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 긴 호흡 대북·외교 정책 요구된다

개성공단·사드로 연일 새 갈등… '北 로켓 발사' 핵심의제 잊혀

당장 응징하려는 조바심 버리고 전략적 판단으로 장기 계획 짜야

정영철 교수

새해 벽두부터 한반도 정세가 심상치 않다. 북한의 수소탄 시험과 로켓(미사일) 발사로 발생한 한반도의 격랑이 개성공단 폐쇄와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문제로 확대되면서 또 다른 갈등의 불씨가 되고 있다. 이러다가는 미국과 중국의 힘겨루기 한복판에서 우리만 희생당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그런데 더 걱정스러운 것은 우리 정부의 대응이다. 사실 지금의 정국에서 정부가 보여준 태도는 외교 실종을 넘어 외교 참사로까지 이야기되고 있다.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한 단견적 결정으로 어느 하나 주변국의 속 시원한 지지를 얻어내지 못하고 있고 내부적으로 갈등만 만들어내고 있다.

사태가 발생하자 우리 정부는 대북 확성기 확대 운영, 5자회담 주장, 사드 배치, 개성공단 중단이라는 고강도 압박으로 일관했다. 영국 외무장관조차 '북한의 미끼를 무는 것'이라고 비판했던 대북 확성기 방송, 중국의 즉각적 거부와 비판을 당해야 했던 5자회담 제안, 그리고 마침내 동북아시아의 새로운 군비 경쟁을 촉발할 것으로 예상되는 사드 배치에 이어 현재 우리 사회 내부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개성공단 전면 중단까지 어느 것 하나 신중하고 전략적인 판단이 뒷받침되지 못하고 있다.

북한에 대한 강력한 응징 의지를 보여주는 것과 신중한 정책 결정은 전혀 다른 문제다. 과거 2001년 '9·11 테러'를 회상해보자. 미국 정부는 놀라우리만치 침착했고 신중에 신중을 거듭한 끝에 자신들의 장기적 플랜에 따른 정책을 결정하고 전격적으로 실행했다. 내용의 옳고 그름을 떠나 우리 정부가 심각하게 고민해봐야 할 지점이다. 현재 우리 정부가 보여주고 있는 모습은 응징 의지가 넘쳐흘러 합리적 판단을 잠시 내려놓고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스럽다. 통일부 장관의 오락가락 말 바꾸기가 그것을 명확히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더 큰 문제는 북한의 수소탄 시험과 로켓(미사일) 발사가 이제 핵심 의제에서 희미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오히려 지금의 정국은 개성공단 폐쇄와 사드 배치를 놓고 갈등이 벌어지고 있다. 이렇게 된 데에는 우리 정부의 역할이 지대했다. 한순간 의제를 바꿔버렸으니 원인에 대한 처방보다는 처방안 자체가 더 큰 논란거리가 돼버린 것이다. 그리고 이로 인해 미국과 중국의 힘겨루기가 한반도를 사이에 두고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으니 더 큰 짐을 스스로 떠안게 됐다. 수술을 앞둔 환자를 앞에 두고 정작 수술해야 할 의사가 먼저 수술대에 눕는 격이 아닌가.

이렇게 되기까지 도대체 무엇이 문제였을까. 신중하지 못한 판단을 넘어 긴 호흡의 정책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또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나 '통일대박론'이 '무엇'을 할지만 있었지 '어떻게' 할지는 전혀 고민하지 못했던 데 따른 당연한 결과이기도 하다. 어쩌면 임기 5년의 단임제 정부에서 짧은 기간 승부를 봐야 하는 구조적 문제로 치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안보와 관련된 의제에서 단기적 정책은 위험스럽기 짝이 없다. 장기적 플랜과 그에 따른 단기적 전술이 결합돼야만 올바른 정책이 가능할 것이다. 현재 우리 정부가 보여주는 모습은 장기적 플랜은 없고 단기적 전술을 마치 전략처럼 사고하는 듯이 보인다. 이래서는 앞으로도 핵심을 찌르는 현명한 정책이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또 하나 우려스러운 점은 현재의 정책은 지금 당장 '끝장'을 보려는 조바심, 그리고 '북한 붕괴' 혹은 '체제 전환'을 상정한 주관적 소망이 앞선 보복적 성격이 짙어 보인다. 분노·응징 등의 감정으로는 합리적인 정책이 가능할 리 없다. 지금이라도 긴 호흡의 정책을 모색하고 그에 따른 현명한 대책이 나오기만을 바랄 뿐이다.

정영철 서강대 공공정책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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