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일본군 위안부의 상처·삶 다룬 '귀향' 조정래 감독 "아픔보다 치유 담은 영화… 많은 이들이 봐줬으면"

제작비 못구해 14년 느린 걸음… 국민들 십시일반이 만든 작품

억울한 넋 돌아오실 수 있다면 최소 20만번은 상영하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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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민이 만든 영화.' 영화 '귀향'의 포스터 문구는 단순한 수사가 아닌 실제다. 조정래(43·사진) 감독이 2002년 '나눔의 집' 봉사 활동을 하다 영감을 얻어 기획했다는 이야기는 '돈' 문제로 10여년간 제자리걸음만 해야 했다. "할 수 있는 시도는 다 하고 두드릴 수 있는 문은 다 두드렸다"는 게 감독의 말이지만 투자배급사는 물론 정부조차 관심이 없었다고 한다. "높은 벽을 느꼈지만 포기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어요. 아예 몰랐다면 몰라도 할머니들을 만나고, 그분들의 마음을 알아버린 이상 피할 수도, 놓을 수도 없었죠."

적지 않은 시간을 흘려보낸 후에야 기회가 왔다. 다름 아닌 '유튜브'를 통해서다. "투자사와 제작사를 계속 찾아다녔는데 시나리오를 책으로 주니 90%가 안 읽더라구요. 그림을 그려서 눈으로 보여주자 싶어 영상화 작업을 한 후 인터넷에 올렸는데, 여기서부터 후원의 역사(?)가 시작된 거죠." 소셜네트워크미디어(SNS)를 통해 영상이 퍼지자 상상하지도 못한 많은 응원과 격려가 쏟아졌다. 만원, 2만원…. 7만5,000여 국민들이 십시일반 후원해 총 제작비의 절반인 12억원이 모였다. 배우들도 재능 기부 방식으로 참여했다. "만약 배급에서 또 막혀 상영관이 안 잡히면 아예 유튜브를 통해 상영하려고 했어요(웃음). 다행히 배급사가 고군분투해주고 계셔 일단 50여 곳에서 상영이 확정됐습니다." 그렇게 '귀향'은 느린 걸음으로 우리에게 도착했다.

바통은 이제 관객들의 손으로 넘어온 셈이다. 관객들이 많이 봐줘야지 상영관도 늘고 장기 상영도 가능하다. 감독은 일제 강점기 '군 위안부'에 끌려간 소녀들의 이야기라는 지점에서 관객들이 너무 큰 부담을 느낄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꼭 봐야 하는 영화인데 너무 아파서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어떻게 볼까 용기가 안 난다'는 반응이 많아요. 하지만 '귀향'은 아프기만 한 영화는 아니에요. 조금 슬프긴 하지만 해피엔딩이고 말하자면 치유의 영화죠."

실제 '귀향'은 아픔을 들쑤셔 공포와 슬픔을 되새기는데 그치지 않고 과거를 기억함으로써 충분히 슬퍼하고 충분히 울게끔 돕는데 집중한다. 일제강점기인 과거와 현대를 오가는 이야기 구조 속에서 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고통을 해소해줄 매개로 성폭행 피해자인 소녀 '은경(최리 분)'을 내세운 것도 그 같은 고민에서 나온 설정이다. 감독은 "처음 위안부 문제를 알게 됐을 때 일본에 대한 분노와 적개심보다 남자로서 수치심과 죄의식이 앞섰다"며 "남자의 힘으로 구원하겠다 나서는 것은 기만 같았고, 비슷한 상처를 가진 여성이 나서는 게 적절한 매듭이라고 생각됐다"고 설명했다. 씻김굿을 영화에 넣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치유의 행위인 셈이다.

"영화 제목 '귀향'은 사실 한자로 쓰면 '鬼鄕'이에요. 귀신이 집으로 돌아간다는 뜻이죠. 영화 상영을 한 번 할 때마다 비극적 죽음을 맞았던 피해 여성 한 분이 고향으로 돌아오셨으면 하는 마음으로 영화를 만들었어요. 20만명이 피해를 당하셨으니 최소 20만번은 상영하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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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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