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취업률이 바닥이다. 소위 명문대라 분류되는 서울 소재 최상위권 대학의 취업 성적표도 마찬가지다. 갈수록 팍팍해지는 현실 속에 변하지 않은 게 있다면 단 한가지, ‘좋은 대학’에 가겠다는 수험생과 학부모의 열망뿐이다. 그러나 욕심은 화를 부르기 마련. 특히 힘을 가진 사람의 욕심은 편법을 만들고 더 큰 망신을 부르기도 한다. 필자가 K교수로부터 전해 들은 다음 얘기가 바로 그런 경우다.
얼마 전 K 교수는 한 여고생으로부터 부탁을 받았다고 한다. 고교생들 주도로 청소년 연구단체를 만들어 국내 최대의 ‘논문 출간 프로젝트’를 하고 싶으니 논문지도를 해달라는 청이었다. 학생들이 인문학 특강을 유치하고 팀 플레이로 논문까지 함께 쓴다는 프로그램의 구상이 참신해 보였다. 하지만 보면 볼수록 꺼림칙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단다. 특히 돈과 관련된 부분은 허점투성이였다. 단체 가입비는 18만원, 개인 가입비는 24만원으로 책정돼 있었는데 이 가입비를 관리하는 곳이 알고 보니 ‘잘 아는 회사’의 경영관리팀이었다는 것이다. 잘 아는 회사는 바로 창립의사를 밝힌 고교생의 어머니가 운영하는 회사였다. 결국 이 여고생은 이름만 빌려주고 엄마가 알아서 다하겠다는 얘기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모녀(母女)는 왜 이렇게 해괴한 프로젝트를 기획했을까? 명문대에 손쉽게 들어가려는 속셈이었다. 거의 모든 대학에는 ‘인재 전형’이 있다. 논문을 집필하거나 책을 쓰는 것이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한 주요 스펙 중 하나가 된지 오래다. 주위만 둘러보더라도 100% 수능 전형에 올인한 수험생을 찾기란 힘들다. 결국 다양한 선택지를(학생부 비율 포함) 원하는 대다수의 학생들은 많은 비용을 투자해 비교과 영역을 화려하게 수놓을 준비를 한다. 모두가 그렇게 하기 때문에 중요한 건 상장의 개수가 아니라 작위적이지 않고 참신한 스토리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 그래서 모녀는 인문학을 내걸고 대체 교육단체를 조직하기로 마음먹은 듯했다. 고등학생이 만든 대체 교육 네트워크, 얼마나 그럴 듯한가. 그러나 반칙은 곤란하다. 아마 모녀는 참신한 스펙으로 명문대도 들어가고 명성도 얻어 남들보다 빨리 출세가도를 달려보려는 꿈에 부풀었겠지만 빨리 먹는 떡은 반드시 체하는 법이다.
남을 속이고 부당한 이득을 취하는 것 말고도 어린 나이만 믿고 소년등과(少年登科)하려는 부작용은 곳곳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얼마 전 여당의 어느 청년 예비후보는 자신이 젊은이들을 대표하는 정치 주자라고 떠벌리며 우쭐대다가 정작 노동 개혁에 대한 입장을 밝혀보라는 기자의 물음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해 망신을 자초했다. 질타를 받아 마땅한 일이다. 물론 과거 경력이나 직업이 무엇이었느냐가 정치인의 자격을 결정하는 전부라고 보지는 않는다. 그러나 적어도 입법자가 되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중요한 내용이 무엇인지, 자신가 말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말할 수 있는 자질을 갖춰야 한다.
젊은이가 꿈을 크게 갖는 것을 탓할 수는 없다. 수직 상승에 대한 청년의 욕망은 오히려 젊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당연한 권리라고 할 수 있다. 마크 주커버그, 스티브 잡스, 제임스 카메론과 같은 세계의 IT/콘텐츠 산업을 대표하는 리더들도 꿈이 컸기에 ‘소년등과’의 길을 걸을 수 있었다. 다만 그들은 앞서 빗나간 사례로 거론된 청년들과 달리 강한 ‘책임감’이 있었다. 주커버그나 잡스 등은 자신이 나이가 어리다고 또는 경험이 없다는 핑계를 둘러대며 자기 실수를 변명하고 잘못을 덮으려는 무책임한 모습은 절대로 보이지 않았다.
사실 우리 사회의 유교 정서엔 양면적 모습이 있긴 하다. 젊은 사람을 ‘이너 서클(inner circle)’에 끼워 주지 않으면서도 그들의 실수에 대해서는 관대한 편이다. 그 탓인지 청년출세를 꿈꾸는 젊은 리더들 사이에선 자신들을 인정하지 않는 기득권 세대에 대한 분함과 스스로에 대한 혜택을 주길 바라는 듯한 이중적인 태도가 읽혀진다.
나는 이렇게 주장하고 싶다. 정말 청년들이 주도세력이 되려면, 그들도 똑같은 진입 장벽을 적용받고 제대로 된 경쟁을 거쳐 사회 상층부에 진입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나이가 어리다고 불이익을 당하는 것 만큼이나 나이가 어리다고 면죄부를 받는 것도 옳지 않다. 어린 나이를 무기로 삼는다니 청춘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