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구텐베르크(Johann Gutenberg). 인쇄업자다. 서구에서 그에 대한 평가는 생각 이상으로 높다. 뉴 밀레니엄을 앞둔 지난 1999년 ‘지난 1,000년간 인류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을 묻는 각종 여론 조사에서 콜럼버스와 더불어 1,2위를 차지했던 사람이 구텐베르크다. 금속활자에 의한 인쇄, 즉 인쇄 복제기술의 출현은 ‘책의 탈 경전화’와 함께 근대적 사유와 삶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종교 이데올로기와 기득권도 무너졌다. 신세계로 향하는 뱃길까지 열렸다. 동서양의 문명 수준이 역전되고 과학이 꽃피웠다.
서구 세계에 금속활자 인쇄술을 선사한 구텐베르크는 1398년께 독일 마인츠시에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나 보석 세공과 유리 가공업에 종사하며 대박을 꿈꿨다. 금속활자와 번지지 않는 잉크에 대한 기술을 익힌 것도 큰 돈을 벌 수 있는 모험(벤처) 사업의 아이템으로 봤기 때문이다. 첫 작품은 난산 끝에 나왔다. 대ㆍ소문자와 약어ㆍ복합문자 등 290개종의 활자체와 10만여개의 활자가 만들었을 때 50대 중반 나이를 넘겼다.
1455년 발간된 금속활자본 라틴어 성서의 가격은 800플로린. 하위성직자의 3년치 급여와 맞먹었지만 베끼는 데 5년에서 20년이 걸리는 필사본보다는 훨씬 쌌다. 성서의 성공적인 인쇄에도 그는 당초 목적인 대박을 터뜨리지 못했다. 달력과 문법 서적, 심지어 면죄부까지 찍어냈지만 역부족. 재정난과 소송까지 당해 인쇄기술과 장비를 자본주인 푸스트에게 넘긴 구텐베르크는 교회의 보호 속에 연명하며 1468년 2월 3일 사망했다. 굿바이, 구텐베르크.
서구의 활자 혁명은 구텐베르크에서 끝나지 않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 뒤를 쫓았다. 구텐베르크가 성서 180부(140부는 종이, 40부는 양피지)를 찍은 지 36년이 지난 1492년, 초판을 1,000부 이상 찍는 책이 나왔다. 구텐베르크가 꿈꿨던 대박을 이룬 주인공은 독일 출판업자 안톤 코베르거. 창조의 순간부터 1490년까지 역사를 담은 이 책은 일종의 세계사 그림책인 ‘뉘른베르크 연대기’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금속활자를 서구 전역으로 퍼뜨렸다.
1500년께 유럽의 260개 도시에서 금속 활자로 판 인쇄기가 돌아갔다. 지식혁명이 시작된 것이다. 종교개혁을 촉발시킨 마틴 루터의 ‘95개조 반박문’이 불과 2주 만에 전유럽에 확산된 것도 인쇄술 덕분이다. 성서의 독일어ㆍ영어 번역 활자본이 나오면서 문맹과 맹목적인 복종이 사라지고 지식독점구조가 깨졌다. 세계의 학계가 ‘직지심체요절(1377년)’을 최초의 금속활자로 인정하면서도 의미를 두지 않는 것은 구텐베르크 인쇄술의 이런 파급효과 때문이다.
인쇄기 24대를 사들이고 수백명의 식자공과 교정자, 삽화가와 제본공을 고용하며 출판 기업화를 도모한 코베르거와 더불어 금속활자의 대중화와 상업화를 이끈 또 한 사람이 있다. 알두스(Aldus Manutius). 30대 중반인 1494년, 베네치아에 ‘알디네(Aldine) 출판사’를 차린 그는 운도 좋았다. 초기작인 ‘로마의 군제’는 1500년까지 99쇄를 거듭하며 부와 명예를 안겨줬다.
