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시각] 사장님, 회식 예고제 안될까요?


한 공기업 사장이 지역본부 격려차 예고 없이 '하방'을 하면서 그날 저녁 회식을 잡았다. 편하게 저녁을 먹으면서 지방에 근무하는 직원들과의 '스킨십'을 강화하려는 나름대로 좋은 취지였다. 그러나 이튿날 회사 '블라인드'에는 젊은 직원들을 중심으로 불만이 올라왔다(블라인드란 특정 회사 직원들의 익명게시판 서비스를 제공하는 인터넷사이트다). 예고 없는 회식에 대한 문제 제기였다. 퇴근 후는 엄연히 개인 시간이고 나름의 일정이 있는데 불쑥 회식을 잡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것이 직원의 주장이다. 물론 그 직원이 "사장님, 저는 오늘 개인적인 일이 있어 아쉽지만 다음에 함께하겠습니다"라고 용감하게 돌아설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회생활 좀 해본 한국의 직장인들은 안다. 그 용기가 어떤 대가를 치르게 할지를….

예고 없는 회식, 소모적인 회의, 상사 눈치 때문에 늦어지는 퇴근, 장식이 내용보다 중요한 보고서 등 후진적인 한국 기업문화에 대해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스트레스와 문제의식을 갖고 있을 것이다.

한국은 장시간 노동에도 생산성은 꼴찌라는 통계는 해가 가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한국이 33개 회원국 중 28위에 그쳤다고 발표했다. 지난 2010년 23위였던 것에 비하면 오히려 뒷걸음질이다. 노동생산성은 생산된 부가가치를 총 투입 노동시간으로 나눠 산출한다. 흔히 착각하듯 낮은 노동생산성이 노동자의 저성과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OECD도 "노동생산성이 개인의 생산성으로 흔히 잘못 해석된다"며 오역을 경계했다. 대신 "노동과 다른 생산 투입요소들이 얼마나 효율적으로 결합하느냐에 따라 노동생산성이 결정된다"며 "노동생산성은 결국 그 나라 근로자의 삶의 질을 나타내는 지표"라고 설명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최근 재미있는 캠페인을 준비하고 있다. 습관적 야근, 쓸데없이 긴 회의, 보여주기식 보고 등 비효율적이고 비합리적으로 일하는 문화를 바꾸자는 것이다. 문제의식은 이렇다. 장시간 근로 관행, 상명하복의 권위적인 조직문화, 실력보다는 충성심이나 연줄 우선의 직장문화에 대해 직장인들이 직장(=기업)에 좋은 감정을 가질 리 만무하다는 것. 상당수의 국민이 일상에서 체감하는 기업문화부터 건강해져야 반기업 정서도 개선된다는 취지다.

전근대적 근로문화가 반기업 정서의 주된 원인이라는 데는 동의하지 않지만 대한상의의 문제 제기는 대환영이다. 결국 노동생산성(=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분자인 부가가치 산출을 늘리거나 분모인 투입 노동시간을 줄여야 한다. 물론 둘 다 쉽지는 않다. 그동안 분모에만 신경 썼다면 이제 분모를 줄이기 위한 노력도 필요한 시점이다.

/이혜진 산업부 차장 hasim@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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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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