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 전환기에 접어든 규제정책

양적 규제완화에서 벗어나 피규제자 입장서 평가·점검

'지킬수 있는, 지켜야만 하는' 규제로 정책 전환 바람직

하병기

규제개혁은 외환위기 이후 새로운 정부의 주요 화두로 항상 등장해왔다. 김대중 정부에서는 규제 수를 반으로 줄이는 규제개혁을 시행해 여타국의 모범사례로 언급되고 있다. 이는 역설적으로 한국이 규제정책에서 과거에 모범적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국이 규제의 천국, 즉 규제가 많았기에 규제 완화를 획기적으로 추진할 수 있었고 이 덕에 모범사례가 된 것이다.

규제개혁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도 규제개혁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규제개혁이 지속돼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규제가 처음 설정될 때의 사회경제적 환경이 변화하면 규제도 폐지되거나 개선돼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 1969년 제정됐다가 외환위기 이후 폐지된 가정의례법이 대표적이다. 법 제정시에는 건전한 사회풍토 조성이라는 목적이 있었지만 사회 변화로 불편을 주는 규제로 전락하게 됐다. 사회가 변화하고 발전함에 따라 규제도 지속적으로 변화하고 발전해야 한다. 이러한 당위성에도 규제개혁이 부진한 이유는 무엇일까. 규제가 있음으로 해 이익을 보거나 변화를 싫어하는 기득권자(정부와 민간 모두)가 거부하는 것을 한 가지 원인으로 들 수 있다. 안전·환경 등을 이유로 새 규제가 무차별적으로 만들어지는 것도 주요 원인으로 들 수 있다.

이에 더해 규제개혁을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도 규제개혁을 방해하는 원인이 될 수 있다. 규제개혁이 단순히 특정 집단의 이익을 보호하거나 증대시키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가지고 바라본다면 필요한 개혁도 부진해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의구심은 정책에 대한 신뢰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여러 정부에 걸쳐 추진된 규제 완화 정책으로 양적 규제 완화는 이제 어느 정도 달성됐다고 할 수 있다. 이제 규제 수보다 규제의 질이 더 중요하며 이 시점에서는 '지킬 수 있는 규제, 지켜야만 하는 규제'로 정책을 전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사회적으로 큰 사고가 있은 후 우후죽순으로 규제가 양산되는 것을 봐왔다. 그럼에도 규제가 잘 지켜지지 않고 또다시 큰 사고가 되풀이되는 경우도 많이 봐왔다. 규제를 지켜야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많은 규제 중 지킬 수 없는 규제가 있으면 아예 모든 규제를 지키지 않을 개연성이 있다. 어떻게 해도 단속의 대상이 된다면 차라리 모든 규제를 지키지 않다가 적발시 뇌물공여 등 다양한 방법을 활용하는 것이 오히려 경제적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킬 수 있는 규제, 지켜야만 하는 규제'를 정립하기 위해서는 지금처럼 규제별로 평가하고 개선하는 것에서 한층 더 나아가 규제를 지켜야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규제를 점검하고 평가해야 한다. 예를 들면 소방·보건 등 다양한 부처에서 음식점업에 대한 규제를 만들고 집행한다. 이렇듯 다양한 부처가 관계돼 중복되거나 상치되는 규제가 있다면 모든 규제를 지키는 것이 불가능할 수도 있다. 지킬 수 있는 규제로 지켜지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피규제자 입장에서 규제를 평가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현재 추진 중인 규제비용 총량제의 부처별 평가에 더해 피규제자별 규제비용 총량제도 고려해볼 만한 이유다.

규제는 국민 복지를 위해 필요하지만 사회 및 경제적 변화에 따라 끊임없이 개선돼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국가경쟁력이 저하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양적 규제 완화가 어느 정도 달성돼 규제개혁의 동력을 잃어가는 이 시점에서 '지킬 수 있는 규제, 지켜야만 하는 규제'로의 전환으로 규제개혁의 모멘텀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하병기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