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동향

[단독] '제2 키코 사태' 막아라… 7조 통화파생상품 조사

환율상승때 손실규모 무한대

금융당국, 리스크 관리 나서

작년말 이미 손실구간 진입 가능성

금융당국 "오버헤지 물량 파악중"

미국과 유럽에 가전부품을 수출하는 중소기업 대표 김모(56)씨는 요즘 잠을 이룰 수가 없다. 수출대금을 달러화로 결제하는 만큼 원·달러 환율이 오르면 회사로서는 이익이다. 수출대금으로 들여오는 달러화를 원화로 환전하면 환차익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원화 강세에 대비해 지난해 한 시중은행과 통화파생상품 계약을 체결한 게 화근이 됐다. 김씨는 "지난해 원화가 강세를 보여 환헤지 목적으로 파생상품에 가입했는데 최근에는 환율이 반대(원화 약세)로 가고 있다"며 "이미 계약시 설정한 기준환율을 넘어서 계약이 만료되는 오는 10월까지 은행에 물어줘야 하는 자금 규모도 커질 것 같다"고 답답함을 호소했다.

올 들어 원·달러 환율이 급등하면서 환율변동에 대응하기 위해 통화파생상품에 가입했던 수출 중소기업들에 비상이 걸렸다. 원화 약세가 지속될 경우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중소기업의 줄도산으로 이어졌던 키코(KIKO·Knock-in Knock-out) 사태가 재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온다. 키코 사태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환헤지 통화옵션상품에 가입했던 중소기업들이 원화 약세로 막대한 피해를 당해 일부는 도산까지 했던 사건이다. 당시 738개 기업이 10조565억원 규모의 키코 계약을 맺었으며 총 3조2,000억원의 손실을 봤다.

금융당국은 은행·증권사 등 통화파생상품을 판매한 금융회사들을 상태로 리스크 실태조사에 착수했다. 22일 금융당국 고위관계자는 "시중은행들로부터 통화 관련 파생상품의 판매현황을 보고받아 시장에 미칠 수 있는 영향 등을 들여다보고 있다"며 "외환시장의 흐름을 살펴보면서 필요한 대책을 마련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당국은 특히 목표수익 조기상환 선물환(TRF·Target Redemption Forward)에 주목하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은행들이 보유한 TRF 계약 잔액은 약 7조원에 이른다. TRF는 환율변동에 따른 이익이 특정 수준에 도달할 경우 잔여 통화옵션이 소멸(knock-out)되는 환리스크 헤지거래다. 환율이 하락하면 기업이 얻는 이익의 최대치는 정해져 있지만 환율 상승 시 손해에는 한계가 없다는 점에서 키코와 유사하다.

최근 환율급등에 따라 TRF 계약을 체결한 중소기업 상당수는 이미 손실을 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 상품은 계약체결 당시 환율보다 50~60원 높은 환율을 목표환율로 설정하고 있다. 지난해 연평균 환율이 1,131원52전을 기록한 것을 감안하면 지난해 말 이미 손실구간에 진입한 것이다. 금융당국은 최근 벌인 1차 모니터링 결과 환율 상승세가 이어진다고 하더라도 2008년 키코 사태와 달리 큰 충격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TRF의 전반적인 상품구조는 키코와 유사하지만 키코처럼 환율이 일정 수준 이상이 되면 계약금액의 몇 배에 달하는 규모를 해당 환율로 거래해야 한다는 옵션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매출액을 넘을 정도로 헤지를 과도하게(오버헤지) 했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해외 매출액과 유사한 규모로 TRF 계약을 맺으면 매출 부문에서 발생하는 환차익으로 TRF에서 발생하는 손실을 메울 수 있지만 TRF 계약규모가 매출액을 능가하면 기업의 손실은 커질 수밖에 없다. 글로벌 경기 침체에 따라 앞으로 발생할 해외 매출액이 계약체결 당시 예상했던 것보다 줄어들어도 기업의 손실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TRF 계약 업체가 대부분 중소기업이라 금융손실에 취약하다는 것도 문제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TRF는 키코와 달리 환율 상승에 따라 기업들의 손실이 급격히 증가하는 구조가 아니고 키코 사태를 경험한 은행들도 신중하게 판매한 것으로 파악된다"면서도 "다만 일부 기업이 투기 목적으로 가입했다면 대규모 손실이 불가피한 만큼 오버헤지 물량이 얼마나 되는지를 면밀히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


▶용어설명

◇목표수익 조기상환 선물환 (TRF·Target Redemption Forward)=
원화 강세에 따른 환차손을 방지하기 위해 수출기업이 가입하는 통화파생상품. 매 정산 시점(통상 1개월)의 환율이 계약 시 기준환율보다 낮을 경우 기업이 이익실현. 단 이익한도를 설정. 반대의 경우 정산 시점마다 기업이 은행에 보상하는데 손실에 대한 한도는 없다.

◇키코(KIKO·Knock-in, Knock-out)=환율이 정해놓은 구간 안에서 움직이면 약정 환율을 적용하지만 하한 이하로 떨어지면 계약을 무효로 하고(Knock-out), 상한 이상으로 올라가면 약정액의 1~2배를 현재 환율에 매도해야 하는 통화파생상품.

/임세원·조민규기자 why@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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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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