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김나영 기자의 1일1식(識)] <260> 진짜 고수를 만나고 싶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들여다보면 학자들이 온라인 공간을 빌어 재미있는 토론을 전개하는 광경을 종종 목격할 수 있다. 가장 흥미로운 주제는 경제 분석이다. 내 전공이 경영학이었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어려운 계량적 용어나 이론적 개념을 들이밀지 않고도 실물 경제에 대해 명쾌하고 날카롭게 해석하는 사람들의 글이 좋다. 특정 정당이나 세력의 편을 들지 않고 중심을 잡는 사람들도 있고, 더 이상 연구하지 않는 선배 학자들의 논리를 비판하는 소장 전문가들도 볼 수 있다. 한 일간지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특집으로 젊은 경제학자들과의 인터뷰를 다루고 있다. 경제라고 하면 막연히 답답한 수학 공식과 통계적 분석에 치우친 학문일 것이라는 편견을 갖기 쉬우나, SNS나 신문을 통해 경제 전문가들의 명쾌한 설명을 접하다 보면 그 모든 것들도 결국 현실을 위한 처방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고무적인 일이다. 특히 SNS의 경우엔 포맷도 자유롭고 공감을 표현하는 방식도 분방하다. 어느 영화 속 주인공인 언론인이 ‘키보드 워리어들이 할일 없이 씹어대는 곳’이라고 비하했던 것과는 정 다른 면모도 있다.

얼마 전 전문가들이 쓴 글을 관찰하고 있다가 재미있는 논평 하나가 눈에 띄었다. 소수를 위한 경제학은 죽었다며 전직 농림부 장관이 쓴 글에 대해 젊은 경제학자들이 ‘업데이트 되지 않은 지식으로 펼친 주장’이라며 날카로운 비판을 한 것이다.


일단 퇴직 장관의 논변은 이러했다. 전통 경제학은 인간이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가정했고, 가공의 수리 모델에 입각해 경제 현상을 설명하는 경향이 강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의 비합리적 행동, 또는 부분적으로만 합리적인 행동에 대해서는 설명력이 약하다는 게 요지였다. 전직 장관은 자신이 과거에 추진하던 역점 사업이 눈에 아른거렸는지 사회적 경제를 토대로 탐욕스러운 신자유주의의 고리를 끊고 곡학아세(曲學阿世)하는 경제학자들도 계도(啓導)시키자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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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역시 젊은 경제학자들과 마찬가지로 그의 주장에 동조하기 힘들었다. 의사결정을 내리기에 충분한 정보와 자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행동을 답습하는 인간, 남을 따라 하는 인간 등에 대해 최근 경제학이 충분히 연구하고 있음을 들어 봤기 때문이다. 그게 바로 ‘경제심리학’ 또는 ‘행동경제학’ 아니던가.

대학에서 열심히 연구하는 소장 학자들의 입장에서는 나이 든 선배의 과단성이 못마땅할 법하다. 다양한 최신 연구들이 과거 경제학이 설명하지 못하는 바를 보완하기 위해 실험이나 통계 분석 등을 바탕으로 진행되고 있으니 하는 말이다. 특히 전직 장관이 주장한 사회적 경제 논리는 정치적인 처방일 수는 있으되 학문적으로는 뿌리가 약한 담론이다. 자칫하다가는 왜곡된 자원 배분이 될 수도 있다. 이런 갑론을박이 진행되는 가운데 어느 비판적 사회 운동가가 끼어들며 실시간 논쟁을 펴나가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나도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는 사람이었다. 결국 긴 시간 동안 ‘키 배틀’이 이어졌다. 옛날 다음 아고라나 카페에서 봤을 법한 광경이었다.

일련의 토론이 어떻게 끝을 맺었는지는 일일이 댓글을 추적해 보지 않아 잘 모르겠다. 그러나 젊은 학자들의 의기양양한 논리를 보며 십여 년 전 ‘양심의 목소리’를 냈던 소장 생명 과학자들을 떠올렸다. 체세포 줄기세포 연구 조작 논란을 제기한, 용기 있는 생명과학도들 말이다. 그들의 과감한 내부고발과 학문적 통찰이 없었더라면, 우리나라 과학기술계 전체가 국제 사회에서 두고두고 웃음거리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때의 문제와 내가 봤던 토론의 결은 다르지만, 선학(先學)에 대해 구체적이고 논리적인 실명 비판을 할 줄 아는 학계의 분위기가 새삼 소중하게 느껴진다. 힘 있는 이들 가운데 사기꾼이 얼마나 많은가. 알량한 전문 용어 몇 마디로 지도자와 국민을 속이는 ‘석학’들은 또 얼마나 설쳐대고 있는가. 총선 예비후보들 가운데는 국민을 우울하게 만드는 이들이 적지 않다. 총선을 앞두고 짝퉁들이 판치고 정작 고수들은 강호(江湖)에 숨어 있으니 그저 아쉬울 따름이다.

김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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