 "목표수익률과 보장수익률이 투자에서 가지는 의미는 천지 차이"라며 "안전자산 투자만으로 4% 가까운 수익률을 올리겠다는 기대는 접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③ 대출 받은 사람엔 그림의 떡… "돈 있는 세입자만 챙기나"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세금 투자풀의 최대 수혜자는 대출금이 아닌 본인 자금으로 전세금을 댄 사람이다. 바꿔 말하면 이들은 수억원에 달하는 금융자산을 가진 사람들이다. 정부는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는 정책은 있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전세금 대부분을 은행에서 빌린 사람은 불만이 클 수밖에 없다. 서울 여의도에 거주하는 직장인 A(36)씨는 "안심전환대출, ISA에 이어 전세금 투자펀드까지 결국 먹고살 만한 사람들만 혜택을 받는 정책 아니냐"고 푸념했다.
④ "참여생각 없는데… " 자산운용사 또 팔 비틀릴까 걱정
정부는 자산운용사들이 5%의 시딩투자를 하면 책임감을 가지고 펀드를 운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펀드운용보수와는 별도로 배당을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산운용사들은 업계의 현실을 무시한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또 다른 대형 자산운용사 대표는 "5% 규모의 시딩투자는 2%의 기본보수에 20%의 성과보수를 책정하는 벤처 업계에서나 가능한 얘기"라며 "자발적으로 전세금 투자풀에 참여할 자산운용사는 한 군데도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⑤ "수익성 떨어지는 뉴스테이에 왜 투자하나" 불만까지
전세금 투자펀드의 일정 부분은 뉴스테이 등 임대사업과 도시·주택기반시설 조성에 투자한다. 서민·중산층의 주거안정에 기여하자는 차원이다. 특히 정부는 뉴스테이 사업이 수요가 충분한 만큼 수익성도 높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를 두고 한 자산운용사의 실물투자책임자(CIO)는 "운용 업계에서 볼 때 뉴스테이 사업은 투자 매력이 없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라며 "일단 택지 조성 등 기간 자체가 긴 데 따라 수익을 확정하지 못한다는 위험이 크고 환매에도 대응하기 힘들기 때문"이라고 반박했다. /임세원·조민규기자 why@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