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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白手)'를 사전에서 찾으면 '백수건달(白手乾達)'의 줄임말로 나온다. 백수건달은 '돈 한 푼 없이 빈둥거리며 놀고먹는 건달'이다. 전통시대에 '빈둥거림'을 부정적으로 본 것을 반영한 말일 게다.
현대에 들어와서는 자본주의 사회의 잉여인간을 의미한다. 일할 능력과 의지가 있음에도 마땅한 '직업'이 없는 사람이다.
어떻게 보면 현대사회에서 우리는 필연적으로 인생의 어느 시기를 백수로 보낸다. 대개의 청춘들은 학교졸업 후 청년백수가 된다. 용케 취업했더라도 정리해고나 명예퇴직으로 중년백수가 된다. 노년의 백수는 말할 것도 없다. 백수인생은 피할 수가 없는 셈이다. 그렇다고 백수의 시간을 인생의 암흑기로 보낼 것인가.
새 책 '18세기 조선의 백수 지성 탐사'는 이 물음으로 출발한다. 저자는 "백수로서 충만하고 활기차게 살고자 한다면 그렇게 살 수 있는 법을 단련해야 한다. 즐겁게 '살고' '놀았던' 선배 백수들에 대한 벤치마킹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말한다.
저자가 말하는 선배 백수는 18세기 조선의 농암 김창협, 성호 이익, 혜환 이용휴, 담헌 홍대용 등 4명이다.
농암은 18세기 노론 지식인의 정신적 지주로서 새로운 학문의 물꼬를 텄고, 성호는 '성호사설'에서 보여지듯 재야의 경세가로서 사회개혁의 기수가 됐다. 혜환은 파격적인 글쓰기의 선구자였으며 담헌은 천체과학자이자 자유로운 여행객으로서 세계에 대한 인식을 바꾸었다.
물론 그들이 완전한 자발적 백수는 아니다. 당쟁의 와중에서 희생됐거나 신분차별로 관직에 오를 수 없었다. 현대의 '흙수저' 백수와 과거의 '금수저' 백수를 어떻게 같은 레벨에서 비교하느냐는 질문에 저자의 대답은 이렇다. "지금 대기업 취직을 못해서 백수신세라면 과거에는 관직에 오르지 못하면 백수였다. 백수 양반은 개인적인 좌절감은 말할 것도 없고 사회적으로도 용납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18세기 백수 4인방에 주목하는 것은 이들이 당대인들과 다르게 세상에 대응하고 역사 발전의 족적을 남겼기 때문이다. 1만7,000원. /최수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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