알디네출판사 간행물은 무엇보다 품질이 뛰어났다. 오스만 튀르크에 점령당한 콘스탄티노플에서 망명한 학자와 전문가들에게 실무를 맡긴 덕이다. 에라스무스가 ‘우신예찬’과 ‘대화록’을 구상하고 자료를 모은 것도 알두스의 저택에 머물던 시절이다. 알두스는 책 크기를 행낭에 들어갈 정도로 맞추고 읽기 쉬운 알두스체(이탤릭체)도 만들어냈다. 문장의 마침표와 인용부호도 처음 선보였다. 규격화한 책자와 아름다운 서체, 마침표 등의 도입은 지식의 전파속도를 배증시키고 르네상스의 꽃을 피웠다.
구텐베르크 이후 350여간 이어져 온 목제 인쇄기를 대체할 철제인쇄기를 처음 도입한 영국 귀족 스탠호프, 인쇄기에 증기 엔진을 달아 더욱 값싼 책과 신문을 대량으로 보급한 쾨니히도 인쇄혁명의 후반부를 장식했다. 니콜 하워드의 ‘책, 문명과 지식의 진화사’에 따르면 인쇄와 출판의 역사는 인류가 수천년 동안 변치 않고 간직해온 진보에 대한 희망과 열정의 기록이다. 구텐베르크나 코베르거, 알두스, 스탠호프와 쾨니히도 하나의 점일 뿐이다. 무수히 많은 조상들의 땀과 정성이 오늘날의 책을 만들고 신문을 엮었다는 얘기다.
물론 비판론이 없지 않다. 책과 문자가 인간에 대한 족쇄라는 것이다. 마셜 맥루한은 명저 ‘미디어의 이해(1964년)’에서 시각과 청각·후각·미각·촉각 등 오감을 동시에 사용하는 복수감각형이던 인간은 문자의 등장 이후 시각에만 의존해 종합능력이 감퇴했다고 주장한다. 맥루한은 구텐베르크 인쇄술 이후 더욱더 떨어진 인간의 지각능력이 텔레비전으로 대표되는 전자문명 덕분에 되살아날 것이라고 예언했다. 신미디어와 활자매체의 등장은 과연 잊혀졌던 인간의 감각을 다시 끄집어낼 수 있을까.
소설가이자 기호학자, 철학자인 움베르토 에코는 대담집 ‘책의 우주’를 통해 맥루한의 시각을 전면 부정한다. ‘책은 수저나 망치, 가위, 바퀴와 같다. 일단 한번 발명되고 나면 더 나은 것을 만들어낼 수 없는 것들처럼 책은 더 이상 발전이 불가능할 만큼 완전하다.’ 인쇄매체는 결코 죽지 않는다는 얘기다. 수메르의 점토판에서 시작해 파피루스·죽간·양피지·종이로 변해온 활자매체는 에코의 생각처럼 영원할지 모르겠지만 확실한 게 두 가지 있다.
첫째, 활자에서 멀어진 신세대 엄지족들의 지식습득 능력은 갈수록 퇴화한다는 사실이다. 책을 많이 읽던 아이가 컴퓨터 게임에 매달리며 학습능력이 급속히 떨어지는 사례가 어디 한둘인가. 두 번째는 책을 많이 읽고 인쇄출판업이 성행하는 나라에서 경제 성장이 이뤄졌다는 점이다. 인쇄술의 혜택을 입게 된 유럽 각국 중에서도 왜 영국이 산업혁명의 주인공이 되고 세계를 지배하게 됐을까. 책과 관련된 모든 기술이 영국으로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역사상 가장 부유한 국가였던 15~17세기 네덜란드의 풍요도 책으로 설명될 수 있다. 출판과 인쇄에 ‘종교의 간섭이나 검열이 없었던 유일한 나라’인 네덜란드에는 자연스레 사람과 기술이 몰렸다. 미국이 20세기 이후 세계 최강국으로 부상한 것도 마찬가지다. 인쇄와 출판이 가장 번성한 나라였으니까. 나가미네 시게토시가 저술한 ‘독서국민의 탄생’에 따르면 서구를 순식간에 따라잡은 일본의 저력도 국민들의 독서열에서 나왔다.
한국의 현실은 어떠한가. ‘책 안 읽는 대한민국’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 독서량이 가장 적다. 이러고도 미래를 기약할 수 있을까. 구텐베르크보다 78년 앞섰다는 금속활자 ‘직지심체요절’의 나라라는 사실이 무색하다./권홍우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hongw@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