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배임죄 공포에 기업활동 위축돼선 안돼"

■ 법무부 연구용역 결과 공개

'경영판단의 원칙' 도입엔 이견

"널뛰기 판결이 기소 부추겨 성실 기업활동땐 면책 도입을"

"이미 배임죄 해석론에 반영… 직접규정으로 제한할 필요없어"


A저축은행은 지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전국에 수십만 가구의 미분양 아파트가 발생하자 이를 인수해 관리한 뒤 매각하는 사업모델을 개발했다. 애초 야심찬 계획과 달리 회사는 막대한 손실을 입었고 회사 경영진들은 배임혐의로 기소되는 처지에 놓였다. 이들은 경영판단임을 주장했지만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시장 조사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고 유사 사례연구가 없다는 이유였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을 개발할 때 시장조사가 가능했겠는가"라며 "창조적 영업모델에 유사사례가 있을 수 없는데 실패했다고 배임죄를 묻는다면 창조경제는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기업인의 경영 판단이 들어맞지 않아 손실을 입었을 때 배임죄를 적용하는 게 과연 정당할까. 법무부가 이에 착안해 연구용역을 실시했다. 법무부는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배임죄에 대한 검찰의 사건처리 기준을 마련하고 법제 개정 등을 검토할 예정이다.

1일 법무부와 법조계에 따르면 법무부 산하 법무연수원은 배임죄 성립 범위와 관련해 지난해 9월 발주한 2건의 연구 용역 결과를 최근 공개했다. 연구주제는 배임죄 판단 기준에 '경영판단의 원칙'을 도입해야 하는 지 여부이다. 경영판단 원칙이란 경영진이 성실하고 공정하게 경영상 판단을 통해 기업활동을 했다면 손해를 발생시켰다 하더라도 책임을 면하도록 하는 법리. 미국이 도입하고 있으며 일본도 배임죄 요건을 '고의성이 있는 경우'로 한정해 적용하고 있다.

◇배임이 경영정상화 노력 회피의 구실로 작용= 법무부 연구결과는 경영상의 판단을 법에 명문화해야 한다는 주장과 그럴 필요가 없다는 주장으로 엇갈렸다. 먼저 경영판단 원칙을 도입하자고 주장하는 최 교수는 현재 배임죄 적용에 따른 문제점을 실사례로 설명했다.

지난 2013년 시중은행들은 재무구조개선(워크아웃) 중이던 쌍용건설의 채무재조정과 신규 자금 지원을 논의했다. 같은 시기 비협약 채권자였던 군인공제회는 정상화 동참을 거부하고 쌍용건설의 공사현장에 가압류를 신청했다. 결국 쌍용건설은 워크아웃에 실패해 그 해 말 회생절차에 돌입했다. 당시 군인공제회가 협의에 불참하면서 내세웠던 명분이 바로 '배임죄'였다. 채무를 재조정하면 배임에 걸린다는 논리였다.

최 교수는 "배임죄를 경영정상화 참여 요구에 대한 회피 수단으로 활용하는 행태가 빈번하다"며 "채권회수 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따져볼 때 채권단이 합리적으로 판단했음에도 불구하고 배임 여부에 대한 자의적 판단이 원활한 구조조정을 저해하기도 한다"고 분석했다.

◇오락가락 판결이 배임 기소 부추겨= 그렇다면 기업들이 자의적 판단을 내릴 수 밖에 없는 요인은 뭘까. 보고서는 배임죄에 대한 널뛰기 판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부산저축은행 경영진은 임직원 명의로 177억원을 대출받아 골프장 건설사업을 추진했다가 실패해 배임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은 배임 혐의를 인정했지만 항소심은 경영판단 원칙을 적용해 무죄로 선고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업무상 배임에서 고의를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한 원심은 위법하다"며 판단을 뒤집었다.

반대로 대법원에서 무죄로 뒤집힌 사례도 있다. 대법원은 2013년 다른 회사의 대출에 연대보증을 해준 기업의 임원들에게 "대출금 사용처를 통제·감독하는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점을 주된 이유로 임무위배 행위로 판단하거나 배임의 고의가 있었다고 볼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앞서 항소심에서는 "대출받은 업체가 대출금을 다른 용도로 유용하는 것을 막지 않는 행위는 합리적인 경영판단 범주가 아니다"라며 유죄로 판단했다.

◇경영판단 명문화는 필수 또는 사족= 최 교수는 "현재 상황으로는 어떤 기업인도 배임죄로부터 완전하게 자유롭고 편안한 마음으로 경영할 수 없다"며 "경영판단의 원칙을 상법에 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더불어 "법률 개정보다 법원 해석론의 정착을 기다리자는 주장은 판례를 쌓기 위해 수십년의 시간이 필요하므로 현실성 없는 주장"이라고 강조하면서 "입법으로 해결해야 한다"며 조속한 처리를 촉구했다. 반면 강동범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경영판단 원칙을 형법에 명문화하자는 의견이 있지만 이러한 의도는 이미 배임죄의 해석론에 반영돼 있다"며 "직접적으로 형법에 도입해 배임죄의 성립을 제한할 필요는 없다"고 주장했다.

산업계와 학계 등은 법무부가 이러한 주제를 용역 발주했다는 점 자체에 주목하고 있다. 법무부 관계자는 "최근 법원에서 배임죄를 엄격하게 적용하고 배임 법리에 대한 논쟁도 많아 심층적 연구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며 "연구 자료를 축적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김흥록·서민준기자 rok@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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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흥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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